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아프리카에 두고 온 아들

김재중 2024. 10. 26.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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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중 종교국 부국장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에 두고 온 가족이 있다면 어떤 심정일까. 더욱이 그곳이 살기에 척박하고 마실 물조차 부족한 황량한 곳이라면…. 지난달 9~13일 월드비전 밀알의기적팀과 함께 아프리카 남동부 말라위에 취재를 다녀왔다. 그 과정에서 ‘미라클 키지토’라는 아이를 만났다. 눈이 똘망똘망한 네 살 남자아이였다. 먼저 미라클의 집을 찾아 거주 상태를 살펴봤다. 한부모 가정으로 어머니 홀로 네 남매를 키우고 있었다. 흙으로 지은 움막집에서 다섯 식구가 생활하는데 어머니는 정신질환으로 경제활동이 어려워 생계를 꾸려나가기 어렵다고 했다. 나는 미라클 가족 생계에 도움이 되도록 염소 한 마리와 한국에서 가져간 학용품과 비상의약품 등을 선물했다. 귀국해선 월드비전 지정후원 신청을 통해 이달부터 미라클과 그 가족에게 후원하고 있다. 무엇보다 미라클이 가족과 함께 건강하게 생활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잘 성장해 지역사회에 쓰임받는 이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이제 미라클은 내 마음속 아들이 됐다.

말라위를 처음 방문한 건 2002년 9월이었다. 월드비전과 공동으로 극심한 가뭄과 기근에 고통받고 있는 남아프리카 국가들의 실태를 알려 지구촌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자는 ‘글로벌 호프 캠페인’을 동행 취재한 것이 첫 인연이었다. 특히 말라위는 여성 상당수가 생계형 성매매로 에이즈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었다. 동시대를 사는 인류 형제들이 이처럼 가혹한 이중고에 시달리는데 국제사회는 무심할 정도로 침묵하던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로부터 22년이 지나 말라위를 다시 찾았다. 수도 릴롱궤에서 북동쪽으로 120㎞ 떨어진 음페레레 지역은 월드비전의 식수개선 사업으로 깨끗한 물을 공급받고 있었다. 물이 부족했던 주민들은 물이 풍부한 마을로 변화됐다고 기뻐했다. 하지만 말라위 산간지역과 내륙의 오지마을은 여전히 물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래도 말라위는 희망이 있다.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로 큰 말라위 호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정의 마지막 날 찾아간 말라위 호수는 남북 길이가 580㎞, 크기는 3만㎢로 바다 같았다. 그런데 왜 가뭄에 시달릴까. 정부 재정과 기술 부족으로 관개수로가 놓이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대신 월드비전 같은 국제 비정부기구(NGO)가 선진 기술과 후원금으로 곳곳에서 지하수를 길어올려 식수를 제공하고 있다.

말라위에 머무는 동안 은행이나 호텔 등 가는 곳마다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이 나라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해 얼마나 헌신적으로 봉사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국제사회가 말라위 정부에 어떤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을 때 교육이나 의료 지원 대신 축구 경기장이나 지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실제로 말라위 수도에는 월드컵 경기가 열릴 만한 국제 규모의 축구장이 번듯하게 잘 지어져 있다. 이 축구장이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할까. 말라위 국민들의 민생고 해결을 위해 정치인들의 각성이 필요하다.

국제구호활동을 벌이는 NGO 관계자들은 세계 어느 한 곳에서 전쟁이 터지면 걱정이 앞선다고 한다. 전쟁 지역에 구호물자가 집중돼 말라위처럼 전쟁은 없지만 일상이 전쟁 같은 지역에서의 구호활동은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22년 전 말라위에 갔을 때는 걸프전이 터졌고, 이번에는 우크라이나전과 중동전쟁이 한창이다. 하루빨리 전쟁이 종식돼 말라위처럼 도움이 절실한 나라들에 많은 구호의 손길이 닿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번 월드비전 밀알의기적팀에 동행했던 덕양중앙교회 이형기 목사와 불로교회(인천) 한민수 목사도 말라위 아동들과 개인 후원을 맺었고, 교회 성도들도 후원 결연에 동참했다.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어려운 지역의 형제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으로 함께하는 성도들도 이 시대에 부름받은 세상 속 선교사들이다.

김재중 종교국 부국장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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