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봉선이 1기, 박휘순·김민경도 그가 키웠다…전유성의 교수법

정영재 2024. 10. 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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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에 터 잡은 ‘개그계 대부’ 전유성


전북 남원시 인월면에 있는 제비 카페에서 전유성 선생이 편안한 포즈를 취했다. 오래된 풍금·아코디언 등이 레트로 감성을 자아낸다. 장정필 객원기자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지리산 행 버스를 타고 4시간 달리면 전북 남원시 인월면에 닿는다. 지리산 북쪽 끝자락인 이곳은 고려 우왕 때(1380년) 이성계 장군이 기도로 달을 끌어올려(引月) 왜구를 토벌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리산둘레길 3코스 시작 지점에 ‘안내소 앞 카페 제비’가 있다. ‘대한민국 개그계 대부’ 전유성 선생의 딸인 전제비씨 부부가 운영한다. 전 선생도 6년 전 경북 청도를 떠나 이 마을에서 살고 있다.

엉뚱한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꿔온 전 선생은 2007년 청도에 터를 잡고 ‘개나소나 콘서트’를 비롯해 ‘철가방 극장’ 운영, 코미디아트페스티벌 개최 등 기발한 아이디어로 청도에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코미디 시장’이라는 극단을 만들어 스타 개그맨·개그우먼들을 키워내기도 했다. 그러다 코미디아트페스티벌 운영 과정에서 청도군과 갈등 끝에 청도를 떠나게 됐는데, 그는 “쫓겨난 거죠”라고 했다.

제비 카페에서 만난 전 선생은 좀 수척해 보였다. 몇 군데 아픈 데가 생겨서 자주 병원을 가고 좋아하던 술도 올해 초부터 딱 끊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늘 새로운 걸 구상하고 실행하는 DNA는 변함이 없었다.

심야 볼링장 문구 ‘돌아선 여인…’ 내 작품

Q : 스타 개그맨들을 많이 키워내셨죠.
A : “청도에서 극단 만들면서 개그맨 시험 세 번 이상 떨어진 애들만 오라고 했어요. 그만큼 절박한 친구들이니까요. 먹이고 재우고 월급도 주면서 트레이닝을 시키고 철가방 극장에서 공연할 기회를 줬죠. 신봉선이 1기고, 안상태·황현희·박휘순·김민경 등이 여기 출신입니다. 내가 만든 커리큘럼이 있어요. 우선 지루박(지터벅)과 탭댄스를 가르쳤어요.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공부에, 이외수 선생이 쓴 『글쓰기의 공중부양』을 교재로 글쓰기 훈련도 시켰죠.”

Q : 선생님의 놀라운 아이디어와 창의력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A : “여기 와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이 ‘심심하지 않냐’는 거예요. 심심한 게 그렇게 나쁜 건가 생각도 하면서, 심심하지 않으려면 뭘 해야 할까, 우리집에서 자라는 풀 이름이라도 알아보게 되고…. 심심한 게 자꾸 뭔가를 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학교에서 제일 자주 들은 말이 ‘잡담하지 마’잖아요. 잡담이 얼마나 좋은 건데. 잡담 속에서 아이디어가 분명히 나오더라고요.”

Q : 최근 쓰신 책에 ‘양식(養埴)의 말’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A : “양식장의 물고기처럼 갇힌 말을 우리는 너무 많이 쓴다는 거죠. 너무나 익숙해서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쓰는 말이죠. 설날 세배할 때 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만 하죠? ‘새해 빙판에서 넘어지지 마세요’라고 할 수도 있잖아요. 맛집을 ‘줄 서서 먹는 집’이라고 하는데 줄 서서 기다리기는 하지만 먹지는 않죠. 많은 사람이 쓴다고 해서 따라만 갈 게 아니라 ‘자연산 말’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Q : 선생님 책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를 재밌게 읽었습니다.
A : “라디오에서 ‘역설 인생학’이란 코너를 진행할 때 ‘평상시 쓰는 말을 반대로 꼬아보자’고 해본 내용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원수를 어떻게 사랑하나. 사랑하는 사람을 더 사랑하고 원수는 거들떠보지도 말아야지’ 뭐 이런 식이죠. ‘전철에서 불량 학생들이 한 명을 집단폭행 하는데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는 기사를 봤어요. 그럼 그 기자는 뭘 했던 거죠? 그리고 어떤 50대가 말리다가 두들겨 맞았다고 쳐요. 집에 가면 마누라가 이 정의의 사도를 칭찬하기는커녕 주책없이 끼어들었다고 욕이나 하겠죠. 요컨대 우리가 너무 ‘명분’과 ‘체면’에 집착한다는 말입니다.”

Q : 일상을 뒤집어 보는 역발상의 힘은?
A : “생활 속에서 늘 다르게 보려고 노력하죠. 책 읽는 게 굉장히 큰 도움이 됩니다. 늘 연필을 갖고 다니면서 책 보다가 생각이 떠오르면 책에다가도 사정 없이 메모를 합니다. 요새는 낮술을 못 마시니 그 시간을 어떻게 극복할까 생각하다 지인들에게 손편지를 쓰게 됐어요. 역시 뭔가를 쓴다는 건 재미난 것 같아요.”

제비 카페의 이발소 의자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진 전유성 선생. 장정필 객원기자

“답장도 많이 오겠네요” 했더니 “전화가 오죠. 답장 하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아직 한 번도 못 받아봤어요. 말로는 ‘가보로 보관하겠어요’ ‘편지지 코팅해 놓을게요’ 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라며 특유의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전유성의 아이디어가 현실이나 일상이 된 게 정말 많다. 심야 통행금지가 해제된 이후 등장한 ‘심야 극장’과 ‘심야 볼링장’, ‘신선한 공기를 캔에 담아 팔기’ ‘요리 시설·재료를 제공하는 가게’ ‘맥주 주유소’ 등이다.

영화 카피라이터로도 이름을 날렸다. ‘하늘에서 콜라병 하나가 떨어지며 영화가 시작됩니다’(부시맨) ‘당신이 미성년자였을 때 그토록 보고 싶었던 영화’(겨울여자2) 등이 대표작이다.

책도 많이 썼는데 카피라이터 출신이어선지 안 사고는 못 배길 만큼 제목을 잘 지었다.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는 정보통신부에서 상까지 받았다.

화폐에 원로 코미디언 얼굴 들어갔으면

인월면의 젊은이들과 함께 만든 반달곰 빵집. 장정필 객원기자

자신의 아이디어가 실현된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뭐냐는 질문에 그는 ‘심야 볼링장’이라고 했다. “당시 심야 볼링장들 광고 문구가 다 똑같았어요. ‘국내 최고의 시설 아늑한 실내 분위기’. 오성볼링장에선 ‘돌아선 여인의 마음은 돌이킬 수 없지만 쓰러진 볼링 핀은 다시 세울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내세웠죠. 다 내가 만든 카피인데 사람들이 누가 만든 줄도 모른 채 쓰고 있더라고요. 그렇다고 ‘그거 내가 했어’라고 할 수도 없고.(웃음)”

Q : 노래방에서 노래 한 곡을 해도 작곡·작사가에게 저작권료가 가는데요. 개그 포맷이나 아이디어에도 저작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A : “코미디는 그게 단점이에요. 대신 반응이 빠르죠. 7시 뉴스를 가지고 코미디를 8시에 발표할 수 있어요. 그게 터져서 나가는 순간 공기 속으로 날아가 공통 소유가 되는 거죠. 유행어 같은 것도 마찬가지고. 대신 그런 걸로 또 출연해서 버는 게 있었으니까 난 괜찮다고 봐요. 그 볼링장 카피도 내가 좋아서 만든 거고 사장이 부탁한 게 아니잖아요. 그걸로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좋은 거죠.”

Q : 청도와 이곳 인월에서도 재미난 일들을 많이 하셨죠.
A : “청도에서는 폐(廢)교회를 카페로 만들었죠. 가 보면 스님들이 와서 피자 먹고 커피 마시고 있어요. 그분들이 언제 교회 올 일이 있었겠어요. 여기도 내가 잘 가던 소나무 밭에 내 또래가 농막 짓고 사는데 만날 풀만 베고 있어요. 소나무들이 너무 멋지고 뷰도 좋아서 카페를 만들라고 했는데 몇 달 만에 핫플이 됐죠.”

Q : 우리나라 화폐에 원로 코미디언 얼굴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셨는데요.
A : “일제시대와 6·25를 거치면서 선배 세대들이 얼마나 힘든 시절을 보냈습니까. 그들에게 잠시나마 웃음을 주고 시름을 달래줬던 분들이 원로 코미디언이잖아요. 그분들 얼굴이 화폐에 들어가는 게 문화가 성숙한 나라가 아닐까 생각해요. 당장 화폐가 어렵다면 우표에라도 넣는 게 좋겠다 싶어요.”

Q : 선생님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A : “야사(野史)에 남는 사람. 코미디계 정사(正史)에는 이경규 같은 사람이 남겠지만 나는 뒤에서 일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솔직히 내가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추고 말도 어눌한데 코미디언이 돼서 돈도 좀 벌고 인기도 얻었잖아요. 이 고마운 마음과 나만의 아이디어를 후배들에게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으로 극단을 만든 겁니다.”
그는 지리산을 대표하는 빵을 만들자고 이 지역 젊은이들과 의기투합해 ‘반달곰 빵’을 만들었다. 창업자금 5000만원으로 시작했는데 벌써 대박 조짐을 보인다고 한다. 어르신들과도 재미나게 논다. 마을 잔치 때 할아버지 합창단이 7곡을 불렀는데 음정·박자가 하나도 안 맞았고, 할머니들은 단발머리 가발을 쓰고 댄스를 했는데 한 명 빼고 동작이 다 틀렸다고 한다. 그런데도 객석은 환호의 도가니.

그는 인월에서도 작은 공연장을 만들고 싶어 한다. 전문 공연인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하는 신개념 토크쇼도 구상 중이다.

전유성 선생에게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게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한참 생각하던 그가 중국 지인들에게 했던 건배사를 들려줬다. “내가 있는 자리가 나 때문에 한 세 번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영재 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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