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참사 특조위원장 “사회적 지지로 최대치 조사”
“안전한 사회 디딤돌 되도록 하겠다”
2022년 10월 29일 벌어진 이태원 참사로 159명의 목숨이 희생된 지 2년이 흘렀다.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참사 2주기를 한 달여 앞둔 지난달 23일 출범했다. 이날 회의에서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송 위원장은 헌법 전문가로, 민주주의법학연구회장을 지냈다.
특조위가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하려면 내부 규정 마련과 부처 공무원 파견 절차 등이 필요하다. 특조위는 세부 절차를 마무리하고 올 연말부터 본격적인 진상규명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조사가 시작되면 특조위는 종합보고서 작성 기간 3개월을 포함해 최장 1년6개월간 활동할 수 있다. 다만 1년6개월간 진상 규명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압수수색 영장 청구 의뢰권 등이 없다는 점도 특조위 한계로 꼽힌다. 조사 결과 또한 권고 수준에 그칠 수 있다.
송 위원장은 지난 15일 서울 중구 특조위 사무실에서 진행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강제력이 없다는 건 반대로 최대치의 범위를 다룰 수 있다는 뜻”이라며 “특조위는 법적 강제성이 아닌 사회적 지지로부터 힘을 얻기 때문에 권고적 효력이 법적 강제성보다 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송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참사 2년이 지나서야 조사를 시작하게 됐는데, 어떻게 조사할 계획인지.
“조사 방향은 진상 규명을 최우선으로 한다. 참사가 어떻게 일어났고, 무엇이 잘못되고, 피해자들에게 국가의 적절한 조력이 이뤄졌는지부터 밝혀야 참사가 반복되는 걸 막을 수 있다. 또 참사 관련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야 소모적인 논란도 해소할 수 있다.”
-명확한 조사가 사회적 분쟁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드러나지 않은 사실관계가 완전히 밝혀져야 유족들이 근거가 없거나 곡해된 정보에 기반한 비난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태원 참사는 사실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사고였다. 당시 사고와 비슷한 일을 겪을 장소는 지금도 적지 않다. 신도림역 같은 데서도 한 번 빠져나오는 데 30분이 걸린다. 우리가 이 참사를 통해서 감지할 수 있는 사회적인 위험들도 지켜봐야 한다. 명확한 진상 규명이 이뤄진다면 이태원 참사가 언제 어디든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알릴 수 있다. 사람들이 참사가 남의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면, 2차 가해를 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특조위의 조사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특조위는 형사 책임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책임에 관련될 수 있는 사실관계를 광범위하게 조사할 계획이다. 검·경 수사는 거의 범죄 성립 여부 중심으로 진행됐다. 수사기관은 범죄 혐의가 없는 부분들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한다. 조사 기관은 수사기관과 다르다.우리 조사위원회는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수사기관과 달리, 유가족들이 궁금해하는 모든 사실관계를 폭넓게 조사하는 기관이 될 것이다.”
-특히 초점을 맞출 부분이 있다면.
“유족들이 특히 의문을 갖는 부분은 자녀들의 시신이 어떻게 이송됐는지다. 그동안의 수사 과정을 통해서는 이 내용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시신 처리 과정은 범죄 성립과 큰 관련이 없다 보니 방치된 측면이 있다. 참사 당시 현장 통제가 안 되는 바람에 구급차가 현장을 빠져나오는 데 너무 오래 걸려 이송이 늦어졌는데, 경찰에선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국정조사 보고서에도 통제 시각이 정확히 특정이 안 됐다. 이런 부분들이 좀 더 보완돼야 한다.”
-특조위 조사가 강제력이 없다는 한계가 있는데.
“강제 수사만이 진상을 드러내는 유일한 길은 아니다. 특히나 조사는 자발적인 협조, 자발적인 진술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강제적인 권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묵비권을 행사하면 그만이다. 또 강제력이 없다는 건 반대로 최대치의 범위를 다룰 수 있다는 장점이기도 하다.”
-강제력이 없어서 최대치를 다룰 수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인권위원회와 헌법재판소를 생각하면 쉽다. 헌재는 기관의 재량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헌법을 침해하는 최소한의 범위만 소극적으로 판단한다. 인권위는 반대로 기관에서 지켜야 할 최대한의 인권 사항을 권고한다.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최대한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권고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위원회도 최대한의 범위를 조사할 수 있다. 우리 위원회는 법적 강제성이 아닌 사회적 지지로부터 힘을 얻는다. 사회적 지지에 기반한 권고적 효력이 법적 강제성보다 강할 수 있다.”
-전 용산구청장과 서울청장 등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는데.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해도 그 사람들의 책임이 면제되는 건 결코 아니다. 선출직이 중요한 행사를 사전에 대비하지 못해 큰 참사가 발생했다면, 이에 대해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한 대표로서의 기본적인 정치적 책임이 있다. 형사 책임이 없다는 것만 가지고 다른 책임들이 면제된다고 할 수 없다.”
-용산경찰서장에 대해서는 유죄가 선고됐다.
“국가가 방관자적인 위치가 아니라 안전을 확보하는 중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판례다. 판결에서 인정된 사실은 과실 책임을 드러내기 위해 입증된 사실관계다. 그 사실관계를 다시 한번 살펴서 과실보다 사고 당시와 원인을 면밀히 밝힐 계획이다. 법적 책임뿐만 아니라 도덕 규범에 따라서 판단할 수 있는 부분까지 폭넓게 조사할 예정이다.”
-특조위 조사 결과가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될지.
“현대적인 국가는 헌법적으로 국민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확보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개인의 안전은 오롯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란 뜻이다. 이태원 참사는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사고다.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국가가 기본적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책무를 다하지 않은 데서 기인했다. 진상을 규명하는 일이 단순히 책임자를 찾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가 더욱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되도록 하겠다. 지켜봐 달라.”
한웅희 기자 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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