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병원까지 '120분', 이게 현실입니다
'필요할 때 언제든 병·의원에 가 치료를 받고 약을 먹을 수 있다'는 건 현대사회의 공통감각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이나 성별, 직업,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농촌 의료의 지금을 조명합니다. 더 많은 기사는 <월간 옥이네> 10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월간 옥이네]
▲ 충북 옥천군 군북면 막지리 마을회관에서 옥천읍까지 마을 배, 대중교통, 도보 등을 이용해 이동할 때 걸리는 대략적인 시간은 1시간~1시간 반 남짓. 옥천에서 가장 가까운 3차 의료기관인 대전 충남대학교병원까지 걸리는 시간도 최소 2시간이다. 이는 마을에서 배를 타는 시간과 배차 간격 등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실제로 3차 의료기관 진료를 위해 주민들이 써야 하는 시간은 3시간 가까이다 |
ⓒ 월간 옥이네 |
지난 9월 12일, 대청호를 가로질러 배로 오가는 것이 훨씬 빠른 막지리이지만 이날은 마을 배 운행이 어렵다는 소식에 꼬불거리는 길을 자동차로 40여 분 달려가야 했다. 배를 타든, 차를 타든 이동이 번거로운 농촌 마을에서 병의원 진료를 받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터. 이들의 일상 속 '의료 서비스'는 어떤 모습일까?
▲ 손옥자씨. |
ⓒ 월간 옥이네 |
손옥자(83)씨가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의료기관은 이비인후과와 한의원. 주에 1~2번 진료를 받으러 외출하지만, 이날처럼 갑작스럽게 증상이 생기면 정기 진료 외에 또 병원을 찾아야 한다. 막지리 주민들이 병의원 진료를 보기 위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은 옥천읍이다. 손옥자씨가 애용하는 이비인후과와 한의원도 옥천읍에 있다.
마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정류장까지 10분, 소정리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읍까지는 30분 남짓 걸리지만, 배 운행 준비를 위한 시간과 1시간에 한 대꼴로 있는 버스 그리고 버스 정류장에서 병의원으로 걸어가는 시간까지 더하면 넉넉잡아 2시간 전에는 이동해야 늦지 않는단다.
▲ 충북 옥천 막지리. |
ⓒ 월간 옥이네 |
그나마 막지리 주민들이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이동 수단은 '다람쥐택시'다. 다람쥐택시는 오지마을 이동권 보장을 위해 2015년부터 옥천군이 시행하고 있는 사업으로 버스비만 내고 마을과 옥천읍을 오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다만, 한 마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횟수(월 왕복 31회, 일 최대 왕복 2회)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마을에서는 자체적으로 하루 왕복 1회로 규칙을 정해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주민들과 일정 맞추기 어렵거나 급한 일이 생기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기에 월말이면 다람쥐택시 이용 가능 횟수가 부족한 일이 다반사다. 이럴 경우에는 타지에 사는 자녀의 방문을 기다리거나, 편도 4만 원이 넘는 택시비를 부담해야 한다. 둘 다 여의찮으면 외출을 미루게 되는 것이다.
약 구하기부터 수술까지, 산 넘어 산
막지리에서 가장 가까운 의료시설은 군북면 국원리에 위치한 보건진료소. 마을 배를 타고 건너간 소정리 정류장에서 버스로 5분, 마을에서 자동차로 바로 출발할 경우 35분이 소요되는 거리에 있다. 보건진료소의 역할은 혈압과 혈당 검사 등 간단한 건강검진과 약 처방에 그칠 뿐이지만, 막지리 주민에겐 더없이 소중한(그리고 유일한) 마을 의료시설이다.
유경순(74)씨는 "보건진료소 덕분에 간단한 약은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한다. 병·의원은 고사하고 근방에 약국마저 없기에 간단한 약품 하나도 옥천읍에 있는 약국까지 다녀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소화제 하나에도 '큰맘을 먹어야' 하는 셈이다.
"마을에서 약을 어떻게 구해. 집에 있는 상비약이 전부지. 그래도 필요한 약이 있으면 국원보건진료소에 연락해요. 그럼 소장님이 다른 마을 순회 건강검진 하는 길에 소정리 선착장으로 가져다주시기도 하고, 동네 사람들이 옥천읍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들러 받아오기도 하고."
▲ 손용화, 유경순씨 부부. |
ⓒ 월간 옥이네 |
유경순씨는 "올해 잔디 관리기 쓰다 손가락 다치고 몇 달 전에 머리 수술도 했으니 일곱 번"이라며 남편 손용화 씨의 수술 이력을 정정한다. 정기 검진과 퇴원 길은 남편과 함께지만 간병 등으로 인해 홀로 대전과 막지리를 오가는 일도 많았다고.
"남편 수술 때문에 입원해 있을 땐 혼자 대중교통으로 3시간을 오갔어요. 타지에 사는 자녀들이 매번 동행할 수 없으니 혼자 가는 거죠. 마을 배 타고, 버스 두 번 그리고 지하철까지 도합 4개의 대중교통을 타야 도착이에요. 힘들어도 어째요. 남편이 아픈데 가야죠."
구급차는 왔는데, 갈 병원이 없다고?
병원으로 가는 먼 길은 위급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더 숨 막히게 다가온다. 목숨이 오가는 긴급한 상황에 한참 동안 기다린 구급차에 오르고서도 병원까지 가야 할 길이 더 많이 남은, 말 그대로 눈앞이 캄캄해지는 경험은 바로 3개월 전에도 있었다.
"남편이 논 주변 정리를 한다고 혼자 나간 날이 있어요. 나무 그늘 때문에 모가 잘 안 자라서 나무 정리를 하다가 떨어진 나무에 머리를 맞은 거예요. 쓰러진 상태에서 나한테 간신히 전화했는데, 마을에 차 있는 사람도 없고 나도 너무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죠. 마침 그날 마을에 외지에서 온 분들이 있어서 도움을 받아 살았어요." (유경순씨)
마을 방문객의 도움으로 119에 신고했지만,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안남119지역대에서 막지리까지 출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30여 분. 간신히 구급차를 탔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지난해 2월부터 이어진 의료계 파업으로 인력이 부족한 인근 병·의원이 응급 환자를 받을 여력이 없던 것이다.
"옥천에서 가까운 큰 병원은 대전에 있잖아요. 대전 소재 병원에 전화했더니 옥천은 충청북도 관할이니 청주에 있는 충북대학교병원으로 가라는 거예요. 머리뼈가 하얗게 드러나고 의식도 없는데, 그 먼 청주까지 언제 가겠어요."
응급환자를 받아줄 병원을 찾기 위해 구급대원이 일곱 번째 통화를 하던 중 기적 같은 도움의 손길이 닿았다. 몇 년 전 막지리에 정착한 주민이 대전 모 병원 관계자였던 것. 그의 도움으로 간신히 해당 병원 응급실로 출발할 수 있었다.
"정말 죽었다 살아난 거예요. 병원까지 가는데도 1~2시간이 걸렸어요. 그렇게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서도 한 달 이상 정신이 없었으니. 더 늦었으면 큰일 났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처럼 병원에 아는 '연줄'이 없었다면, 당일 얼마나 더 많은 병원의 문을 두드리며 도로 위를 떠돌아야 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 손용화, 유경순씨 부부의 집에 비치된 상비약. |
ⓒ 월간 옥이네 |
처음엔 대전 소재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해당 병원 응급실 환자 수용이 어려운 점, 충북 관할 상급병원으로 가야한다는 안내 등에 따라 청주에 있는 3차 의료기관으로 이송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마을 주민들은 바로 이것이 '골든타임'을 놓치며 A씨가 사망에 이르는 한 요인이 됐던 것 아니겠냐는 추측을 조심스레 내놓는다.
그간 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농촌 마을에 사는 이들은 국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인구가 적은 농촌에 의료시설 투자는 예산 낭비'라는 무책임과 무관심, 옥천읍 혹은 인근 대전이나 청주 등 큰 병원을 이용하면 된다는 안이한 인식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의료 공백'이라는 농촌 마을의 큰 구멍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오늘날 의료파업 장기화와 맞물리며 새삼스레 드러난 이 문제를 우리 사회는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손을 놓은 사이 더욱 심하게 곪아가고 있다는 것만이 현재 우리에게 남은 확실한 장면이다.
월간옥이네 통권 88호(2024년 10월호)
글·사진 이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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