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 목사의 고백록] 인생은 원더풀, 이별은 뷰티풀

2024. 10. 26.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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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족식 임종의식을 위해 경기도 양평 청란교회를 찾은 가족들이 어머니와 함께하고 있다. 하이패밀리 제공


나는 평생 여러 직책을 가졌다. 성직자이고 비영리기구(NPO) 수장이기도 하다. 글 나부랭이 좀 썼다고 칼럼니스트라 불리고 책 몇 권 펴냈다고 저술가란 직책도 얻었다. 방송국을 들락날락하다가 어쭙잖게 연예인이냐는 소리도 들었다. 머리통에 든 것도 없이 학교에서는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몇 차례 이사장이라는 어마무시한 직책에 버벅거리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임종감독’이 되어 ‘엔딩플래너’(ending planner)를 육성하고 있다. 이중 포기할 수 없는 직책이 있다면 임종감독이다. 임종감독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낸 이는 시인 이성복이었다. ‘죽음의 강을 건널 때 겁먹고 급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이쪽으로 바지만 걷고 오라’고. 그래서 ‘죽음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생사를 공부하는 사람, 스승이라고.

임종감독은 상 장례의 도우미를 넘어 임종상담가다. 죽음 너머를 말해주는 영혼의 산파(産婆)이고 한 인생의 보석 같은 이야기를 캐는 광부다. 캐낸 이야기는 떠나는 자와 남은 자 사이를 이어주는 영혼의 탯줄이 된다. 그래서 영혼의 산파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러브스토리의 연출가인 동시에 유일한 관객이 된다.

“엄마, 사랑해요.” “여보! 나요. 눈 좀 떠봐요.” 목소리는 절절했고 마음은 간절했다. 순간순간 눈을 떠 자녀들을 응시하는 눈길은 참으로 따뜻했다. 하늘도 이 장면을 보고 감탄해 동그란 구름의 햇살로 윙크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고 있었다.

가족들(김현석·허경순 부부)은 오래전부터 엄마와 함께 청란교회를 찾아와 예배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병세가 깊어지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우리는 함께 기도했다. “하나님, 이 가정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세요.” 드디어 주치의로부터 외출 허가가 떨어졌다. 가족들의 간절한 마음을 읽은 주치의의 결단이었다. 소원앰뷸런스가 출동하고 도착하기까지도 우리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드디어 교회당 쪽으로 들어서는 소원앰뷸런스! 나도 모르게 감동해 눈물 찔끔이었다.

예수께서 제자들 사랑으로 행하셨던 일을 그대로 따랐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요 13:1)

각티슈가 아닌 롤티슈의 사랑! 남편이 손에 물을 적셔 아내의 발을 어루만졌다. “여보, 나요. 수고했어. 고마워.” 옆에 있던 며느리가 “아빠(며느리의 시아버지를 향한 호칭), ‘사랑해요’라고 말씀하셔요.” 멈칫하던 남편이 고백했다. “사랑한단 말일세.” 아내는 힘찬 숨소리로 대답을 대신했다. 자녀들이 어머니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또 고백했다. 지켜보던 이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세족식의 임종의식이었다.

바람의 언덕으로 나오자 눈 앞에 펼쳐지는 성경의 벽! 그리고 거기 놓여 있던 솟대, ‘어 머 니’ 세 글자가 이 가족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오래전 설치한 작품이 이들을 위해 준비된 것일 줄이야…. 가족들은 비록 짧지만 가장 행복한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서툴던 남편도 아내에게 스스럼없이 볼에 입맞춤을 했다. 그때 내 귀에 들린 것은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 이 어머니는 열하루를 더 지내고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님 품에 고요히 안겼다.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표정이었다.

모든 인생은 ‘라스트 신(last scene)’으로 기억된다. 오로라(aurora)가 ‘신(神)의 커튼’이라면 라스트 신은 ‘신(神)이 머물다간 자리’다. 그러니 내가 어찌 이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나는 소망한다. 내 인생 라스트 신도 이와 같기를! “인생은 원더풀, 떠남은 뷰티풀!”

예수께서 살던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사형을 당한 사람의 시체는 매장할 권리를 갖지 못했다. 아리마대 요셉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청했다. 오늘날로 치면 아방가르드(기존 형식과 관념을 부정하고 혁신을 추구하는 경향)였다. 마누라의 간곡한 청도 외면했던 빌라도가 요셉의 부탁은 들어준다. 요셉은 정성을 다해 장례를 치른다. 세마포로 쌌다. 세마포 안에 몰약과 침향 등을 뿌렸다. 아직 장사 지낸 일 없는 무덤이었다. 실상은 자신이 들어갈 무덤이었다. 주님을 위해 기꺼이 내놓는다. 첫 번째 임종감독이었던 그를 성경은 이렇게 증언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착하고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송길원 하이패밀리 대표·동서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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