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강에서] 누가 먼저냐 말고 여럿이 함께

우성규 2024. 10. 24.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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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농담이다.

한국 기독교 선교 140주년을 앞두고 언급되곤 한다.

이 교수는 홍성사에서 발간한 책 '한국교회 처음 이야기'를 통해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두 선교사가 한날한시에 같이 들어온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전한다.

한국 선교 140주년의 관심은 '누가 먼저냐'가 아니고 '여럿이 함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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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규 종교부 차장


오래된 농담이다. 한국 기독교 선교 140주년을 앞두고 언급되곤 한다. 1885년 4월 부활주일 제물포에서 과연 누가 먼저 배에서 내렸을까. 교단 파송 첫 상주 선교사로서 조선 선교의 첫발을 내디딘 이는 누구였을까 하는 것이다. 미국 북장로교 HG 언더우드 선교사일까, 아니면 미국 북감리교 HG 아펜젤러 선교사일까. 답은 둘 다 아니고 당시 임신 중이던 아펜젤러 선교사의 부인 엘라 D 아펜젤러란 대답이 뒤따른다. 이유는 ‘여성 먼저(Lady First)’이기 때문에.

그러면 옆에 있던 감리교인은 또 이렇게 말한다. 미국에서와 달리 한국에선 장로교의 교세가 감리교보다 앞서기에 이런 지적이 나오곤 한다. “아니, 아펜젤러가 영문 알파벳 A로 시작해 U로 시작하는 언더우드보다 앞서고, 나이도 한 살 더 많았고 결혼까지 한 어른이었는데, 왜 맨날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입니까.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로 바꿔 부릅시다.”

하지만 이런 류의 대화를 주고받는 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라고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역사신학 은퇴 교수는 말한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 교수는 “‘모(母) 교회’ ‘장자(長子) 교단’ 등 권위를 독점하려는 교권주의자들의 생각”이라고 비판한다. 이 교수는 홍성사에서 발간한 책 ‘한국교회 처음 이야기’를 통해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두 선교사가 한날한시에 같이 들어온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전한다. 다음은 이 교수가 전한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의 공통점이다.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모두 신학생이던 1883년 10월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포트에서 열린 초교파 신학생 수련회에 참석해 선교사로 헌신할 것을 결단한다. 북미 대륙에선 학생자원운동(SVM) 여파로 해외 선교에 지원할 20대 젊은 선교사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당시 참석한 언더우드는 뉴브런즈윅신학교 대표였고, 아펜젤러는 드루신학교 대표였다. 언더우드는 본래 인도 선교를 생각하고 있다가 ‘조선은 어이할꼬(How about Korea?)’ 음성을 듣고 목적지를 바꾼다. 아펜젤러도 일본 선교를 염두에 두다가 기숙사 같은 방 동료가 “나 대신 조선에 갈 수 없겠는가” 부탁하자 고민 끝에 은둔의 나라, 조선을 목적지로 한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무엇보다 초교파 성경번역과 출판사업의 기초를 놓았다. 1887년 2월 정동에 있는 언더우드의 집에서 ‘성경번역위원회’를 조직했는데 감리교에선 아펜젤러와 의료선교사인 WB 스크랜턴이 함께했고, 장로교에선 언더우드와 역시 의료선교사인 JW 헤론이 모였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성서공회의 출발점이다. 한국교회가 무수한 분열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개역개정이나 새번역과 같은 ‘하나의 성경’을 사용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교수는 “조선에 들어온 이듬해 부활절 아펜젤러와 스크랜턴의 딸들이 개신교인으로서는 국내 최초 세례를 받는데 아펜젤러가 집례하고 언더우드가 보좌했다”면서 “그해 7월엔 노춘경이 조선인 최초로 국내에서 세례를 받는데 이번엔 언더우드가 집례하고 아펜젤러가 보좌했다”고 전한다. 복음 전도와 목회 분야에서의 협력도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1887년 9~10월 장로교회는 언더우드의 정동 사택 사랑방에서, 감리교회는 아펜젤러의 벧엘예배당에서 각각 조선인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오늘날 새문안교회와 정동제일교회의 출발이다.

한국 선교 140주년의 관심은 ‘누가 먼저냐’가 아니고 ‘여럿이 함께’여야 한다. 한국교회는 출발부터 에큐메니컬이었다. 교단을 넘어서 연합의 정신이 핵심이다. 선교와 목회 분야에서 서로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아는 동역자로서 모범을 보인 장로교의 언더우드와 감리교의 아펜젤러,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를 기억한다.

우성규 종교부 차장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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