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손가락’ 삼바? 이젠 ‘귀한 손가락’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2024. 10. 25. 21: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나야, 바이오’…풀 죽은 삼성그룹서 홀로 훨훨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한때 그룹의 ‘아픈 손가락’으로 불렸다. 투입된 돈은 많은데 이렇다 할 실적을 못 내서다. 2011년 설립 이후 6년 동안 적자에 허덕였다. 하지만 현재 위상은 정반대다. 위기를 마주한 그룹 주력 계열사들과 달리 홀로 고공 성장을 이어간다. 그룹 구원투수로 불릴 정도다. 수치로도 확인 가능하다. 시가총액 1조원 이상인 삼성그룹 계열사 15곳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상품인 ‘KODEX 삼성그룹’ 내 삼성바이오로직스 시가총액 비중은 꾸준히 상승 중이다. 올해 초 10.6% 수준에서 10월 16일 기준 15.2%까지 높아졌다.

증권가에서 내다보는 향후 전망도 밝다. 연간 4조5000억원 매출도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달성 시 역대 최대치다. 다올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은 10월 내놓은 리포트에서 각각 연간 매출 전망치 4조5038억원, 4조5153억원을 제시했다. ① 미국의 중국 바이오 기업 견제를 위한 ‘생물보안법(Biosecure Act)’ 수혜로 빅파마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 ② 선제적으로 확대한 캐파(생산능력)를 앞세워 대규모 계약을 잇달아 따내고 있다는 점이 근거다. 한승연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생물보안법의 경우 연내 미국 상원 승인도 가능하다”며 “중장기 공급 경쟁 해소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제2바이오캠퍼스 조감도. (삼성바이오로직스 제공)
선제 캐파 확장 전략 적중

美·유럽 좁다…이젠 日까지 확장

고공행진 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미국 생물보안법이다. 생물보안법에는 미국의 중국 바이오 기업 견제 의지가 담겼다. 중국이 강세를 보인 위탁개발생산(CDMO) 분야가 주 타깃이다. CDMO 고객사인 전 세계 빅파마, 바이오텍 입장은 곤란해졌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영업을 이어가려면 중국 기업과 결별하고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야 해서다. 이미 미국 하원은 생물보안법을 통과시켰고, 상원도 이르면 올해 안에 마무리할 가능성이 높다.

법안 통과 시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중국 기업은 우시바이오로직스다. 위탁개발(CDO, 잠깐용어 참조) 경쟁력을 발판 삼아 위탁생산(CMO, 잠깐용어 참조)까지 존재감을 넓힌 곳이다. 시장점유율도 10%를 훌쩍 넘어선다. 우시바이오로직스는 매출 절반 가까이가 미국에서 발생한다. 생물보안법으로 인한 실적 직격탄이 불가피한 셈이다. 이에 우시바이오로직스는 일부 생산시설 매각 등 생존을 위한 결단을 고려 중이다.

반면 경쟁 CDMO 입장에선 기회다. 특히 선제적으로 캐파를 확장한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수혜가 쏠리는 모양새다. 설립 초기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 전략은 ‘캐파 확장’에 초점이 맞춰졌다. CDMO는 일종의 아웃소싱 산업이다. 특히 CMO는 반도체 파운드리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늘어난 캐파가 곧 경쟁력이 된다. 꾸준히 캐파를 늘린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22년 기준 전 세계 CDMO 캐파 1위로 우뚝 올라섰다. 지난해 6월 4공장을 완공하면서 현재 1·2·3·4공장 총합 60만4000리터 캐파를 확보했다. 2025년 4월 가동을 목표로 5공장도 건설 중인데 완공 시 78만4000리터의 캐파를 갖게 된다. 현재 진척률은 70% 정도다. 이에 더해 2027년까지 6공장을 짓고 2032년까지 7공장과 8공장을 완공할 예정이다.

수혜는 이미 현실화 단계다. 존 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는 지난 6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2024 바이오USA’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생물보안법 추진으로 회사에 들어오는 수주 논의가 이전과 비교해 2배 급증했다”고 밝혔다. 이미 매출 기준 톱20 제약사 중 17곳을 고객사로 확보했다.

다만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아직 만족 못하는 눈치다. 생물보안법을 앞세워 신규 시장까지 개척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눈여겨보는 지역은 일본이다. 미국과 유럽에 이어 3번째로 큰 시장이다. 존 림 대표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세계 제약 산업 전시회(CPHI)’를 제쳐두고 일본 ‘바이오 재팬 2024’를 향한 이유다. 존 림 대표는 바이오 재팬 2024 기자간담회에서 “이제는 세계 20~40위권의 일본 제약사를 대상으로 수주 활동을 강화할 계획”이라며 “일본 톱10 제약사 중 5곳과 계약을 체결하거나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제약사는 그간 중국 CDMO와 협업하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생물보안법의 연내 상원 통과 가능성이 높아지자 새로운 파트너를 찾고 있다. 존 림 대표는 “일본은 한국처럼 큰 CDMO 기업이 없고, 삼성은 이미 일본 몇몇 제약 회사와 일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진출이) 힘들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존재감 옅던 CDO도 기회 잡나

박사급 인력 늘리고 플랫폼 확대…

주목받지 못하던 CDO 분야도 생물보안법과 함께 떠오르는 분위기다. 경쟁사 우시바이오로직스는 CDO를 시작으로 CMO 영역까지 확장한 기업이다. CDO 부문에서도 다수의 고객을 확보 중이다. 하지만 생물보안법으로 이들의 이탈 가능성이 커졌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입장에선 기회의 장이 열린 셈이다. 하현수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생물보안법 시행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중장기적으로 중국 CDO 기업 입지가 좁아질 것으로 보임에 따라 삼성바이오로직스 수혜가 기대된다”며 “또 금리 인하로 바이오텍의 자금 조달도 용이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임상 개발 파이프라인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상 임상 개발이 활발해지면 CDO 수요도 늘어난다.

그간 CDO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었다.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떨어져서다. CMO 캐파 확장을 위한 재원 마련이 시급했던 삼성바이오로직스 입장에선 급한 과제가 아니었다. 매출 규모로도 드러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CDMO 부문 매출을 ‘제품 매출’ ‘서비스 매출’로 구분해 사업보고서에 공시한다. 이 중 CDO 매출은 서비스 매출에 포함된다. 올해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서비스 매출은 535억원이다. 매출 비중은 2.5% 정도다. 서비스 매출에 CMO 서비스 매출도 합산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CDO 매출은 이보다 낮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앞으로는 집중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긍정적 영업 환경이 조성된 데다 CDO 역량이 향후 매출 확대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아서다. 주요 빅파마 대부분을 CMO 고객으로 확보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향후 과제는 신규 고객 확대다. 이 과정에서 CDO가 주목받는다. CDO는 일종의 ‘마케팅 효과’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바이오로직스와 협업한 A바이오텍이 신약 개발에 성공했다고 치자. 이 경우 A바이오텍은 CMO 물량도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맡길 가능성이 높다. 굳이 다른 협력사를 택해 리스크를 감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CDO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앞으로 가야 하는 길인 ‘신약 개발’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강화해야 하는 분야다.

경쟁력 강화 움직임도 감지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9월 ‘2024 바이오 프로세스 인터내셔널(BPI)’에서 신규 CDO 플랫폼 2종을 공개했다. 각각 세포주와 공정 개발 단계에서 항체의약품의 약효와 품질을 향상시키는 ‘에스-에이퓨초’ ‘에스-옵티차지’다. 이를 포함하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확보한 CDO 플랫폼은 총 9개. 이 중 5개 플랫폼(에스-초지언트, 에스-글린, 에스-텐시파이, 에스-에이퓨초, 에스-옵티차지)이 2023년 이후 발표됐다.

CDO 개발센터 내 박사급 인력 확보에도 힘쓰고 있다. CDO 개발센터 인력 구성을 공개하기 시작한 2023년 1분기 박사급 인력은 16명이었다. 지난해 말 22명까지 늘었고 올해 상반기에는 24명까지 확대됐다.

잠깐용어

*위탁개발(CDO)

‘Contract Development Organization’의 약어. 자체 세포주 혹은 공정 개발 역량이 없는 중소형 바이오텍 등을 대상으로 개발 서비스를 제공하는 ‘위탁개발’ 서비스다. 주로 대량 생산 앞단의 연구개발과 임상시험을 위한 소규모 생산, 공정 최적화 등을 담당한다.

*위탁생산(CMO)

‘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의 약어. 말 그대로 제약사의 의약품 등을 위탁 생산하는 형태다. 제품의 대량 생산과 포장, 품질 관리 등이 포함된다. 이미 개발이 끝난 의약품의 대량 생산을 담당한다. CMO는 상대적으로 경기 변동에 덜 민감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사업보고서에서 “필수재 성격의 의약품을 대량으로 위탁생산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경기 변동 영향에 민감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1호 (2024.10.23~2024.10.29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