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어오른 무용수의 발... 부상투혼, 더 이상 반갑지 않다

강경일 2024. 10. 26.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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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엠넷 <스테이지 파이터> 무리한 미션, 부상 방지하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강경일 기자]

 <스테이지 파이터> 5회 중 김태석 무용수의 부상
ⓒ 엠넷
'몸으로 싸우는 잔혹한 계급 전쟁, 스테이지 파이터'

지난 9월 24일 방영을 시작한 <스테이지 파이터>는 엠넷 오리지널 댄스 시리즈다. 2021년 가장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연장선에 있는 프로그램이다. 다른 점도 있다. <스테이지 파이터>는 순수예술 무용 분야의 발레, 현대 무용, 한국 무용이라는 각기 다른 장르의 무용수들을 경쟁시키면서, 누구도 탈락하지 않는다는 데에서 프로그램의 차별성을 둔다.

순수 무용은 예술로 분류된다. 방영 전부터 예술에 등수를 매기고 급을 나누는 것이 말이 되냐는 비판이 꾸준히 있었지만, 제작진은 <스테이지 파이터>의 제작 의도를 두고 '예술의 대중화'라 못 박았다.

하지만 '경쟁' 구도는 남아있다. <스테이지 파이터>는 64명의 무용수를 퍼스트, 세컨드, 그리고 언더라는 세 가지 계급으로 분류한다. 모든 무용수들은 자신의 춤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는 '퍼스트' 계급으로 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많은 분량을 받는 '퍼스트' 계급에 비해 그를 보조하는 '세컨드' 계급, 그리고 10여 명이 이루는 군무 중 한 사람이 되는 '언더' 계급이 있다.

평소 보기 쉽지 않은 무용을 보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스테이지 파이터>는 어쩐지 조마조마하게 보게 되는 프로그램이다. 무용수들의 부상 염려 때문이다. 앞서 엠넷이 선보인 <스트릿 우먼 파이터>, <스트릿 맨 파이터> 등 오리지널 댄스 시리즈에는 미션을 수행하다 부상입은 댄서들의 '투혼'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장면들이 있었다. 이번 <스테이지 파이터>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높이 뛰고, 바닥에 몸 던지고
 <스테이지 파이터> 5회 중 김태석 무용수의 부상
ⓒ 엠넷
무용수들은 마이크를 착용한 채 공중 테크닉과 플로어 테크닉을 소화해야 한다. 그런데 다소 안전해 보이지 않는 미션도 있다. 이 때문인지 해당 미션 이후 프로그램을 통해 일부 무용수들이 부상을 입었다.

먼저 각 장르의 첫 번째 미션인 '피지컬&테크닉 오디션'에서는 무용수들의 신체와 각 장르의 테크닉 소화 능력을 평가했다. 모든 무용수는 높이 뛰어야 했고, 바닥에 몸을 던지며 무용 테크닉을 구사해야 했는데, 일부 이런 테크닉에 익숙하지 않은 출연자들까지 신체에 무리한 시도를 해야 했다. 시간적으로도 무용수들이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힐 수 있어 실제로 첫 번째 미션 중 부상자가 발생했다. 해당 무용수는 이후 프로그램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5회에 공개된 미션은 발레, 현대 무용, 한국 무용의 참가자들에게 각각 타 장르의 고난도 기술을 학습해 수행하라고 한다. 물론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 그 과정에서 발레 장르의 김태석 무용수가 부상을 입었다. 카메라는 김태석 무용수의 부어오른 발목을 비춘다. 부어오른 발목 때문에 비틀거리며 미션을 수행하는 김태석 무용수를 담아내며 그의 투혼을 아름답게 포장했다.

같은 회차 중 발레 장르의 강윤구 무용수도 현대 무용 안무를 익히다가 부상을 입었다. 이 부상으로 녹화 당시 안무를 소화할 수 없는 상태로 보였는데 그는 되려 시청자와 심사위원을 향해 "부상으로 인해 춤을 보여드릴 수 없어 죄송하다"라고 사과했다.

어떤 장르라도 마찬가지겠지만, 기본 동작이야말로 시간을 들어 훈련이 필요하다. 높이 뛰고, 몸을 던져 바닥을 구르는 테크닉은 전공자도 몇 년을 연습해야 한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스테이지 파이터>의 참가자들은 하루 만에 타 장르의 무용수가 제시하는 테크닉을 습득해야 했다.

이 미션을 강행한 제작진의 의도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앞서 첫 번째 미션부터 부상자가 발생했기에 촬영 중 발생하는 부상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경각심이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무용수의 부상
 <스테이지 파이터> 2회 중 이창민 무용수의 부상
ⓒ 엠넷
모든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이 한계에 도전하도록 만들고, 제작진은 그 과정에서 한 명씩 지워내며 '우승자'만을 남긴다. <스테이지 파이터> 역시 단 한 명의 우승자를 위해 자기 몸이 재산이자 예술인 무용수들을 한 명씩 떨어뜨리고 있다.

경연 프로그램이니 승자와 패자와 나뉘는 건 당연하지만, 몸을 사용하는 이들에게 부상 위험성이 높은 미션을 제시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순간의 부상이 이들의 평생 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상하지 못한 미션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싶어 하는 무용수들의 몸과 마음을 지켜내는 안전장치가 없다면, 이는 '예술의 대중화'를 내건 제작진의 의도와도 맞지 않는 길이다.

참가를 결정한 무용수들은 프로그램에 대해 얼마나 사전 정보가 있었을까. 이들이 작성한 계약서에는 부상과 관련한 배상과 책임이 언급돼 있었을까.

'투혼'이라는 단어는 '끝까지 투쟁하려는 기백'이라 정의된다. 우리는 '부상 투혼'이라는 단어에 너무나 익숙해진 채 누군가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상을 너무 쉽게 투혼으로 포장한다. '예술의 대중화'를 내세운 <스테이지 파이터>가 누군가를 착취한 투혼의 모습을 포장하기보다 다만 '안전'하게 이들의 예술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되기를 바란다.
 <스테이지 파이터> 예고편
ⓒ 엠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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