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집단대출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suhoz@mk.co.kr) 2024. 10. 2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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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신축 대출 시장 열리는데…

1만2032가구로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으로 불리는 둔촌주공(올림픽파크포레온).

11월 입주를 앞두고 예년 같으면 각 시중은행이 현수막을 내거는 등 대출 경쟁이 치열할 시간이다. 그런데 10월 중순이 지나도 분위기는 차분하다. 둔촌주공 사전점검 현장에도 시중은행 홍보 부스는 없었다. 집단대출, 즉 입주민 대상 대출 시장에 뛰어들지 말지를 두고 각 은행이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어서다. 그 속내가 뭘까.

둔촌주공 입주를 앞뒀지만 시중은행은 쉽사리 집단대출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DSR

2단계 실시 후 가계부채 조여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라는 은행 전문용어부터 알아야 한다. 총 DSR은 금융기관이 부채를 상환할 때 원리금과 상환금에 대한 비율을 뜻하는데 이는 정부가 규제한다. 통상 대출자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연소득의 40%를 넘지 않도록 제한하는 제도다.

여기에 더해 금융당국은 가계대출이 계속 늘어나자 이를 줄이기 위해 올해 9월부터 DSR 2단계 규제를 실시했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은 물론 제2금융권 주택담보대출 금리에 각각 가산금리 0.75%포인트를 적용하는 규제다. 여기서 은행권의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은 또 가산금리 1.2%포인트를 붙인다.

40년 만기대출을 받는다고 할 때 DSR 1단계 때 최대 대출금액이 6억6212만원이었다면 이번 DSR 2단계 시행 때는 5억9338만원으로 6874만원(10.4%) 적게 받는다(금감원 ‘DSR 단계별 만기 기간별 대출금액 변동 내역’ 자료). 만기가 길면 대출금액 감소폭도 커지도록 설계됐다. 금융감독당국은 이런 식으로 은행 대출을 조여 가계부채 속도를 조절한다.

정부 방침에 따라야 하는 은행 입장에서는 갑자기 가계부채 급증에 도화선이 될 수 있는 집단대출을 받기가 쉽지 않다. 둔촌주공의 경우 한 은행이 2000명한테 3억원씩만 집단대출해줘도 순식간에 6000억원의 가계대출이 발생한다. 둔촌주공 입주자는 분양대금 중 중도금대출을 상환하고 입주 지정일에 나머지 잔금 20%를 납부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잔금과 취득세 등을 감안했을 때 가구당 최소 3억원 이상 대출을 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집단대출은 대출자 상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이에 따라 부실대출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은행의 재무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최근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서 분양 시장도 함께 가라앉는 분위기다. 이런 때 잘못 집단대출을 해주다가 해당 사업장에 부실이 발생하면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 회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은행은 이처럼 규제와 수익성 관점에서 선뜻 대출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KB국민은행이 아예 10월부터 입주하는 전국 신축 아파트에 대해 집단 잔금대출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은행이 이주비대출과 중도금대출을 실행하지 않은 단지도 포함된다. 이런 식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끝에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집단대출 규모는 1월 말 기준 163조2353억원에서 9월 말 기준 163조130억원으로 2223억원 줄었다.

아울러 각 은행은 주담대 상품 선택의 폭도 줄이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주담대 상품으로 최장 40년짜리를 팔았지만 지금은 수도권 가산금리를 고려해서 30년짜리로 줄이면서 한도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단대출 아예 막히나?

지방은행, 제2금융권에선 기회

3만3290가구.

10월 전국에서 입주 예정인 신축 아파트 가구 수(총 44곳)다. 11월과 12월을 합치면 전국 114곳, 7만7000여가구가 입주한다. 이때 잔금대출을 원하는 이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비교적 그동안 쉽게 할 수 있었던 집단대출이 막히는 것은 아닌지 각 아파트 예비 주민들 사이에선 걱정이 태산이다. 한 아파트 예비 입주민은 “중도대출까지는 해줬는데 잔금대출을 안 해준다고 하면 새로 다른 은행을 찾아야 한다”며 “시간, 비용을 더 많이 써야 한다는 점이 속상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완전히 시중은행은 집단대출을 접을까. KB국민은행 외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은 그럴 공산이 높다. 반면 상대적으로 잔금대출 규모를 조절해왔던 하나은행과 NH농협은행은 수익성을 따져가며 일부 지역에서는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 지방은행이 이 상황을 틈새시장 확대 기회로 삼을 가능성도 있다. 시중은행 대비 주담대 규모가 작고 증가율도 높지 않아서다. 경남·광주·부산·전북·제주 등 5대 지방은행, 시중은행으로 전환된 아이엠뱅크(전 대구은행)를 합친 올해 상반기 말 가계대출 잔액은 69조4500억원 정도다. 지난해 말 68조3500억원 대비 1.6% 증가에 그쳤다.

한 지방은행 관계자는 “양질의 수도권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기 때문에 대출 시장에 뛰어들 의향은 있다”면서도 “집단대출을 해야 할지 개별 입주민 대상 홍보를 해야 할지를 두고 저울질 중”이라고 말했다.

가계부채 급한 불 끈 정부

기준금리 인하…규제 계속 먹힐까

정부 지침 덕에 가계대출은 안정세를 보이는 분위기다. 올해 7월 대출 잔액은 7조660억원, 8월에는 9조6259억원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DSR 2단계 도입 후인 9월 대출 잔액은 5조6029억원에 그쳤다.

다만 또 다른 뇌관은 있다. 주담대 대출이 막히자 제2금융권이 이 시장에 슬금슬금 발을 들이고 있어서다.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은 아예 잔금대출 금융기관에 은행뿐 아니라 단위농협인 서울강동농협을 선정해 예비 입주민에게 통보했다.

허를 찔린 금융감독당국은 농협중앙회에 서울강동농협의 건전성 관리 감독을 주문하고 ‘지역농협의 외형·건전성을 감안해 한도를 책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농협중앙회를 통해 전달하기도 했다.

더불어 금융당국은 신규 아파트 입주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세 수요도 시중은행 가계부채 관리 항목에 포함시킨다는 방침이다. 최근 금감원은 은행권에 전세·정책대출 관련 지역·소득 수준별 DSR 산출을 더 정교하게 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전세·정책대출까지 반영하면 대출하려는 사람 입장에서는 종전에 받던 일반 주택담보대출 등의 한도가 줄어들 수 있다. 최근 둔촌주공 일대에서 일부 시중은행이 집주인이 잔금을 완납해야 세입자에게 전세대출을 내주는 해왔던 조건부 전세대출을 막기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준금리가 인하돼 시중금리도 흔들리는 가운데 정부 규제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지 지켜볼 일”이라며 “가계부채 문제 해결이 중요하지만 중도금대출을 갚고 잔금 납부만 남겨둔 실수요자에 한해 다양한 대출 상품을 이용할 수 있게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1호 (2024.10.23~2024.10.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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