소득 없는 윤·한 회동, 예상은 했지만… [신율의 정치 읽기]

2024. 10. 27.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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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파인그라스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만나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정치권 주목을 한 몸에 받았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만남이 별 소득 없이 끝났다.

이번 회담이 별 소득 없이 끝날 것이라는 예상은 진즉부터 있었다. 윤 대통령이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한 대표 역시도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최소한의 소득이 있기를 바라기는 한 것 같다. 이재명 대표가 여야 대표 회담을 제의하자 3시간 만에 이 제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과 여당 대표와의 만남이 있던 날, 양당 대표 회담을 제의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법을 구사하려 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런 날에 회담을 제의함으로써, 대통령과 한 대표 사이를 벌려놓으려 한 것 같다는 의미다. 또한 이런 제안은 대통령을 국정에서 소외시키는 전략이다. 이런 이 대표의 ‘뜻’을 한 대표가 모르지 않을 텐데, 한 대표는 회동 제안한 후 세 시간 만에 만남을 수락했다. 야당 대표와의 회담을 통해 정국 돌파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대통령실에 보여줌으로써,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대통령의 양보를 끌어낼 수 있다 판단했을 것 같다.

대통령은 처음부터 한 대표와의 만남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두 사람의 만남 ‘형식’만 봐도 그렇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대통령과 여당 대표와의 만남은 독대 형식이 자연스럽다. 이론적으로 가장 가까워야 할 두 사람이 만난다면, 굳이 다른 이의 배석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진석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이는 대통령이 한 대표와 둘이 만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증거다. 이뿐 아니다.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는 4시 반에 회동하기로 했다. 주목할 점은, 대통령이 만찬이 예정됐음에도 회동 시간을 4시 반으로 잡았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은 한 대표와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에 더해 친윤들은, 이번 회동이 한 대표 독대가 아닌 ‘면담’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면담과 독대는 다르다. 면담은 ‘상하 관계’를 포함하는 용어다. 사장과 직원 사이 만남, 혹은 학생과 선생님 사이 회동을 면담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대통령과 당대표가 ‘상하 관계’임을 강조하기 위해, ‘면담’이라는 용어를 고집했다는 논리다. 이는 회동 당시 테이블을 봐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통령과 여당 대표 사이 회동에는 원탁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번에 대통령실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긴 탁자에 윤 대통령이 한쪽에 팔을 벌리고 앉아 있고, 한 대표와 정진석 비서실장은 나란히 건너편에 앉아 있었다. 정말 ‘특이한’ 좌석 배치다. 특히 정 실장이 배석자라는 차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배석자와 당대표가 같은 위치에 앉아 있다는 것은 대통령과 한 대표가 ‘상하 관계’임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해석된다. 대통령과 당대표 관계를 이런 식으로 규정하면, 회담 결과는 뻔할 수밖에 없다. ‘상하 관계’ 식의 회동에서 결론이 나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당대표를 이런 식으로 바라보는 대통령이라면, 대통령실과 여당 관계를 상명하복 관계로 생각할 확률이 높다. 이렇게 여당을 취급하면 대통령은 여론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여당은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대통령은 여당을 통해 여론을 듣고 여론을 챙겨야 한다. 대통령이 여당과의 관계를 상명하복 관계라고 생각한다면, 여당은 대통령 의중을 행동으로 옮기는 ‘집행기관’으로 전락한다. 정치에서 행위에 의해 드러나는 ‘상징’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차원에서 보면, 애초부터 대통령은 이번 회동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셈이다. 이런 ‘형식’적인 측면을 차치하고서라도, 회동 전 한 대표가 요구했던 것들을 생각하면, 이번 회동에서 어떤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동훈 대표는 지방선거가 끝난 다음 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여사의 대외 활동 중단과 의혹 규명을 위한 절차 협조, 그리고 김 여사와 가까운 것으로 지목된 대통령실 참모들의 인적 쇄신 등 총 세 개의 요구 사항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이런 요구에 대통령실이 호응할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어려웠다.

그 이유는 첫째, 자신들은 김건희 여사 라인은 없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 인적 쇄신을 하기는 어렵다. 둘째, 의혹 규명을 위한 절차 협조는 특검을 받거나 추가적인 조사 혹은 수사에 협조하라는 것인데, 이는 의혹을 인정한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 또한, 대외 활동 중단의 경우, 이미 ‘필요한’ 활동 이외의 대외 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며, 11월에 출범할 제2부속실을 통해 ‘관리’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세 가지 모두가 ‘추론’이었지만, 회동 다음 날 대통령실이 밝힌 입장을 보면 이런 추론이 대략적으로 맞는 것 같다.

여기서 지적할 부분은, 대통령실의 상황 인식이다.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 간 회동이 있을 즈음, 국회에서는 명태균 씨 관련 의혹과 관련해 강혜경 씨가 증언하고 있었다. 해당 증언은 물론 일방적인 주장일 수 있다. 강 씨가 국회에서 밝힌 ‘증언’ 대부분은, 모두 명태균 씨로부터 ‘들은 이야기’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아직은 해당 사안을 심각히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문제는 국민 인식이다. 김건희 여사 관련 문제가 논란이 된 것이 한두 건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 뇌리 속 김 여사 이미지는 매우 부정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명태균 씨 주장이 나오고 있으니,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해당 주장은 국민 뇌리를 강타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기억의 생명력’은 길지 않지만, 일단 형성된 특정인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특정인 이미지가 일단 형성되면, 설령 억울한 일이 발생해도 사람들은 해당 인사를 자신들이 가진 이미지를 통해 바라보고 판단한다.

한동훈 대표는 이를 알고 있고, 그래서 대통령에게 해당 사안 수습을 건의했을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움직이지 않으니, 한 대표 측은 이제 나름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재명 대표와의 회동에서 김건희 여사 관련 특검을 주제로 꺼내 드는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 한동훈 대표 측 박정훈 의원이, 제3자 특검 추천을 전제로 한 김건희 여사 특검법안을 제안한 것도 이런 맥락일 테다. 이런 식으로 정치가 흘러가면, 윤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힘은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각자 갈 길을 가게 되면, 얼핏 한 대표가 더 손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대통령은 엄연한 권력자기 때문에 국민의힘 당내에서 대통령의 영향력이 더 큰 반면, 한 대표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다. 여기에 빠진 부분이 있다. 바로 여론 지지다. 한 대표가 여론 지지를 받을지, 아니면 윤 대통령이 받을지를 생각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2호 (2024.10.30~2024.11.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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