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절박한 푸틴과 초조한 김정은의 ‘신냉전 도발’

2024. 10. 24.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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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KIDA) 국제전략연구실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폭풍군단이 선을 넘었다. 북한 특수작전군 제11군단 소속 1500명이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상륙함과 호위함을 이용해 극동지역으로 전개했다는 소식이다. 여기에 1만명 규모의 북한군 본대가 다음 달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에 투입될 예정이라 한다. 국가정보원은 북한군 동향을 밀착 감시하던 중에 북한이 러시아 태평양함대 소속 군함을 이용해 특수부대를 극동 지역으로 수송하는 것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해군 수상함이 북한 영해에 진입한 것은 소련이 해체되기 직전인 199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 6월 북·러 조약 이후 예견된 수순
국제사회와 전방위 공조 나서고
국회, 북 파병 중단 강력 촉구하길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해 “러·북 군사 밀착이 군사 물자의 이동을 넘어 실질적 파병으로까지 이어진 현 상황은 중대한 안보 위협”이라고 규정했다. 지난 21일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과의 통화에서 북·러 불법 협력에 공동으로 대응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한국이 나토의 ‘전장 정보수집 활용체계(BICES)’에 조속히 가입하기로 합의했다. 윤 대통령은 “러·북 군사협력의 진전에 따른 단계별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해 나가겠다”고 밝혀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파병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던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은 지난 21일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전격 방문해 러시아의 침략 방어에 필요한 안보 자원을 제공한다는 공약을 재확인했다. 미국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인정하는 순간 상응하는 실질적 조치를 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서방이 우선적으로 취할 수 있는 카드는 러시아 본토를 겨냥한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무기 사용을 승인하는 시나리오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등 우크라이나 정치 엘리트들이 ‘세계대전을 향한 첫 단계’, ‘북한의 유럽 침공’ 등 강도 높은 표현으로 비판하는 것은 북한군 참전 국면을 활용해 서방이 지원하는 장거리 미사일의 사거리 연장 해제를 촉구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하지만 서방의 대응 조치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확전하거나 최악의 경우 핵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 대선을 불과 10여일 앞둔 미국 민주당 정부 입장에서는 ‘두 개의 전쟁’이 버거운 상황에서 북한군의 참전이라는 돌출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듯하다. 대선까지는 최대한 ‘전략적 인내’를 통해 현상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급선무로 보인다.

지난 6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년 만에 평양을 방문해 김 위원장과 유사시 자동 개입 조항이 담긴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에 서명하면서 파병 등 군사협력 가속화가 예견됐다. 하지만 국정원이 특정한 전투 병력과 전쟁 물자의 수준과 규모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다음 달 5일 치르는 미국 대선 이후 글로벌 리더십의 불확실성이 제거되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논의도 가속도를 낼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이 북·러 군사협력이 ‘악마와의 거래’임을 알면서도 무리수를 둔 것은 평화협상을 선호하는 러시아 국민 여론과 전시경제의 한계를 언제까지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군 참전을 계기로 최대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려는 푸틴 대통령의 절박한 상황과 극한의 고립에 내몰려 출구전략이 부재한 김 위원장의 초조함이 결합하면서 한반도에 신냉전 그림자를 키우고 있다.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중대 도발이다.

북한군 파병은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의 군사적 개입을 의미한다. 나아가 군사정찰위성 능력 고도화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 김 위원장의 ‘버킷 리스트’가 실현될 수도 있다. 더는 잃을 것도, 갈 곳도 없는 김 위원장이 북한의 미래에 대한 답을 러시아에서 찾겠다는 결심으로 북한군 젊은이들을 희생양 삼아 출구전략을 노린 셈이다.

북한군 파병을 계기로 한반도가 격랑에 휩싸일 개연성이 커졌다. 윤석열 정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국제사회와 전방위적으로 공조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국회는 조속히 북한의 파병 중단 촉구 결의안을 처리해야 마땅하다. 대한민국의 사활적 이익 수호를 위해 여야의 초당적 협력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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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KIDA) 국제전략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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