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같은 친일파 민영휘 무덤, '파묘'할 순 없을까
충북인뉴스가 기획하는 ‘친일청산 재산환수 마적단’이 소식을 전합니다. 마적단은 국내에 남아있는 친일 잔재를 찾아,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활동을 합니다. 또 ‘친일반민족행위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환수 대상이 되는 재산을 찾아 국가에 귀속시키는 활동을 합니다. 필요하다면 직접 소송의 당사자가 되기도 하고, 시민의 참여를 위한 제안도 할 것입니다. 또 친일재산귀속법의 법 개정을 통해 ‘조사위원회’를 부활시키는 것도 주요목적입니다. 독자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기자말>
[충북인뉴스 김남균]
▲ 강원도 춘천시 동면 장학리 산 14번지에 자리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민영휘 무덤 (사진=김남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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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춘천시 동면 장학리 산14번지에 자리한 친일만빈족행위자 민영휘의 무덤 (사진=김남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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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기 집은 강원도 문화재로 지정돼 있습니다. 이쯤 되면 처음보는 사람이면 왕릉이라고도 믿겠습니다. 그러나 무덤의 주인은 친일파 거두 민영휘(閔泳徽, 1852~1935)입니다.
그는 친일반민족행위 내역을 잠깐 살펴볼까요. 일단 '친일반민족행위자 친일재산 국가귀속 결정문'에 나와있는 행적만 간단히 요약해 보겠습니다.
1907년 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은 고종이 이준, 이상설 선생을 특사로 보냅니다. 그때 민영휘는 일제와 한통속이 되어 왕위에서 물러나라고 상소를 올리는 등 고종을 압박합니다.
민씨 외척으로 고종의 총애를 받아 승승장구해 놓고, 한순간에 고종을 배신한 '배신의 정치'의 원조격이지요. 그해 일제국주의 황태자가 조선을 방문하자 '신사회'를 조직해 환영행사를 주도합니다.
1909년 이완용 등이 한일병합을 강제로 추진하자, 관련단체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일제의 국권침탈에 앞장섭니다. 그해 9월 한국에 일본의 신궁을 만들어 일본의 시조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에게 제사를 지내자고 주장하는 '신궁경의회' 고문으로 활동합니다.
결국 민영휘는 1910년 한일병합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제로부터 '자작'이라는 귀족 작위를 받습니다.
1911년에는 일제로부터 은사금 5만 원, 1912년에는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습니다. 이후에도 친일행적은 끊이질 않았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했으면 일제로부터 1928년 금배 1조와 쇼와대례기념장을 받았습니다.
사망한 해인 1935년에는 조선총독부시정25주년기념표창과 금배 2조, 은배 1조를를 받고, 정3위에 추서됐습니다.
▲ 강원도 춘천식시 동면 장학리 민영휘 무덤입구에 세워진 신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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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년(1910년, 한일병합) 국치를 당했을 때 모욕을 참고 수치를 머금으면서 왕실을 위하여 변고에 응했다. 기미년(1919년)과 병인년(1926년)에 고종과 순종 두 임금이 세상을 떠나자 공은 애통해하며 살고자 하지 않았다." (민영휘 신도비문 중에서)
한일병합에 기여한 공로로 일제로부터 '자작'이라는 작위까지 받은 친일파가 무슨 수치를 느꼈고, 어떤 모욕을 참았단 말인가요?
강원도 춘천시 동면 장학리 산14번지에는 민영휘의 무덤 뿐만이 아니라, 민영휘의 정부인과 첩, 그의 법적 장자인 민형식의 자손 등 민씨 일가의 무덤이 밀집돼 있습니다.
반면 여러 첩 중 유일하게 민영휘의 아들(민대식·규식·천식)을 낳은 안유풍의 묘는 충북 청주시 상당산성에 있습니다. 물론 안유풍이 낳은 아들들의 묘도 모두 청주 상당산성에 있습니다.
이땅을 친일재산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07년 국가에 귀속됐습니다. 또 민영휘와 안유풍 사이에 태어난 3남 민천식의 묘는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138번지에 있었는데요. 이 땅도 2022년 국가에 귀속됐습니다.
귀속 당시 위 토지는 모두 민영휘의 후손들 소유로 돼 있었지요. 국가에 귀속되면 무엇이 달라지길래 파묘가 가능한가요?
관련 법에 따르면 국가소유의 '행정재산'에는 '분묘기지권'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분묘기지권이란 비록 타인 소유의 토지에 무덤이 있더라도 그 무덤이 있는 토지의 사용권이 무덤의 권리자에게 있다고 하는 겁니다. 즉 토지 소유주가 무덤을 함부로 파헤칠 수가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국가의 행정재산에는 이런 권리가 없습니다. 국가가 무덤을 이전하라고 행정명령을 내릴 수 있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강제로 파묘도 할수 있는 겁니다.
민영휘의 후손들은 청주 상당산성에 있었던 안유풍과 그의 자손들의 무덤이 있는 토지가 국가에 귀속되자 슬그머니 무덤을 파묘해 어디론가 이전한 겁니다.
그렇다면 춘천의 민영휘 무덤이 있는 토지는 왜 환수가 되지 않았나요?
▲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펴낸 '친일재산조사 4년간의 발자취' 중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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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재산조사위원회는 일제강점기 민영휘와 안유풍, 혹은 민대식과 민규식, 민천식 명의로 되어 있는 토지 중 후손들에게 증여된 청주시 일대 토지와 경기도 용인시 일대의 토지를 환수했습니다.
그런데 강원도 춘천시 동면 장학리 일대 토지는 환수대상에서 제외됐네요.
'친일청산재산환수마적단'은 1915일 일제가 작성한 토지조사부를 통해 민영휘 일가는 장학리 일대에 100필지가 넘는 농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민영휘의 일가로 토지를 사정받은 것은 아니고, 법적 장자인 민형식과 안유풍 사이에 태어난 아들 민대식·규식·천식의 이름으로 사정받았습니다.
민영휘의 무덤이 있는 춘천시 장학리 산14번지의 경우 지목이 임야입니다. 일제는 1918년부터 임야조사부를 작성했는데요. 아쉽게도 한국전쟁 당시 모두 소실돼 임야조사부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또 그때 작성된 임야대장도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1969년 유실됐던 임야대장이 민영휘의 아들 이름으로 지적복구가 됩니다. 그리고 다시 1973 민영휘의 증손자들의 명의로 등기가 이전됩니다. (참고로1973년 이전된 것에 대한 등기신청은 1983년에 이뤄졌습니다). 현재 토지소유자는 증여에 증여를 거듭해 20여 명 가까운 민영휘의 직계후손으로 돼 있습니다.
그럼 민영휘 이름으로 등기가 되어 있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는데 친일환수 대상일까요?
일단 공동소유자로 되어 있는 민형식의 경우, 민영휘로부터 자작 작위를 물려받아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인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입니다. 일단 민형식의 지분은 당연히 환수 대상이 되는 거지요. 민규식의 경우도 다양한 친일행적이 있어 친일재산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민영휘 일가는 일제강점기 한반도에 2000만 평이 넘는 토지를 전국 곳곳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민영휘는 이 많은 땅을 관리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 뿐만이 아니라, 첩 안유풍과 세 아들(대식,규식,천식)이름으로 차명으로 관리했습니다.
국가에 귀속된 청주시 상당산성 토지도 민대식과 민규식, 민천식(혹은 양자 민병도)의 공동명의로 등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충북 청주시 일대 뿐만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 있는 토지를 다 그렇게 관리했습니다. 가령 충북 음성군에 있는 토지는 민대식의 이름으로, 그 옆동네에 있는 진천군의 경우 민규식의 이름으로, 또 다른 군의 경우 민천식의 이름으로 말이지요.
때론 이들 세명의 공동명의로 일제강점기때부터 등기를 해 놨습니다. 또 어떤 토지는 민대식과 민규식, 민병도의 이름으로 해 놨는데요. 참고로 민병도는 민대식의 아들이지만 민천식이 일찍 죽어 아들이 없자 양자로 입양이 됐습니다. 민천식의 몫이 민병도 이름으로 등기가 됐는데요. 그때 당시 나이 스무살도 되지 않았던 민병도가 그 많은 토지를 취득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민영휘로부터 법적 아버지 민천식의 몫으로 증여를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민영휘의 무덤이 있는 토지는 민영휘가 아들들에게 증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 그것을 배제하더라도 적어도 친일반민족행위자 민형식 소유의 지분은 환수대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들 토지를 다 환수하게 되면 청주 상당산성에 있던 민영휘 일가의 무덤이 파묘됐던 것처럼 민영휘의 무덤도 같은 운명이 처해질 겁니다.
참고로 민영휘의 무덤이 있는 장학리 산14번지의 경우 2024년 기준 1㎡당 공시지가는 1만7300원입니다. 총 공시지가는 34억 원 정도가 되고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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