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는 왜 ‘장수 브랜드’에 열광하나 [최순화의 마케팅 ‘와우’]

2024. 10. 25.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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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일부 부유층 사이에서 ‘100년 전통 스위스산 명품’으로 소문나 수백만원에서 1억원에 팔린 ‘빈센트 앤 코(Vincent & Co.)’ 시계가 경기도 공장에서 중국산 부품으로 만든 8만원짜리로 밝혀졌다. 유럽 왕실에만 판매한다는 허위 광고에 혹한 구매자들은 의심 없이 거액을 지불했다. 이처럼 소비자는 브랜드 역사와 전통, 특별한 스토리에 매료되는 경향을 보인다. (연합뉴스)
2006년 한 사건으로 한국 사회가 떠들썩했다. 유명 연예인과 정치인을 비롯한 일부 부유층 사이에서 ‘100년 전통 스위스산 명품’으로 소문나 수백만원에서 1억원에 팔린 ‘빈센트 앤 코(Vincent & Co.)’ 시계가 경기도 공장에서 중국산 부품으로 만든 8만원짜리로 밝혀진 것. 다이애나 왕세자비, 그레이스 켈리 왕비 등 유럽 왕실에만 판매한다는 허위 광고에 혹한 구매자들은 의심 없이 거액을 지불했다. 브랜드 역사와 전통, 특별한 스토리에 매료되는 소비자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 사기극이었다.

소비자가 유구한 역사를 지닌 것으로 알려진 기업이나 브랜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데는, 이들 기업이 특별한 경쟁력을 축적했다는 믿음이 작용한다.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생존해온 오랜 시간 동안 품질과 생산 과정을 개선하고 기업 운영 노하우를 쌓아왔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특히 가문의 이름을 내세우거나 가족이 경영을 승계한 기업은 창업정신과 원칙을 대대로 유지하며 고유성을 보유한 것으로 인식된다.

특히 기업이 겪은 시행착오나 성과에 관한 생생한 스토리를 제시하면 소비자 확신이 커지고 마케팅 효과가 증폭된다. 예를 들어 에르메스는 1837년 마구상으로, 루이비통은 1854년 트렁크 제작 공방으로 시작해 독보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유명인과 관련된 다양한 일화를 확보했다. 이들은 최고급 제품과 서비스, 역사 속의 흥미로운 스토리를 통해 희소하고 모방이 어려운 헤리티지 가치를 극대화해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한다.

기업과 브랜드 역사의 영향력은 제품이나 시장 특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변화가 많고 불확실성이 큰 환경에서 역사의 효과는 더 명확해진다. 음료수 시장을 배경으로 실시한 연구 결과를 보면, 소비자의 장수 브랜드 선호 경향은 변동폭이 작고 안정적인 상황보다 제품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해 신제품 출시 속도가 빠르고 경쟁 강도가 높은 상황에서 더욱 강한 것으로 분석됐다. 즉 경쟁이 심하고 제품, 브랜드 생존율이 낮은 시장일수록 오랜 역사를 지닌 브랜드가 누릴 수 있는 마케팅 효과가 커질 수 있다.

소비자가 인식하는 리스크 수준, 관여도, 제시된 정보의 양 등도 역사 효과에 영향을 미친다. 제품 경험이 부족하거나 리스크 인식 수준이 높을 때 소비자는 오래된 기업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이사 업체를 결정하는 상황에서 고가품이나 깨지기 쉬운 물품이 많은 경우 오랜 역사를 강조하는 업체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의사 결정에 사용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많아질수록 기업 수명에 대한 의존도는 낮아진다. 소비자 관여도가 높거나 제품과 서비스 속성에 관한 정보량이 많은 경우 기업 수명 이외의 여러 단서가 구매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흐르는 시간과 함께 역사는 쌓이지만, 누구나 가치 있는 역사를 가질 수는 없다. 1924년 설립된 독일의 명품 패션 브랜드 휴고 보스(Hugo Boss)의 경우 100년 역사를 마케팅에 활용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와 협력하며 대규모의 군복과 작업복을 납품한 것이 브랜드 성장의 발판이었음을 상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역사의 내용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전략적 판단과 결과에 따라 역사의 가치와 영향력은 달라진다. 기업이 걸어온 발자취가 오늘날, 나아가 미래 생존과 발전의 근원이라는 믿음이 공유될 때 가치 있는 역사가 축적되고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2호 (2024.10.30~2024.11.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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