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책과 길] “기금회는 내 셋째아들”… 유산 ⅓ 물려준 리카싱

맹경환 2024. 10. 25.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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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의 부
왕징 지음, 김우성 옮김
필로틱, 360쪽, 1만8000원
2016년 실적 발표 기자회견 중인 리카싱 당시 CK 허치슨 홀딩스 회장. AP뉴시스


홍콩의 슈퍼맨, 아시아 최고의 부호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리카싱 전 청쿵그룹(長江集團) 회장. 책은 리카싱이 무일푼 소년 가장으로 시작해 글로벌 기업인으로 성공하기까지 여정과 투자 원칙, 경영 철학을 담고 있다. 저자는 자서전을 보듯 리카싱 1인칭으로 서술해 몰입도를 높이고 장마다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액션 플랜’을 담았다.


리카싱은 1928년 중국 광둥성에서 태어났다. 중일 전쟁을 피해 그의 가족은 홍콩으로 이주한다. 11세 때였다.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새로운 삶을 기대했지만 14세 때 아버지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시련이 시작된다. 리카싱은 그 시련을 성공의 기반으로 만들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먼저 돈을 벌고 그 후에 공부하자”는 마음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찻집 종업원으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찻집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학교였다. 다양한 손님의 출신과 직업, 성격을 추측하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사람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잠시 외삼촌이 하던 시계점에서 일하던 리카싱은 새로운 도전을 위해 철물점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미래를 위해 중학교 과정은 독학했고 영어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우연히 영어 잡지를 보다 인생을 바꾸는 ‘지식’을 얻는다. 서양에서 플라스틱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리카싱은 직감했다. ‘홍콩도 철에서 플라스틱으로 산업이 전환될 것이다.’ 곧바로 플라스틱 공장에 취업했다. 일하면서 최신 지식과 세계 비즈니스 동향을 끊임없이 탐구했다. 어느덧 총지배인 자리까지 오른 그는 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플라스틱 공장을 창업한 것이다. 그는 창업이 무한한 가능성과 기회를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돈이 없다는 이유로 도전을 미룬다”면서 “사실 당신 자신이 금광이다. 많은 사람은 이 사실을 외면하고 잠재력을 묻어두려 한다”고 안타까워한다. 회사 이름은 양쯔강을 뜻하는 장강(長江)의 광둥어 발음인 청쿵으로 정했다. 청쿵은 작은 물줄기를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 거대한 강으로 이룬다. 그의 이상이 담긴 이름이다. 첫 제품으로 플라스틱 장난감 총을 생산한 후 플라스틱 꽃을 만들면서 성공의 길로 들어섰다.

리카싱은 세계 최고의 부자는 아니었지만 단 한 번도 망하지 않았다는 명성을 갖고 있다. ‘손에 돈이 있으면 마음이 불안하지 않다’는 안정 지향적 경영 철학 덕분이다. 한차례 부도 위기를 겪은 1956년부터 리카싱은 은행에 즉시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을 예치하는 습관을 들였다. 97년 아시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도 흔들리지 않는 비결이 됐다.

리카싱의 경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말은 신용, 신뢰, 호의 등이다. 플라스틱 장난감을 만들던 창업 초기 거래처에서 대규모 주문을 취소하면서 큰 타격을 받는다. 그는 계약 이행을 요구하거나 손해 배상을 청구하지 않았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은 결국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플라스틱 꽃 생산에 뛰어든 뒤에는 그 회사의 도움으로 새로운 거래처를 확보할 수 있었다. 리카싱은 투자 방향을 부동산과 주식 시장으로 전환한 후에도 한동안 플라스틱 공장을 유지했다. 오래된 직원들의 생계를 위한 것이었다. 결국 문을 닫았을 때는 직원들을 다른 빌딩 관리 업무에 배치했다. 저자는 사장과 리더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리더의 힘은 인간적인 매력에서 나온다. 리더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도록 한다. 사장은 사람들을 지배하며, 직원들을 스스로를 작게 느끼게 만든다.”

2012년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과 면담하는 리카싱(위쪽)과 ‘리카싱 기금회’ 홈페이지 설립자 소개란에 실린 리카싱. AP뉴시스


큰 부를 이룬 후 리카싱은 ‘리카싱 기금회’라는 전담 자선기금을 마련해 교육과 의료 분야에 기부를 해왔다. 2003년에는 중요한 결심을 한다. 재산의 3분의 1을 기금회에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두 아들이 있던 리카싱은 기금회를 ‘셋째 아들’이라고 부르고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는 중국의 한 TV 방송에서 ‘부귀(富貴)’에 대해 이런 말을 한다. “많은 사람은 부유하지만 귀하지 않다.” 그의 인생 철학이 담긴 말이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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