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K-우먼]"성과에만 매달리지 않는다…내적 동기가 원동력"

최유리 2024. 10. 2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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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의사 출신 창업가
이혜준 카이헬스 대표 인터뷰
배아 분석 AI 솔루션 개발
"건강한 가족 만들기 일조하고파"

이혜준 카이헬스 대표의 커리어 여정은 변화무쌍 그 자체다. 산부인과 전문의로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지만 돌연 가운을 벗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경영전문대학원(MBA) 과정을 마친 그는 미국 헬스케어 기업 체인지 헬스케어(Cange Healthcare)와 암 정밀 의료 빅데이터 플랫폼 사이앱스(Syapse)에서 비즈니스 경험을 쌓았다. 그러다 "내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커리어의 세 번째 챕터를 열었다. 2021년 빅데이터로 난임 문제를 푸는 카이헬스를 창업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도전과 변화의 연속이었지만 그는 "가치관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일을 고민한 결과가 지금의 이 대표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도전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 창업을 게임에 비유했던가. 투자 유치, 서비스 개발, 기술 인증 등 미션을 깰 때마다 새로운 미션이 튀어나왔다. 크고 작은 성과의 단맛도 찰나에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지치지 않는 것은 성과 자체 보다 흔들리지 않는 내적 동기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성과도 중요하지만 그 자체에서 에너지를 찾지를 않는다"며 "성과에만 매달리면 오래 달리지 못하거나 나태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창업 3년 차를 맞은 카이헬스는 배아 분석 인공지능(AI) 솔루션 '비타 엠브리오'의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임신 가능성이 높은 우수한 배아를 선별하는 솔루션이다. 임상 연구원과 의료진이 우수한 배아를 선별할 때는 정확도가 40~50%에 그치지만 비타 엠브리오를 이용하면 60~70%까지 높아진다. 올해 말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를 받고 내년 초부터 병원을 대상으로 판매에 나설 예정이다.

-의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내려놓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산부인과에서 난임·불임 환자를 치료하다 헬스케어 데이터에 꽂혔다. 환자를 일대일로 진료하는 것보다 기술로 더 큰 변화를 가져오고 싶었다. 병원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건너가 체인지 헬스케어와 사이앱스를 거쳤다. 사이앱스 한국지사에서는 영업·마케팅과 고객 관리를 맡았다. 본사 결정에 따라 움직여야 하니 '주인의식을 갖고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다. 그렇게 창업에 나섰다. 아버지와 시아버지, 남편, 동생 등 가족들이 모두 사업가인 점도 영향을 미쳤다. 가족들, 특히 남편이 많은 지지를 해줬다.

-의료계에서 테크 업계로 넘어오면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전문 지식 자체가 부족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의료 영역과 비교해 테크 분야는 추상적이다. 이런 전환 자체가 쉽지 않았고 지금도 어렵다. 지금도 IT 기술에 대해 커뮤니케이션을 하거나 논리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수준은 되지만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팀 내 많은 개발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창업 아이템으로 배아 분석 AI 솔루션을 선택한 이유는.

△산부인과에서 난임 전문의로 일했고 헬스케어 회사에서 데이터를 다뤄봤기 때문에 가장 잘 아는 분야였다. 무엇보다 난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난임은 그 자체로도 고통스럽지만 실패에 따른 상처가 크다. 그럼에도 운에 많은 걸 맡긴다. AI와 데이터를 적용하면 예측 가능성을 높여줄 거라고 봤다. 비타 엠브리오는 AI가 병원에서 모은 배아 데이터를 보고 어떻게 생긴 배아가 임신의 확률을 높여주는지 학습한다. 그리고 의료진이나 연구원이 좋은 배아를 선별하는 것을 도와준다. 인공수정 세 번 할 것을 한 번으로 줄여주는 것이다.

이혜준 카이헬스 대표가 서울 강남 사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기업 간 거래(B2B) 서비스를 선택한 이유도 궁금하다.

△의사로서 B2C 서비스를 제공하던 입장이었으니 당연히 B2C에 대한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 사업 모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구독료를 받거나, 이커머스를 붙여 의약품을 팔거나, 광고를 붙이는 등 특정 사업 모델들이 있는 헬스케어 분야에선 이런 모델을 적용하기 어렵다. 외국처럼 기업 연계 소비자 거래 서비스(B2B2C)로 가는 방향이 가장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한다. 기업 복지제도나 보험회사 혜택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이다.

-창업 이후 어려움은 없었나. 의료 데이터를 모으는 과정부터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데이터 3법이 개정된 후 후행적인 환자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의 AI 태아·배아 데이터셋 구축 사업 과제를 수행하면서 데이터를 축적할 기회를 확보했다. 다만 데이터를 연구용 과제가 아니라 사용성 있는 제품으로 만드는 것은 정말 다른 얘기였다. 의료진의 기존 업무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큰 노력이 필요했다. 다행히 챗GPT 등장이나 루닛, 뷰노 같은 의료 분야 AI 기업의 활약으로 기술에 대한 의료계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의료진과 기술검증(PoC)을 진행하면서 솔루션을 개선할 수 있었다.

-반대로 창업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을 때는 언제인가.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 자체로 창업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원하는 방향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는 게 나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주도적으로 일하는 만큼 책임감과 부담감도 따라올 텐데.

△양날의 칼이다. 창업 자체가 재밌기도 하지만 너무 힘들다. 누군가는 게임에 비유하더라. 미션을 깰 때마다 재미가 있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경쟁자가 등장하거나 시장이 어려워지는 등 항상 시련이 찾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순간 기쁨을 만끽하기가 쉽지 않다. 다음 단계에 해야 할 일이 항상 나를 잡고 있기 때문에 성취감을 맛보기도 어렵다. 성과 하나하나에 매달리기보다는 내적 동기를 원동력 삼아 꾸준히 나아간다.

이혜준 카이헬스 대표가 서울 강남 사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중학생인 두 딸을 둔 엄마다. 워킹맘으로서 일과 가정의 균형을 어떻게 잡았나.

△나도 일하는 엄마 밑에 컸고 내 아이들도 일하는 엄마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항상 바쁘지만 최선을 다하는 엄마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물론 힘든 시기도 있었다. 출근할 때 아이가 울면서 매달리면 가슴이 미어지고 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커리어를 희생한다기보다 속도 조절을 했다. 당시 난임병원인 마리아병원에 있었는데 출퇴근 시간이 고정되고 빠르게 퇴근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독립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지금은 물리적인 시간을 그렇게 쏟지 않아도 된다.

-여성 동료들(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슈퍼우먼이 되려는 생각을 내려놓고 긴 호흡으로 봤으면 좋겠다. 남편은 육아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존재다. 내 경우 남편이 아이들 학교나 학원의 주된 연락통이었고 학부모 단체 카톡방에도 함께 들어와 있었다. 미국 유학길에 올랐을 때는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기도 했다. 워킹맘이라는 말에 매몰돼 엄마가 전부 주도하고 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과감하게 내려놔야 한다.

-앞으로의 포부와 목표는.

△아이를 낳거나 가족을 만드는 방식이 굉장히 달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시험관, 인공수정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어 이를 돕고 싶다. 좋은 배아를 선별하는 기술에 이어 좋은 배아를 만들고 키우는 모든 과정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개발하고 싶다. 배양액, 인큐베이터 등 배아를 키우는 환경에도 변수가 많기 때문에 AI를 적용해 최적화된 환경을 예측할 수 있다. 난자동결 역시 동결하는 난자 수에 따라 아이를 몇 명 나을 수 있다는 식으로 예측하는 솔루션도 나올 수 있다. 인간의 몸이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기술로 풀 수는 없지만 인간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데이터로 도움을 줄 수는 있다고 본다. 건강한 가족을 만드는 데 일조하자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이혜준 카이헬스 대표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다.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불임생식내분비 전문의와 전임의, 마리아병원 진료과장과 국제클리닉 과장을 거쳤다. 이후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경영스쿨에서 MBA를 취득했다. 산업계로 넘어가 미국 최대 건강보험업체 유나이티드헬스그룹의 자회사 체인지 헬스케어에서 전략·AI 팀을 거쳐 미국 정밀 의료 플랫폼 사이앱스에서 아시아태평양(APAC) 이사를 역임했다. 2021년에는 카이헬스를 창업한 후 비타 엠브리오 솔루션을 개발했다.

최유리 기자 yr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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