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을 막아준다'는 돌이 있는 일본 신궁
도쿄는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여행지입니다. 그만큼 각종 정보가 넘치는 곳이기도 합니다. 유명한 관광지를 이미 방문했다면 이번엔 '도쿄 말고, 근교'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이 연재에서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도쿄 도내와 도쿄 근교 여행지를 소개합니다. 색다른 일본 여행지를 찾는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기자말>
[정효정 기자]
올해 8월 8일, 일본 기상청은 난카이 트로프 대지진 주의보를 발령했다. 이 주의보는 8월 15일 오후 5시에 해제되었지만 그렇다고 안심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진은 태풍처럼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반드시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시기를 짐작할 수 없을 뿐이다.
일본은 언제나 재난의 그림자를 안고 살아가는 나라다. 난카이 트로프 대지진만큼두려운 것은 인구 밀집 대도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도권 직하 지진이다. 1923년 9월의 관동 대지진이 그 대표적인 예다.
당시 사망자 10만 5천 여 명, 하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고층건물이 없던 시절이었다. 후지산의 화산 분화 또한 잠재되어 있는 불안이다. 100~150년 주기로 분화한다는 후지산은 1707년 호에이 대분화 이후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대형 지진이 후지산을 자극해 분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전망까지 있다.
재난을 막아준다는 요석
워낙 지진이 잦은 나라지만, 사실 일본에서도 지진은 자신이 사는 지역이 아닌 특정 지역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러나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일본 전역에 생중계되며 일본 국민 모두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포스터 |
ⓒ (주) 쇼박스 |
▲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작은 요석을 뽑자, 재앙이 시작된다 |
ⓒ (주) 쇼박스 |
애니메이션에서는 지렁이 같은 재난신 미미즈가 등장했지만, 옛 일본 사람들은 땅속에 거대한 메기(大鯰, 오오나마즈)가 살고 있어 이 메기가 요동치면 지진이 발생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메기가 요동치지 못하도록 신이 돌을 사용해 메기의 머리와 꼬리를 눌렀고, 이 돌이 바로 요석이다.
도쿄 근교에서는 치바현의 카토리 신궁(香取神宮)과 이바라키현의 가시마 신궁(鹿島神宮)에서 이 요석을 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에 흰 고양이 다이진과 검은 고양이 사다이진이 등장하듯, 이 요석도 쌍으로 존재한다. 가시마 신궁의 요석이 메기의 머리를, 카토리 신궁의 요석은 메기의 꼬리를 누르고 있다고 전해진다.
메기의 꼬리를 막고 있는 요석을 찾아
카토리 신궁을 방문하려면, 먼저 치바현에 위치한 사와라로 가야 한다. 사와라는 도쿄역 야에스 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로 약 1시간 30분이면 도착한다. 카토리 신궁은 사와라역에서 차로 약 10분 정도 걸린다. 기원전 643년에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이 신궁은, 메이지 시대 이전에는 이세 신궁, 카시마 신궁과 함께 3대 신궁으로 불렸다.
▲ 카토리 신궁의 본전 노송나무 껍질로 만든 고동색 지붕이 인상적이다 |
ⓒ 정효정 |
▲ 요석을 찾아가는 길 일본 신토에서 도리이는 신의 세상과 인간의 세상을 경계짓는 문을 의미한다 |
ⓒ 정효정 |
여기가 맞나 싶어서 기웃기웃하며 조금 더 들어가니 다시 요석이라고 적혀있는 표지판이 나왔다. 화살표를 따라 가니 작은 숲이 나타났다. 이곳에 요석이 있다는 표지판과 사각형 울타리가 있었다.
바닥의 사각형 울타리 너머를 살펴보니 지표면에 동그란 돌이 하나 박혀 있다. 이 작은 돌이 바로 거대한 메기의 꼬리를 누르고 있다는 요석이다. 전해지기로는 땅 위에는 일부만 보이지만, 지하 깊숙이 수십 척이 묻혀 있다고 한다.
▲ 지진을 막아준다는 전설 속의 요석(要石) 카토리 신궁의 요석은 메기의 꼬리를, 가시마 신궁의 요석은 메기의 머리를 누르고 있다고 한다. |
ⓒ 정효정 |
▲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문을 지키던 요석은 변덕스러운 고양이 다이진으로 변신한다 |
ⓒ (주) 쇼박스 |
우리가 아무리 과거를 돌아보고 스스로를 성찰해도,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되찾거나 과거로 돌아가 바꾸거나 이미 생긴 트라우마를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스스로가 받아들이고 정리한 상처는, 마음의 문을 지키는 요석이 되어 앞으로의 재난을 막는 역할을 한다.
결국 문을 단속한다는 것은 그 문을 통해 스며드는 마음의 혼란을 단속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해내는 것은 이제는 단단해진 과거의 상처다.
에도 시대를 만날 수 있는 마을, 사와라
▲ 에도시대의 정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마을 사와라 오노가와 강을 따라 운하여행을 해볼 수 있다 |
ⓒ 정효정 |
이 마을에서는 옛 건물을 개조한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여유를 즐기거나. 운하를 따라 보트 투어를 할 수 있다. 전통복을 입은 가이드가 노를 저으며 이 수로의 역사를 설명해준다.
▲ 도요하시교(?橋) 30분 마다 물이 쏟아져 나온다 |
ⓒ 정효정 |
사와라에서는 그의 생가와 박물관을 방문할 수있다. 당시 쉰 살이면 인생을 마감할 나이였지만, 그는 새로운 호기심을 품고 꿈을 따라 걸었다. 그 자체로 인생 2막의 성공 사례로 손꼽힐 만한 인물이다.
과거 이곳은 '에도보다 낫다'는 의미의 '에도 마사리(江戸優り)'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번성했다. 화려한 옛 시절을 보여주는 것은 1년에 2번 열리는 이 지역의 축제다. 이 축제들의 특징은 무게 4톤, 높이 7미터의 거대한 인형 수레가 십여 대씩 사용된다는 점이다.
▲ 지역 축제 포스터와 장식물 사와라에는 매년 7월과 10월에 축제가 열린다 |
ⓒ 정효정 |
▲ 축제에 사용되는 7m 높이의 거대 수레 야사카 신사 내부의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
ⓒ 정효정 |
자칫 힘의 균형이 흐트러지면 높이 7m의 수레가 넘어질 수 있기에, 수레를 끄는 사람들의 단결과 협동이 필수적이다. 생각해보면 대자연 앞에서 인간의 힘은 언제나 미약하지만, 이렇게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는 순간 그 힘은 기적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이어 내려온 지역 축제는 공동체 정신과 협력을 잊지 말고 살아가라는 선조들의 당부일지도 모른다.
▲ 과거 인형 수레에 사용되었던 덴구의 두상 야사카 신사 경내의 박물관에서 관람가능하다 |
ⓒ 정효정 |
일본 오사카에서 외국인 대상 하숙집을 운영하는 한 지인은 지진 시 대처 방법을 인쇄해 입주 외국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했다. 재난이 발생하면 일본어를 모르는 외국인들은 대피소나 대처 방법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을 대비해 '유선 연락망'도 마련해 두었다고 했다. 그녀는 1995년 한신 대지진을 겪은 경험이 있었다.
물과 부탄가스 그리고 다량의 현금을 준비해 두었다는 지인도 있었다. 지진이 오면 물과 가스가 끊기는 것은 물론, 정전 때문에 신용카드나 간편 결제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 지진은 단순히 땅이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 기반이 무너지는 현상이리라는 깨달음이 밀려왔다.
언젠가는 지진이 온다는 현실 앞에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방법은 모든 상황에 대비한 준비뿐이었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일본 지진이 대체 한국에 뭐가 중요하냐'며 비아냥거릴지도 모른다. 실제로 일본에 대한 재난 뉴스가 나오면 어김없이 "꼴 좋다", "천벌 받았다"란 식의 악플들이 달린다. 일본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천재지변은 인간의 선악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재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상대가 나쁘기 때문에 재난을 겪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재난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회피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자기 보호일 뿐이다.
당장 이웃 나라에 대형 지진이 발생하면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자명하다. 특히 일본과 인접한 동해와 남해에는 직접적인 피해가 우려된다. 일본의 재난을 천벌이라며 비아냥거리기보다, 바로 이웃한 우리는 어떤 대비를 하고 있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어차피 우리에게 재난을 막을 힘은 없다. 단지, 재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는 힘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우리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며,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아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모두 연결되어 있고, 인간의 기적은 서로 힘을 합칠 때 비로소 일어나기 때문이다.
▶여행 정보
1. 도쿄에서 사와라에 가는 법
도쿄 야에스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약 1시간 30분 소요, 가격 1,900엔)
도쿄역에서 나리타 방향의 소부선을 타고 갈 수 있다. (약 2시간 소요, 가격 1,694엔)
2. 카토리 신궁 (香取神宮)
기원전 643년에 세워졌다는 전국 카토리 신사의 총본산으로, 일본의 건국 신화와 관련된 군신 후츠누시를 모시고 있다. 가시마 신궁, 이키스 신사와 함께 동국 3사로 불리며, 지진을 일으키는 큰 메기의 꼬리를 누르고 있다는 요석으로 유명하다.
【주소】 千葉県香取市香取1697-1
【개관시간】 8:30〜17:00
【가는 법】 사와라 역에서 자동차로 10분
3. 이노우 타다타카 고택 (伊能忠敬旧宅)
일본 최초의 전국 실측지도를 만든 이노우 타다타카의 고택을 방문할 수 있다. 고택 바로 건너편의박물관에서는 당시 사용되었던 기술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이노 다다타카에 대해 궁금하다면 <고독한 미식가>로 유명한 다니구치 지로의 단편 <에도 산책>을 추천한다. 이 작품은 이노 다다타카를 주인공으로 한다.
【주소】 千葉県香取市佐原イ1900-1
【개관시간】 09:00-16:30
【가는 법】 사와라 역에서 도보 약 15분
덧붙이는 글 | 지난 7월에 방문했습니다.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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