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의 시선]대통령실은 왜 희림을 보고만 있나

안혜리 2024. 10. 24.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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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21일 아랍에미리트(UAE) 순방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인사하고 있다. 이 순방 경제사절단에 희림 정영균 대표도 동행했다. 뉴시스

숫자 얘기를 좀 해볼까 한다. 복잡해 보이지만, 권력 주변의 꼬리에 꼬리를 문 이권 연결고리라는 단순한 구도다. 요약하자면 수상한 여론조사가 특정인의 배만 불린 ‘테마주 띄우기’라는 더 수상한 결과로 이어졌는데, 이 특정인은 여전히 김건희 여사 주변에서 논란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초부터 이런 의혹이 불거졌음에도 대통령실은 이를 진화하기는커녕 여전히 손 놓고 있다는 점이다. 자, 이제 주목할 핵심 키워드는 '희림'이다.

「 수상한 여론조사, 치솟은 주가
'윤석열 테마주'로 150억 벌어
의혹 불구 3연속 순방 동행도

이 이야기는 2021년 4월 윤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을 자처하는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관련 있다고 알려진 미래한국연구소가 PNR에 의뢰해 1년 앞으로 다가온 대선(2022년 3월 9일) 관련 여론조사를 발표하면서 시작한다. 4월 18일 PNR은 윤 후보(34%)가 이재명 후보(27.6%)를 크게 앞지른 결과를 내놓았다. 비슷한 시기 한국갤럽(윤 후보 25%, 이 후보 24%)이나 한국리서치(윤 후보 23%, 이 후보 26%) 결과와 사뭇 다르다는 건 여기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눈여겨봐야 할 건 건축업체 희림 주가다. 정영균 대표가 이끄는 희림은 과거 김 여사가 운영했던 코바나콘텐츠 전시를 여러 차례 후원했고, 그런 이유로 윤 대통령이 정치 입문을 고려하던 이 무렵부터 일찌감치 '윤석열 테마주'로 묶여 있었다. 윤 대통령 취임 후엔 용산 대통령실 리모델링 설계 수주 사실 등이 알려져 야당으로부터 줄곧 특혜 의혹을 받아왔다.

다시 2021년 4월로 돌아가, 윤 후보가 크게 앞선 PNR 조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지난 몇 년간 3000원대였던 희림 주가는 연일 상한가를 기록, 23일 9350원(장중 1만1100원)에 마감했다. 정 대표가 2007년 최대주주로 올라서기 전 최대주주였던 창업주는 며칠 새 70% 폭등한 가격에 의결권 있는 보유주식을 대거 처분(지분 8.52%→4.68%)했다. '윤석열 테마주'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한 달여 뒤인 6월 9일, 이제 본게임이다. 정 대표는 이날 보유주식 36만주를 장내 매도했다고 공시했다. 앞서 5월 30일 윤 후보(36%)와 이 후보(25.9%) 격차가 크게 벌어진 미래한국연구소-PNR 결과가 나오자 8000원대로 내려갔던 희림 주가는 다시 치솟아 6월 3일 1만850원으로 마감했다. 정 대표가 이 와중(2~4일)에 본인 보유 지분 2.61%를 팔아 40억원을 현금화한 것이다. 이 소식에 주가는 곤두박질쳐 결국 5000원대로 떨어졌다.

'개미는 손실, 오너는 대박' 류의 비판 기사가 쏟아졌지만 이후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대선 직전인 2022년 2월 17일 국민의힘 당내 대선 경쟁자였던 유승민 전 의원과의 협력 뉴스가 시장에 반영되면서 주가가 1만원을 뚫자, 정 대표는 또 지분 2.21%(27만8000주)를 팔아 36억원을 현금화했다. 이런 사실을 공시하자마자 주가는 급락했고 다시 5000원대(2022년 6월)로 돌아갔다. 정 대표가 6개월 새 76억원 버는 동안 개미는 눈물만 흘렸다.

윤 대통령 취임 후 언론과 야당이 김 여사와 희림과의 유착 의혹을 지속해서 제기하는 등 큰 호재가 없던 탓에 희림 주가는 7000~8000원대를 횡보했다. 그러다 2022년 8월 원희룡 당시 국토부 장관이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프로젝트'에 한국 건설업체 지원 방침을 밝히고, 11월 3일 '원팀 코리아'에 희림을 포함하면서 다음날인 4일 희림 주가는 1만4850원(종가 1만3600원)까지 치솟았다. 정 대표는 11월 11일 지분 4.62%를 매도해 82억원을 현금화했다고 공시했고, 이번에도 급락으로 이어졌다. 네옴시티 기억이 흐릿해진 2024년 10월 23일 희림 종가는 4665원이었다. 이렇게 1년 반 동안 150억원 넘게 번 정 대표는 최근 싼 값에 희림 주식을 다시 사들이고 있다.

지난 15일 법사위 국감에 출석한 정영균 희림 대표(왼쪽)가 정청래 법사위원장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동영상 캡처]

여기까지라면 그저 운 좋은 정 대표의 재테크 얘기로 마무리할 수 있겠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야당이 그렇게 시끄럽게 김 여사와 희림의 유착 관계를 캐물었는데, 이에 아랑곳없이 정 대표는 이듬해인 2023년 UAE(1월)에 이어 미국(3월)과 베트남(6월)까지 연속 세 번을 대통령 경제사절단에 선발돼 대통령 부부와 동행했다. 정 대표는 "이전 정부 때도 순방을 따라갔다"지만 그때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심지어 그해 7월 희림이 참여한 '압구정 3구역 재건축 설계 공모' 와중엔 정 대표가 이런 내용을 직접 언급하는 동영상을 홍보관에서 틀었다. 희림은 '용적률 300%' 공모 규정을 어기고 360% 설계안을 주민에게 들이밀어 서울시로부터 영업정지 징계 경고까지 받았다. 당시 압구정 주민 사이에서 "서울시도 안 무서워하는 희림 무리수 배경에 김 여사가 있다"는 소문이 돈 데는 아마 이 동영상도 한몫했을 거다.

지난해 이런 내용을 물었더니 복수의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실은 순방 기업 선정에 관여하지 않지만, 희림은 좋은 업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최근 들은 답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김 여사는 희림에 아는 사람이 없고 순방에 관여하지도 않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김 여사 주위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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