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여론조사 조작, 명태균뿐일까

김지방 2024. 10. 25. 00:4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지방 디지털뉴스센터장

의뢰자 입맛 맞춰 결과 내고
선거철 반짝 장사로 유지되는
실망스러운 업체 적지 않아

과학적 방법론 계속 발전하고
정확성 꾸준히 높아지는 지금
조작 시도 찾아내 엄벌해야

2022년 대선 때 정기 여론조사에 참여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과 유튜브 방송도 했다. 시사평론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많은 얘기를 쏟아내던 시기였다. 막연한 ‘썰’보다는 여론조사가 더 과학적인 민심의 척도라고 생각했다. 여론조사 회사들이 오해와 비난을 받지만, 자존심과 전문성은 살아 있으리라 믿었다. “우리는 객관적으로 조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민심이 어떻다고 떠들지만 가장 믿을 수 있는 건 여론조사 결과입니다”라고 말해주길 기대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들여다볼 수 있었던 여론조사업계의 내부 분위기는 더 실망스러웠다. 이 여론조사 회사는 어느 당 편이고, 저 회사는 다른 당 입맛에 맞게 결과를 주무른다는 소문을 이른바 선수들이 퍼트리고 있었다. 구조적인 문제도 보였다. 적지 않은 여론조사 회사들이 정치 컨설팅을 겸하고 있었다. 의뢰자를 위해 여론조사를 입맛에 맞게 만들어 줄 가능성이 커 보였다. 자신들끼리도 믿는 여론조사는 오랜 경륜이 있는 몇몇 곳뿐이었다.

오랫동안 여론조사를 해온 이들은 “적지 않은 여론조사 회사들이 선거철 정치권의 의뢰로 유지되는 상황이라 결과를 마사지해 달라는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면서 “처음부터 정치권 진출을 위해 이 업계를 발판으로 삼는 듯 보이는 사람도 있다”고 우려했다. 여론조사 회사 대표가 정당에 공천을 신청하고 실제로 출마하거나 선거 캠프에서 중요한 보직을 맡는 모습도 흔했다. 자리 대신 돈을 요구한 사람이 명태균 한 사람뿐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이유다.

물론 명씨의 사례는 선을 한참 넘었다. 여론조사 데이터를 어느 정도 보정하는 일은 기술적으로 피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까지 공개된 증언에 따르면 명씨의 경우는 아예 데이터 자체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렇게 만든 결과를 정치권에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뒤로 은밀한 대가를 요구하고 협박했다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여론조사가 선거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는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단일화를 어렵게 성사시켰다.

2022년 대선 때에도 국민일보 자회사인 쿠키뉴스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후보가 처음으로 1위를 기록하면서 대세를 확인했다.

반대로 음모론의 불을 지피며 불신을 조장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응답률과 조사 방식에 대한 비판이다. 전국 단위 여론조사는 대부분 응답률이 5% 미만이다. 이를 오해해서 표본이 2000명이면 5%인 100명만 응답한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최종 응답이 2000명일 때 4만명을 접촉한 것).

표본은 지역·나이·성별의 3가지 조건에 들어맞아야 한다. 1999명의 응답을 받았더라도 제주도에 사는 20대 여성 1명의 답을 받지 못했다면 그 한 사람을 찾기 위해 계속 전화를 해야 한다. 정확성을 높이다 보면 오히려 응답률이 낮아지기도 한다.

무선전화와 자동응답시스템(ARS) 기계음을 통한 조사를 신뢰할 수 없다는 오해도 있다. 이것 역시 조사하기 나름이다.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통신사들이 제공하는 무선전화 안심번호는 가입자의 지역, 나이, 성별로 분류돼 있다. 기계음 때문에 응답률이 낮아지는 점은 있지만 지역번호뿐인 유선전화나 아무런 가입자 정보 없는 무작위번호(RDD)보다 표본의 신뢰도는 더 높다.

안심번호는 번호 1개당 300원이 넘는 대가를 지급해야 하고 3일만 유효하기 때문에 RDD로 대신하는데, 이 경우가 더 문제다. “기성 언론사가 의뢰하는 여론조사를 믿을 수 없다”면서 스스로 모금을 해 여론조사 회사를 차린 김어준씨의 경우 표본은 많지만 비용 문제 때문인지 RDD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지난 10·16 보궐선거에서 개표 결과와 크게 차이가 나 지지자들도 비판했다. 명씨의 경우 아예 표본 자체를 자신이 관리했다니, 도저히 정상적인 여론조사라 부를 수 없는 수준이다.

언론의 경마식 보도나 너무 많은 여론조사가 문제라는 비판은 원론적으로는 맞지만 비현실적이다. 한국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이고, 전국 단위 여론조사의 정확성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부터 정당하고 과학적인 여론조사를 선별할 줄 알아야 한다. 여론조사 결과를 조작하려는 시도는 혹세무민이다. 발본색원해야 한다.

김지방 디지털뉴스센터장 fattykim@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