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팬미팅 정치에 공감은 없다

김상기 2024. 10. 24.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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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13대 국회 때 처음으로 의정에 참여했다.

언제나 노동자 편에 섰던 노무현은 노동위원회를 선택했다.

지난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걸그룹 뉴진스의 멤버 하니가 참고인으로 나와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네티즌들은 하니가 겪었다는 괴롭힘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국회가 고통받는 노동자를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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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13대 국회 때 처음으로 의정에 참여했다. 1988년 상반기는 서울올림픽이 코앞이었지만 우리 노동 현장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언제나 노동자 편에 섰던 노무현은 노동위원회를 선택했다. 그리고 온도계 제조공장에서 수은중독으로 숨진 열다섯 살 문송면군 사건과 환기 시설이 없는 작업장에서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사지가 마비된 원진레이온 노동자 사건을 접하고 분노했다. 그해 7월 대정부 질문을 하면서 “아직도 경제 발전을 위해서 노동자의 희생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니네들 자식 데려다가 죽이란 말이야! 춥고 배고프고 힘없는 노동자들 말고”라고 외쳐 이를 지켜본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같은 해 가을부터는 5공 비리와 광주 문제 청문회가 열렸다. 5공 비리 특위 위원이 된 노무현은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심문했다. 일해재단 청문회의 증인석에 앉아 정경유착을 추궁받던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과의 질의가 압권이었다. 노무현의 정곡을 찌른 질의에 정 회장은 “(전두환 정권에) 안 주면 재미없을 것 같아 줬다”며 강제성을 인정했고 바른말을 하는 용기를 가지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한다고도 했다. 노무현이 ‘청문회 스타’로 이름을 알린 순간이었다.

지난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걸그룹 뉴진스의 멤버 하니가 참고인으로 나와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안호영 환노위 위원장은 “노동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약 850만명에 육박한다”면서 국민 요청사항이 큰 사안인 만큼 이들의 현실을 다루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 ‘코미디 같은 국감’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니가 국회에 들어서면서부터 촌극이 빚어졌다.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국회 본관 출입문에서 기다리다 하니가 들어서자 휴대전화로 인증샷을 찍어 빈축을 샀다. 괴롭힘 피해를 보았다는 하니는 다른 팀의 매니저가 그 팀 멤버들에게 ‘못 본 척 무시해’라고 말했으며 데뷔 초부터 임원이 인사를 받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환노위 소속 의원들은 하니를 ‘하니님’ ‘하니씨’라고 부르며 응원했다. 진보당 정혜경 의원은 하니가 ‘우리도 인간이잖아요’라고 말한 것에 울컥해졌다면서 “엔터 업계에서도 우리도 인간이잖아요를 외치는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노트북에 ‘버니즈’(뉴진스 팬덤명) 스티커를 붙인 민주당 박홍배 의원은 “일자리 으뜸기업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언론 보도 등 논란을 일으킨 경우 선정을 취소해야 한다”면서 “이 상황에서도 방시혁 의장은 미국에서 시시덕거리고 있다”고 발언했다. 올해에만 5명의 조선소 원·하청 노동자가 숨져 국감장에 불려 나온 정인섭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사장은 방긋 웃으며 하니와 셀카를 찍어 보는 이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네티즌들은 하니가 겪었다는 괴롭힘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국회가 고통받는 노동자를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인터넷에서는 “수십억원을 버는 하니가 쥐꼬리 월급을 받는 매니저에게 무시당했다는데, 그게 갑질인가”라거나 “이 사건으로 일을 그만두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그 매니저는 왜 안 부르나” “인사 안 한 게 직장 내 괴롭힘이면 난 이미 직장 내 학살 피해자”라는 의견이 쏟아졌다.

36년 전 노무현의 청문회로 돌아가 보자. 훗날 그는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내가 청문회에서 돋보이게 되었던 것은 국민과 눈높이가 맞았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올바른 정치인이 주는 울림은 공감과 감동에서 시작된다는 뜻일 텐데, 슈퍼스타의 팬미팅 같았던 이번 국감에서는 그런 울림을 주는 정치인은 찾아볼 수가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kitt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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