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인 사이 심리적 경계선 지키기 [강현숙 작가의 교인 풍경-11]

우성규 2024. 10. 27.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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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내 단짝은 누군가요
게티이미지뱅크


A 권사님과 B 집사님은 단짝입니다. B 집사님이 이사 와서 교회에 등록한 후 두 사람은 같은 구역 식구가 되었습니다. 만나면 대화가 잘 통했고 매사에 죽이 잘 맞았는데, 알고 보니 같은 대학 선후배 관계였습니다. 그 이후로 급격히 친해졌지요.

다른 성도들이 질투할 정도였습니다. 서로를 끔찍이 챙겨주었는데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관계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좋아하는 당이 달랐는데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옳다고 우겨댔습니다. 그러면서 양은 냄비가 식듯이 관계가 일순간에 냉랭해져서 주변에서조차 두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 망설여질 정도였습니다. 자칫하다간 교회가 국회의원 선거를 놓고 내홍에 휩싸일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경계선은 중요합니다. 만약에 내 집과 옆집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여러 가지 갈등이 생기겠지요. 그래서 담도 쌓고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경계선만 있는 것은 아니죠.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도 있습니다.

지하철을 탔을 때 사람이 별로 없으면 어느 자리에 가장 먼저 앉을까요. 이것도 경계선과 관계가 있습니다. 보통은 양쪽 끝자리에 앉고 그다음에는 가운데, 그다음은 한 자리씩 건너서 앉고 그러잖아요.

그 이유는 누구에게도 침범당하고 싶지 않은 나만의 사적 공간을 확보하고 싶어 서지요. 때로 사람이 많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눈을 감거나 바닥을 보는 것도 사실은 서로의 사적 경계선을 침범하지 않기 위한 배려입니다.

가족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라고 해서 아무 때나 노크도 없이 들락날락한다면 문제가 되겠지요. 실제로 엄마들은 방 청소를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들 서랍이나 일기장 같은 것들을 들여다보곤 하는데, 이것도 엄밀히 말해선 경계선 침범입니다.

경직된 경계선, 모호한 경계선, 명확한 경계선

그래서 관계 속에서 ‘경계선’을 지킨다는 건 중요합니다. 물리적인 경계선이 분명해야 하듯이 심리적인 경계선도 잘 지켜야 하는데, 가족치료 전문가인 미누친(S Minuchin)은 ‘경계선 이론’을 통해 건강한 가족과 그렇지 못한 가족을 나누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다시 말해 미누친에 의하면 경계선에 의해 가족이 서로에게 관여할 수 있는 정도가 정해지는데, 경계선은 접촉의 양과 종류에 대한 심리적 규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에게 적용된 이 경계선 이론이 주님의 이름으로 한 몸 된 교회공동체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되어 소개하려고 합니다.

경계선의 종류에는 ‘경직된 경계선, 모호한 경계선, 명확한 경계선’ 이렇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경직된 경계선’은 ‘나는 나, 너는 너’라는 생각이 지나치게 강한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주일날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만 만나는 관계로 얼굴 정도만 아는 관계와 같다고 할까요? 서로 마음을 나누기 위한 만남이나 대화는 거의 없는, 아니 가지려고도 하지 않는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교회에 대한 특별한 소속감이나 다른 교인들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거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죠. ‘남보다 못한 가족’이라는 말을 하듯이 경직된 경계선을 가진 교우 관계는 교회 안에 큰 어려움을 당한 교인이 있어도 별로 관심이 없거나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두 번째는 ‘모호한 경계선’으로 경계가 선명하지 않아서 ‘나는 너, 너는 나’ 이런 식의 생각을 하는 경우인데요, ‘내 일이 곧 너의 일이고, 너의 일은 곧 나의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앞에서 소개한 A 권사님과 B 집사님의 관계가 바로 이 ‘모호한 경계선’에 해당하지요.

모호한 경계선은 상대방의 일에 사사건건 관여하기 때문에 얼핏 보기에는 아주 친밀한 관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의 자율성을 허용하지 않는 관계라서 다툼의 소지를 많이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의 사례에서 보면 A 권사님과 B 집사님은 각각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옳으니 자신에게 맞추라는 식이잖아요. 관계 속에서 서로 가치관이나 정치적 성향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거니까 모호한 경계선을 가진 관계는 건강한 관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실 교회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나 싸움의 원인은 한쪽이 옳지 않은 일을 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이나 감정, 혹은 원하는 바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가장 건강한 관계라고 할 수 있는 ‘명확한 경계선’을 가진 경우로 ‘따로 또 같이’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건 서로의 다름을 충분히 인정하면서 상대방에게 어려움이 생기면 즉시 달려와 도와줄 수 있는 관계입니다. 다시 말해 내 감정과 너의 감정이 다를 수 있고 내 생각이나 가치관 혹은 정치적 성향이 상대방과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관계입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경계선을 침범하지는 않는지요

따라서 가족관계나 교인들과의 관계를 포함하여 모든 인간관계 속에서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경계선’을 가지고 서로 간에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교인들끼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넘어서는 안 되는 서로의 경계선을 마구 넘나들 때가 종종 있지요. 이를테면 형편이 어려운 성도들을 도울 때 이왕이면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는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묻고 도와주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걸 상대방도 좋아하리라 생각할 때도 있고 때로는 도우러 간다는 명목하에 아무 때나 불쑥불쑥 찾아가는 우를 범할 때도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문제는 이런 심리적 경계선을 지켜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실제 생활에서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슴도치 딜레마’라 불리는 고슴도치들의 경험을 반복합니다. ‘고슴도치 딜레마’는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책 ‘행복론과 인생론’에 나오는 우화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은 얼어죽지 않기 위해
서로 바싹 달라붙어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그들의 가시가
서로를 찌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떨어졌다.
그러자 그들은 또다시 추위를 견딜 수 없어
다시 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러자 가시가 서로를 찔러
그들은 또다시 떨어졌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떨어졌다.

‘고슴도치 딜레마’가 말해주는 것은 뭘까요. 인간은 서로 관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하는데, 쇼펜하우어는 ‘적당한 거리’를 ‘정중함과 예의’라고 말합니다. 저는 여기에 ‘심리적 경계선을 지키는 것’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교회공동체를 떠올리면 누구도 아름다운 추억들이 있을 겁니다. 사랑이 넘치고 주님의 이름으로 서로서로 도우려 했던…. 하지만 그런 마음만큼이나 상처받은 마음들도 많습니다. 왜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한 가지는 서로의 경계선을 침범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교인 중에는 ‘주안에서 한 몸’이라는 말을 서로의 감정이나 가치관 혹은 정치적 성향까지 같아야 하는 거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 몸이라고 칭하는 부부만 봐도 일심동체가 아니고 ‘이심이체’ 이듯이, 성도들도 그렇습니다. 성도들은 서로 생각이 다르지요. 물론 감정이나 가치관도 다르고요. 이렇게 서로 다르다는 걸 꼭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교우들과의 관계에서 나는 경직된 경계선, 모호한 경계선, 명확한 경계선 중에 어떤 경계선에 해당할까요.

글=강현숙 작가, 치매돌봄 전문가, ‘오십의 마음 사전’(유노책주) ‘치매지만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생명의말씀사) 저자

편집=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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