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에서 발견하는 혁명과 자유, 그리고 사랑
[황융하 기자]
▲ <레드 엠마> Living My Life, (1931) 1, 2권- 북튜브(1924) |
ⓒ 황융하 |
"아나키즘은 둘 다를 포용할 수 있었다. 크로포트킨이 혁명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조건을 면밀히 분석했다면, 입센은 인간 영혼의 혁명, 즉 개인성의 반란으로서 정점을 이루는 심리적 투쟁을 그렸다."
- <레드 엠마> 1권 660쪽.
세상이 우리를 묶어두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정말로 그렇게 살았던 시대는 없었다. 모든 삶이 순응과 복종의 실타래로 얽힌 채 평온한 듯하지만, 그 속에는 어디론가 치닫는 불씨가 숨겨져 있었다. 엠마 골드만의 생애를 알게 되었을 때, 은밀히 퍼져가는 독한 향기가 세상에 스며들었다. 묶인 이들 속에서만큼은 진실이 되고, 잠든 양심들을 일깨우는 향기, 불온한 불씨는 억눌린 세상의 깊숙이에서 살아 퍼졌다. 그녀의 이름은 감추어진 자유의 꿈을 천둥처럼 일깨우고, 억압의 담장을 넘어 저항과 희망을 실어 보냈다. '엠마 골드만'은 단지 텍스트가 아닌, 묶인 세상을 깨우는 빛이었다.
엠마의 삶을 피상적으로나마 겪으며, 고요한 강물 속에서 끝없이 요동치는 거친 물살이 거슬러 올라갔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녀는 무엇을 남겼을까, 이 질문은 결국 책을 읽는 자에게 돌아간다. 세상은 탈 없이 흘러가는 듯 고요할지언정, 언제든 터질 수 있는 격동의 불씨가 점화되고 있다는 걸 알게 해주었다. 엠마 골드만의 삶과 사상은 불씨를 꺼내 세상에 피워내고자 한 혁명의 외침이었다. '레드 엠마'는 강박처럼 뭉클한 외침을 날라주었다.
억눌리고 숨죽였던, 때로는 단기적인 저항이 불 지펴진 동토에서 터져 나온 벼락같은 목소리는 그녀의 혼이었다. 엠마는 급진적 사상가이자 동정의 혁명가였다. 그녀의 존재는 세상에 번개처럼 내리쳐 어둠을 가르는 빛이었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흔적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지탱하려 애쓰는 자유를 비춘다. 책은 그녀의 운명이자, 우리가 잃어선 안 될 정신으로 자리한다.
엠마 골드만(Emma Goldman, 1869~1940)의 자서전 <레드 엠마>(Living My Life, 1931)는 보편의 글을 넘어선다. 격동과 혼란의 시대를 살아간 여성 혁명가의 열정적인 삶과 투쟁을 묘사한 대작이다. 그녀의 삶은 미국의 노동운동, 페미니즘, 성적 자유를 위한 급진적 사상을 전파하며 많은 사회적 성과를 이룩했다. 엠마는 끝없는 내적 갈등과 외부의 억압에 직면했으며, 현실의 모순에 열렬하게 맞선 투쟁이었다.
'레드 엠마'에는 열악한 노동 환경과 개인적 고뇌 속에서 단련된 그녀의 사상이, 아나키스트로서의 길을 본격적으로 열어나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엠마는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공장과 연단을 넘나들며 연설과 선동으로 대중을 이끌었다. 사회적 혁명과 개인적 갈등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투쟁을 이어갔다. 혁명과 인간적 욕망 사이에서 치열하게 갈등하며 성장한 그녀의 신념을 보여준다. 감옥에서도 꺾이지 않으면서 그녀의 사상적 격정을 기록하기에 이른다. '어머니 대지' 잡지를 창간해 아나키즘을 확산하고 전쟁 징병 반대 운동을 이끈 그녀의 목소리는 지금까지도 울림을 준다.
혁명의 건장한 두 아들에게 돌아온 유일한 대답은 크론슈타트의 완전하고 즉각적인 항복을 요구하며 몰살의 고통을 감수하겠다는 지노비예프의 결의뿐이었다. 모든 반대 의견에 재갈을 물린 채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급박하게 진행되었다.
- <레드 엠마> 2권, 591쪽
그녀는 혁명적 열정을 사상적 주장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인간적 고뇌와 사랑의 갈등까지 품으며 진정한 해방의 의미를 찾아 나갔다. 사회적 불의와 사랑의 갈등 속에서 그녀는 끝없이 자신을 반추하며, 인간적 삶과 혁명적 이상을 완수하기 위해 둘 사이를 교차했다. 엠마는 단순히 억압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를 이루기 위한 깊은 내적 사유를 통해 개인과 사회가 공존할 방법을 모색했다.
▲ 엠마 골드만 1916년 뉴욕 유니온 스퀘어에서 열린 집회에서 연설하는 엠마 골드만 |
ⓒ https://commons.wikimedia |
엠마 골드만이 남긴 불씨는 과거의 이야기로 사그라지지 않는다. 지금도 우리의 곁에서 은은히 타오르며, 억압과 자유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새벽의 별처럼 길을 비춘다. 시대를 넘나들어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자유를 위해 분투한 삶의 숨결이었다. 이제는 이름을 넘어 자유와 저항의 얼굴로 빛난다. 엠마 골드만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어딘가에서 반항의 바람에 실려 울리고, 우리는 투쟁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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