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동생 MB, 대통령 만든 ‘흙수저 형님’

김기정, 강보현 2024. 10. 2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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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23일 오전 89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기관지 관련 질환으로 병원 입·퇴원을 반복하다 이틀 전 건강이 악화해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이날 빈소를 찾은 동생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정치 선임’인 형으로부터 많은 조언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전 부의장이 별세한 이날 그의 고향인 경북 포항시 흥해읍 덕실마을에선 고인의 공적비 제막식이 열릴 예정이었지만 연기됐다.

1935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고인은 포항 동지상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61년 코오롱 1기 신입 공채사원으로 입사해 코오롱·코오롱상사 대표이사직에 올랐다. 동생 이명박 전 대통령과 더불어 ‘샐러리맨 신화’ ‘흙수저 신화’의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1988년 정계 입문한 이후부터 고인의 삶은 영욕의 세월이었다. 민정당 소속으로 13대 국회에 첫 입성한 이후 2008년 18대 국회까지 내리 6선 했다. 이 사이 국회부의장을 비롯해 한나라당 최고위원·원내총무·사무총장·정책위의장 등 주요 직책을 두루 지냈다.

그의 활약은 여야를 아울렀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당시 야당 원내총무로 국회 재경위원장을 겸임하던 그는 ‘금융개혁 13개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는 김대중 당선인의 부탁에 협조했다. 그는 ‘미스터 위기관리’란 별명도 있다.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후폭풍으로 당이 위기에 몰렸을 때는 사무총장으로서 천막당사를 짓자는 아이디어를 내고 보수 정당 재건을 뒷받침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친형인 이상득 전 부의장 빈소 앞에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 [뉴시스]

그는 동생 MB의 대선 도전에도 큰 힘이 됐다. 고인은 오랜 정치 경륜과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친이명박계(친이계)를 친박근혜계와 대등한 세력으로 키워냈다. 2007년 대선에서 MB 당선에 주요 역할을 한 후견 그룹 ‘6인회’를 조직하고 이끈 것도 고인이었다. MB 당선 뒤 고인은 ‘상왕’으로 불렸다. 모든 일은 형님으로 통한다는 뜻의 ‘만사형통(萬事兄通)’, 고향 이름을 딴 ‘영일대군’ 등의 부정적 수식어도 따라붙었다. 하지만 고인을 잘 아는 인사들은 그가 외려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했고, MB 당선 뒤엔 쓴소리를 마다치 않았다고 증언한다.

고인은 국회의장이 되고 싶어했다. 하지만 동생이 대통령이 되며 이룰 수 없는 꿈이 됐다. 그는 2009년 6월 정치 2선 후퇴를 선언하며 국회의장 꿈을 접었다. 이후 한동안은 남미와 아프리카 등을 오가며 자원외교에 주력했다. 리튬 개발 협의를 위해 볼리비아를 다섯 차례나 방문한 일 등이 고인이 꼽은 핵심 성과다.

19대 총선 불출마 뒤 저축은행에서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기소 돼 1년 2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현직 대통령 친형이 구속된 첫 사례였다.

당시 MB는 “억장이 무너져 내리고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2013년 만기 출소했지만, 6년 뒤 포스코그룹 민원 해결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혐의로 또다시 1년 3개월 실형을 선고받아 수감됐다. 검찰 수사와 옥고로 고인의 한쪽 눈은 거의 실명 상태였다고 한다. 지난여름 고인과 식사한 경북 출신 정치인은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지만 나라 걱정을 잊지 않았다”고 전했다. 장례는 4일간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6일 오전 5시 40분이다.

김기정·강보현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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