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본시장, 성장성 신뢰 사라진 채 포퓰리즘만 남아”
만난 사람=권기석 경제부장
-밸류업 하겠다는 한국 증시, 지지부진하다.
“한국 경제의 구조와 투자문화, 전반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 결합된 복합적 문제다. 주식시장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한국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신뢰감이 사라진 상황이다. 성장에 대한 신뢰를 국내외에 줄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산업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현 산업 구조는 경기 연동성이 너무 강하다. 내수시장이 없으니 글로벌 마켓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안정적 수익이 나는 시장이 아니라 왔다 갔다 한다. 그럼 투자자 입장에선 투자 못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일본에서 주가가 올랐는데 밸류업 때문인가? 아니다. 그건 핵심을 덮는 얘기다. 일본 내 주가가 오른 기업은 도시바 후지쓰 이런 곳이 아니다. 첨단 산업 관련 기업들이 올랐다. 투자 대상이 되는 산업과 기업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봐야 한다. 한국의 경우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파도에 대응을 잘 못 했다. 삼성전자부터 못 하고 있지 않나. 한국이 제조 강국인데 제조업에 AI 등 첨단 산업이 물 스며들 듯 스며들어야 할 국면인데 그걸 못 하고 있다. 성장동력이 그만큼 적어지는 것이다. ‘금투세 때문에 미장 간다?’ 말도 안 된다. 미국도 금투세 뗀다. 미국에 첨단 산업이 있어서 가는 거다. 한국에 좋은 기업 있으면 안 나간다.”
-금투세는 민주당에서 토론하고도 결정 못 하고 있다. 빨리 결정해서 불확실성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금투세가 정치적인 세금으로 바뀌었다. (주식 투자 인구가) ‘2000만표다’ 이러는데, 과도하게 인식하는 건 사실이다. 포퓰리즘이 몇 년째 자본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밸류업 논쟁도 초기 시작이 불순하지 않았나. 총선용이었다. 선거가 없는 지금부터 1년 정도 사이에 금투세든 밸류업이든 새롭게 재편할 필요가 있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다음 선거나 대선에 부담되지 않는 방향으로 의사결정 하려고 할 것이다.”
-상법 개정 문제도 논란이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까지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하나.
“여야 다 얘기하다가 쑥 들어갔는데, 여러 안을 절충할 필요는 있다. 이사 충실 의무 조항을 조금 부드럽게 할 필요가 있다. 시한을 두고 단계별로 추진하는 것도 방법이다. ‘주주’ 이 말을 못 넣는 건 ‘3세 경영’ 때문이다. 고려아연 사태도 3세 동업자 간 싸움이다. (쩐의 전쟁) 이런 거 하지 말자는 게 밸류업인데 아무도 그렇게 얘기하지 않는다.”
-말씀대로 자본시장 포퓰리즘 최근 심화된 걸 느낀다. 개인투자자가 떼쓰면 다 받아주는 모양새가 됐다.
“심각하다. 주식시장 보면 이해가 잘 될 거 같은데 오전 9시 시작해 오후 3시30분에 끝나는데 1분짜리 차트 보니 이건 완전 게임이다. (조금만 안 좋으면) 공매도 때문이라고 한다. (또 안 좋으면) 금투세 때문이라고 한다. 불확실한 내용으로 통계도 아닌 걸로 밀어붙인다. 오늘 사고파는 게 60%라는 건 심각한 문제다. 자기 생각과 다른 얘기도 듣고 해야 건전한 거다. 양극단 ‘아령형 사회’라고 하는데 그 안에선 전체주의가 통한다. 다른 얘기 하면 죽는다. 적군이 얘기하면 벌떼처럼 달려든다. (출마하지 않고) 국회에서 나온 것도 이런 이유다. ‘저 사람은 민주당이니 진보 시각만 얘기할 거다’라는 인식을 갖고 날 바라본다. 그러니까 내 얘길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밸류업이든 금투세든 여러 제도가 장기적으로 준비돼야 한다. 장기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 투자도 단기 투자 비중이 너무 높다. ‘좋은 주식인데 떨어질 때마다 살 거다’ 하는 주체가 없다. 위험을 회피하면서 단기 이익 많이 내려고만 한다. 증권사도 고민 많이 해야 한다. (장기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은) 상장지수펀드(ETF)만 남았다. ETF는 시장을 따라다니는 상품이다. 장기 투자자 공제, 배당 분리과세 확대해서 장기 투자 유도해야 한다. 장기 투자자에게 배당 많이 주는 것도 좋다. 이건 교육과도 연결된다. 장기 투자 안 되는 이유는 교육이 안 돼서다. 2015~2016년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시절 체계적으로 하려고 했다. 교과서도 만들었다. 문제는 학교에서 안 가르친다.”
-2018년 책 ‘수축사회’를 썼다. 지금도 그때의 문제의식이 유효한가.
“더 강화되고 있다. 너무 잘 맞아서 깜짝 놀랄 정도다. 그런데 인정을 안 한다. 과거형(팽창사회)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일본 기시다 정부가 ‘새로운 자본주의’를 주장했는데, 우선적인 원칙은 성장이었다. 성장하는 이유는 분배에 필요한 재원을 위해서라고 했다. 분배를 왜 해야 하나. 모두가 소비에 참여해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우린 이런 철학이 부족하다.”
정리=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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