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게 웃기는 인생] 늦게라도 결혼식장에 간 마음

2024. 10. 26. 00: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편성준 작가


책을 낼 때마다 ‘이분이 내 책의 추천사를 써준다면 참 좋겠다’ 하고 떠올리는 사람들이 꼭 있다. 첫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때는 김탁환 작가와 이명수 선생, 그리고 장석주 시인이었다. 출판사에서도 “그분들이 써주시면 너무 좋죠”라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추천사를 써 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막역한 사이는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세 분에게 무턱대고 추천사를 부탁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기적이 일어났다. 약속이나 한듯 똑같은 답장이 온 것이다. 추천사를 써 줄 테니 원고를 보내 달라, 최소한 두 번은 읽어야 하니 2주일 정도 시간을 달라…. 미리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똑같은 내용이었다. 세 분의 추천사 덕분에 그 책은 열흘 만에 2쇄를 찍고 4개월이 지나 6쇄에 돌입했다.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의 추천사를 써준 요조 작가와 개그맨 김태균도 마찬가지였다. 일방적인 내 부탁에 흔쾌히 원고를 읽고 추천사를 써줬다. 올해 나온 ‘읽는 기쁨’의 추천사를 써준 이연 유튜버와의 사연은 더 황당하다. 그와의 인연이라고는 요조 작가가 운영하던 책방무사 홍대점에서 그가 일일점원으로 일할 때 저자 사인을 받은 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이번 책은 이연 유튜버의 추천사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또 무턱대고 이메일을 보냈더니 흔쾌히 허락을 해줬다. 이연 유튜버가 보내온 ‘때로는 한 권의 책 때문에 인생을 좀 더 오래 살고 싶어진다’라는 감동적인 추천사 덕분에 이 책도 출간 2주일 만에 5쇄를 찍었다.

이연 유튜버의 결혼을 축하해주고 싶었다. 결혼식은 10월의 일요일이었다. 전철을 타고 가려다 출발 직전 마음을 바꿨다. 내비게이션 앱으로 보니 결혼식장인 아펠가모 반포점까지는 지하철보다 자동차가 빠르다는 것이었다. 그래, 승용차를 몰고 빨리 갔다 와서 밀린 칼럼과 책쓰기 워크숍 수업 준비를 하자. 면도를 하고 머리에 왁스를 바르느라 시간을 지체했다. 보령으로 내려간 아내가 미리 골라놓은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고 식장을 향해 달렸다.

생각보다 멀었고 반포대교가 아닌 성수대교 쪽으로 가는 게 이상했다. 중간에 도시고속도로를 잠깐 타기도 했다. 그래도 내비게이션이 맞겠지 하고 열심히 달렸고 결국 예식 시작 10분 전에 도착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식장엔 신랑신부가 없었다. 이럴 수가. 내가 간 곳은 아펠가모 반포점이 아닌 잠실점이었다.

급하게 서두르다가 내비게이션 화면에서 아펠가모 앞부분만 보고 ‘안내 시작’ 버튼을 누른 것이었다. 나는 다시 지하 4층의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뺐다. 주차비가 3000원 나왔고 아펠가모 반포점까지는 30분이 걸린다고 했다. 지금 빨리 가면 최소한 신랑신부에게 인사는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액셀을 밟았다.

반포점에 주차하고 식장으로 뛰어 들어가 신부 측 접수처로 가니 “마감됐습니다”라는 차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식장 맨 뒤에 서서 신랑신부의 행진도 끝난 결혼식장 안 풍경을 바라봤다. 80만 구독자를 자랑하는 유명 유튜버의 하객답게 연예인급으로 특이하고 멋진 손님들이 많았다. 키가 좀 작은 한 여성은 진짜 가수나 배우보다 더 예뻤다. 요즘은 친구들과 사진을 찍을 때 스마트폰을 이용한 플래시컷을 찍는 모양이었다. 하객들이 플래시 불을 밝힌 가운데 신랑과 신부가 활짝 웃고 키스를 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식당으로 간 뒤 식장에서 나오는 신랑신부를 붙잡고 겨우 인사를 했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내 손을 잡고 신부가 말했다. “괜찮아요. 이렇게 늦게라도 와주셨으니 됐죠.” 뒤늦게 돈봉투를 건넸더니 당황하며 신랑에게 넘겼다. 그러고 보니 웨딩드레스엔 주머니가 없었다. 하객들은 모두 피로연장으로 갔지만 축의금 낼 때 받는 식권을 받지 못한 나는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주차요금 정산이나 한 뒤 빨리 가자 생각하고 키오스크에 가서 자동차 뒷번호 네 자리를 누르니 그냥 가도 된다는 안내문이 떴다. 그래도 두 번째 주차요금은 안 내도 되네, 하고 속없이 기뻐했다.

지난주 아내가 보령으로 갈 때 따라나서지 않은 이유가 이 결혼식 참석 때문이었는데 정작 결혼식은 보지도 못하다니 황당했다. 하지만 늦게라도 전력을 다해 달려온 마음을 그들이 알 테니 그거면 됐지 싶었다. 안 오는 것보다 늦게라도 오는 게 항상 낫지. 그럼.

편성준 작가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