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올 때 우산 뺏는다? NO···‘비싼 우산’ 씌워주는 메리츠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문지민 매경이코노미 기자(moon.jimin@mk.co.kr) 2024. 10. 2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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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보 잡고 고금리…귀신같은 투자 판단
‘혁신 선봉’ vs ‘물흐린다’ 엇갈린 평가

메리츠금융그룹은 지금까지 국내 금융권에선 살펴볼 수 없었던 독특한 전략을 펴 최근 수년간 고속 성장을 구가했다. 메리츠금융지주 주가는 연일 신고가를 갈아치우며 처음 10만원대를 돌파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지난 7월 4일 국내 금융지주 최초로 밸류업 계획을 내놔 주목받았다. 메리츠증권은 지난 2018년 1분기부터 2024년 2분기까지 26분기 연속 1000억원 이상 당기순이익을 내는 중이다. 메리츠화재는 2022년 1분기 이후 10분기 연속 당기순이익 2000억원(IFRS17 전환 기준)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실적 등 숫자로 판가름 났듯 긍정적 평가가 앞서지만, 메리츠금융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도 늘었다. 고수익을 좇는 것으로 정평이 난 메리츠증권을 두고는 모험자본 공급자라는 평가와 지나치게 공격적인 금융사라는 상반된 시선이 공존한다. 얄미울 정도로 합법적 절차를 밟지만,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는 과정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입길에 오를 때도 적지 않다.

고려아연·MBK 간 경영권 분쟁의 숨은 승자로 메리츠증권이 주목받는다. 메리츠증권은 고려아연에 고금리로 돈을 대줘 600억원대 이자를 받는다. 이는 ‘원메리츠’ 재편 이후 메리츠금융 의사 결정 속도가 더욱 빨라진 결과로 풀이된다. 2022년 화재와 증권 100% 자회사 편입 뒤 메리츠금융은 눈부신 성장을 일궜다. 지난해 연결 기준 메리츠금융지주 순이익은 2조1333억원으로, 사상 처음 2조원대로 올라섰다. 연결 기준 총자산은 102조2627억원으로 처음 100조원을 돌파했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8.2%로 업계 최고 수준이다. 핵심 자회사 메리츠증권과 화재 맹활약 덕분이다.

메리츠증권 영업 전략 키워드는 ‘금리’와 ‘담보’다. 한계 상황에 몰린 기업을 대상으로 확실한 담보를 잡아 하방 위험을 막고 최대한의 금리를 얻어내는 전략으로 정평이 났다. 부동산 보유 기업이라면 해당 자산을 담보로 잡는다. 그렇지 않은 기업이라면 무위험자산 국고채를 매수하도록 한다.

증권: 줄타는 모험자본

전통 금융 역할 소홀 지적도

급전이 절박한 기업을 철저히 공략한다는 점도 눈에 띄는 전략이다. 고려아연(사모사채 1조원), 롯데그룹(펀드 1조5000억원), 롯데건설(대출 5000억원), M캐피탈(대출 2800억원) 등이 이런 경우다.

메리츠증권은 경영권 분쟁에 휘말린 고려아연에 1조원을 빌려주면서 연 6.5% 금리를 받는다. 사모사채 특성을 고려해도 조달 금리가 지나치게 높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국기업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는 고려아연 신용등급을 ‘AA+(안정적)’로 평가했다. AA+는 10개 신용등급 가운데 최상위 AAA 바로 다음 등급이다. 같은 등급으로 공모사채 조달에 나섰더라면 조달 금리는 3%대로 예상된다.

한시가 급한 고려아연 입장에선 금리가 다소 비싸더라도 최대치를 신속하게 빌릴 수 있는 금융사를 수소문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공모사채는 투자자 수요예측 등을 거쳐야 해 자금 조달에 적잖은 시간이 소요된다. 메리츠증권은 이런 사정을 꿰뚫고 공모사채 대비 2배가량 높은 금리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유동성 위기에 휘말린 롯데그룹·건설과 M캐피탈도 메리츠증권을 찾았다. 메리츠증권은 M캐피탈에 연 9%대 금리를 받아냈다. 롯데건설 지원 펀드를 통해서는 연 13% 이자를 받았다.

물론 확실한 담보 설정과 이자·수수료 취득을 비도덕적이라 비난할 수는 없다. 금융사는 이윤을 남기는 게 주된 목적이다. 다만, 투자금 용처를 크게 가리지 않는 메리츠 특유의 영업 행태는 양면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때로는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

무엇보다 기업과 산업 육성이라는 전통 금융의 핵심 정체성에 부합하는지 물음표가 던져진다.

메리츠증권 M캐피탈 담보대출 건을 두고도 시장에선 뒷말이 따랐다. 이 회사는 전 임원을 비롯 여러 이해관계자가 각종 비리에 휘말려 1심에서 줄줄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메리츠증권은 담보 질권 설정 과정에서 7000억원대 우량자산도 싹쓸이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비록 1심이지만 실형 선고를 받은 관계자들이 수두룩한 기업에 수천억원을 투자하는 안건은 어지간한 금융사라면 투자심의위원회에도 올라가기 힘들다”고 돌아봤다.

재계에서도 메리츠증권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이 늘고 있다. 통상 대형 증권사는 주요 대기업과 오랜 기간 관계를 맺으며 회사채 발행과 계열사 상장 등을 맡아 수수료 수익을 챙긴다. 메리츠증권은 상호협력적 관계보단 개별 거래 수익성에 주력해 연속성 있는 거래가 드물다. 유동성 위기 때 인연을 맺은 롯데그룹과도 껄끄러운 관계가 됐단 평가다.

대기업 재무부서 관계자는 “한계 상황을 지렛대 삼아 확보한 협상력으로 최대치의 금리를 확보한다는 점에서 메리츠증권은 ‘최종 대부자’라는 인식이 짙다”며 “메리츠증권을 노크했다는 소문만으로도 수군거림이 들려 가급적 만나고 싶지 않은 상대”라고 털어놨다.

금융당국 안팎에선 메리츠증권의 이런 평판이 향후 초대형 IB 인가 획득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단 수군거림도 들린다. 기술력과 잠재력 있는 기업이 자금 조달을 못해 도산하지 않게 모험자본을 공급해달라는 게 초대형 IB 입법 취지다. IB 핵심 기능 중 하나가 기업공개(IPO)지만, 메리츠증권은 IPO 전담 부서가 없다. 올 들어 실적도 전무하다.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회사채 발행 주관에도 소극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한계기업에 얻은 수익으로 매년 성과급 잔치를 벌인다는 평판은 메리츠에도 부담”이라며 “초대형 IB 인가 획득을 위해서는 성장 전략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원북 체제’ 자본 효율성↑

리스크 확산 땐 ‘양날의 검’

원메리츠 체제 메리츠금융 최대 강점은 자본 배치 효율성 개선과 신속한 의사 결정으로 요약된다.

메리츠금융 성장 전략 특징 중 하나는 연계 거래 강화다. 부동산 PF 등 메리츠증권이 발굴한 거래에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캐피탈이 투자하는 식이다. 다만, 각각 상장사일 땐 투자 주체가 되는 계열사로 자본을 이동, 배치하는 데 길게는 6개월 이상 소요됐다. 가령, 메리츠화재 이익으로 메리츠증권이 발굴한 투자 기회를 노릴 때 통합 이전에는 각각 다른 회사이므로 주주총회까지 기다려 배당을 받고 이를 증자하는 데 최소 수개월 걸렸다. 100% 자회사 편입 뒤 자본 재배치에 소요되는 기간이 대폭 단축됐다. 롯데건설, 고려아연 등 단기 유동성이 갈급한 기업이 연달아 메리츠를 찾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배당 측면에서도 증권과 화재를 완전 자회사로 두는 쪽이 자본 비율 관리에 유리하다. 메리츠금융지주가 증권과 화재 100% 지분을 갖게 되면 배당금 전부를 확보해 자기자본을 늘릴 수 있다. 증권과 화재가 상장한 상태에서 배당하면 소액주주에게 배당금이 유출된다.

다만, 이 같은 연계 거래 기반 ‘원북(One Book·자금운용한도)’ 체제는 리스크 확산 땐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룹 전체 자기자본을 효율적으로 투자할 수 있게 된 반면, 리스크 확산 속도 역시 빨라질 수 있다. 메리츠증권과 100% 자회사 메리츠캐피탈이 이런 예다. 통합 이전부터 메리츠증권과 메리츠캐피탈은 사실상 ‘원북’ 체제로 한 몸처럼 움직였다. 최근 메리츠증권은 부동산 PF 부실로 경고등이 켜진 메리츠캐피탈 유상증자, 대출자산 매입 등에 수천억원을 써 재무 부담이 가중된다.

증권과 화재 완전 자회사 편입도 부동산 PF 부실 우려가 커지던 때 자회사 투자 여력을 확대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시장은 보고 있다.

지주사는 부채비율과 이중레버리지비율 규제를 받는다. 이중레버리지비율은 자본총계 대비 자회사 출자총액비율로, 지주사의 자회사 출자 여력을 보여준다.

지난해 말 기준 메리츠금융지주 이중 레버리지비율은 122.4%로, 금융지주사 평균(114.2%)보다 높다. 금융당국 마지노선 130%와 7% 안팎 차이다. 자회사 지분 투자, 지급보증 등을 고려하면 선제적 자본 확충이 필요한 상황이다. 최근 메리츠금융지주가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나선 것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김선영 한국신용평가 수석 애널리스트는 “자회사 재무 지원과 주주환원 계획 등을 감안할 때 메리츠금융의 재무 부담은 높은 수준이며, 계열사에 대한 추가 재무 지원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보험: 혁신 자극 vs 실적 지상주의

높은 수익 예상되면 ‘공격 앞으로’

메리츠화재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메리츠화재는 높은 수익성이 예상되는 시장을 콕 집어 전사 역량을 집중해 점유율을 확대하는 공격적인 성장 전략을 즐겨 쓴다. 이 때문에 산업 혁신을 자극하는 ‘메기’라는 평가를 받는 반면, 편법으로 영업 현장에 부작용을 초래해 ‘미꾸라지’ 노릇을 한단 비판도 따른다.

메리츠화재의 핵심 전략은 ‘프라이싱(Pricing·가격 정책)’에 있다. 메리츠화재는 프라이싱을 통해 시장 가격과 손익분기점(BEP)을 비교한 후 시장 진입 여부를 결정한다.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정밀분석한 뒤 시장 가격이 손익분기점보다 낮은 영역(적자 구간)에는 진입하지 않는다. 반대로 소수 금융사가 서비스 중인 상품이어도 시장 가격이 손익분기점보다 충분히 높다면(흑자 구간) 과감히 진입한다.

프라이싱 전략의 요체는 전략적 유연성으로 평가된다. 대부분 보험사는 특정 시장에서 대규모 적자를 보더라도 점유율 방어를 위해 끝까지 버티는 전략을 편다. 반면, 메리츠는 금융 여건 변화에 따라 시장 진출입 여부를 탄력적으로 결정한다.

메리츠화재의 프라이싱 전략이 잘 드러난 사례로 퇴직연금 시장 재진입이 꼽힌다. 지난 2005년 퇴직연금 제도 도입 당시 메리츠화재는 손보사 중 가장 먼저 퇴직연금 사업권을 취득했다. 저금리로 수익성이 악화하자 2012년 사업권을 반납했다. 그러던 중 지난 2022년 상반기 퇴직연금 시장에 재진입했다.

메리츠 프라이싱 전략에 비춰보면 이렇다. 과거 저금리 때 보험사 퇴직연금은 역마진 리스크에 직면했다. 저금리로 자산운용수익이 급감했지만 보험사는 시장점유율 방어를 위해 공시이율을 지나치게 높여 출혈 경쟁을 벌였다. 이는 시장 가격이 손익분기점을 밑도는 역마진 상태다.

2022년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금리가 상승세를 탔고 보험사 운용수익도 대폭 개선됐다. 시장 가격이 손익분기점을 웃도는 흑자 구간에 진입한 것이다. 퇴직연금 시장에 재진입한 메리츠는 높은 운용수익을 지렛대로 공격적인 금리 정책을 폈고 이는 점유율 확대로 이어졌다.

다만, 메리츠화재의 이런 성장 전략은 뒷말도 따랐다. 퇴직연금 사업자는 퇴직연금 상품 이율을 적용하기 3영업일 전 홈페이지에 금리를 공시해야 하는 반면, 비사업자는 이런 규제가 없었다. 이 때문에 메리츠화재 같은 비사업자는 사업자가 제시하는 이율보다 높은 이율의 상품을 제공할 수 있었다. ‘커닝공시’라는 비판에 휩싸인 이유다. 금융당국도 퇴직연금 시장 금리 경쟁이 과열됐다고 보고 구두 지도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진다.

자동차보험 역시 프라이싱 전략의 양면성이 드러난 사례다. 2015년 메리츠화재는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동차보험을 지속적으로 줄였다. 이후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사회적 거리두기 확산으로 손해율이 안정화했다. 그러자 메리츠화재는 자동차보험 마케팅에 고삐를 죄기 시작했다. 시장 가격이 손익분기점을 웃도는 흑자 구간에 진입했다고 본 것이다. 이때도 메리츠화재 ‘닥공’ 행보는 보험업계 입길에 올랐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업계가 보험료 줄다리기를 하던 때 메리츠화재 홀로 보험료를 대폭 인하했다”며 “그러면서 대외적으로는 출혈 경쟁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해 당황스러웠다”고 돌아봤다.

판매 채널 성장 전략을 향한 시선도 나뉜다. 메리츠화재는 법인보험대리점(GA) 중심으로 판매 채널 육성에 드라이브를 걸었으나 업계 평가는 엇갈린다. 보험 시장 트렌드를 주도한 모험적 시도라는 평가가 우세한 반면, 일각에선 대형 GA 등장으로 보험사 ‘갑을 관계’가 역전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1호 (2024.10.23~2024.10.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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