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문열이랑 사냐"…그가 첫눈에 반한 '못된 여자'

이경희 2024. 10. 2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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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더중플 - 영화 같은 그들의 사랑

「 시, 소설 혹은 그림으로 대중을 매혹하는 예술가들. 오늘의 '추천! 더중플'은 그들의 영화 같은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문열 작가, 김수영 시인, 사랑꾼이었던 화가 이중섭, 부부 화가 도상봉·나상윤 등의 이야기를 발췌해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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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네에서 연애 못 한다던 시골 여자


소설가 이문열과 그의 아내 박필순 여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문열(76) 작가는 사석에서 그가 이룬 것의 절반은 아내 몫이라고 했단다. 이문열의 그림자 속에서 그의 절반을 만든 사람. 박필순(75) 여사를 만나기 전, 주변에 먼저 물었다. 이문열의 아내에게 무엇이 가장 궁금하냐고. 누구에게 묻든 답은 비슷했다.
" 어떻게 이문열이랑 사느냐? " 풀어쓰자면 ‘도대체 어떻게 이문열 같은 사람과 살 수 있느냐’라는 의미였다. 이문열은 보수와 가부장제의 수호자를 자처했으니 말이다. 박필순에게 첫 만남, 사랑 이야기를 먼저 들려달라고 했다. 그는 오랜 타지 생활로 살짝 옅어진, 사근사근한 경상도 사투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박필순은 어릴 때 빈혈이 심했다. 걸핏하면 쓰러지는 바람에 학업을 이어가기 어려웠지만, 공부는 하고 싶었다. 아버지의 권유로 서당에 나가 남자들이 없는 새벽에 한학(漢學)을 배웠다. 그게 열아홉, 스무 살 무렵이었다. 그때 방학을 틈타 한학을 공부하러 서당에 온 이문열과 마주쳤다.

“공부하는데 모르는 남자가 와서 뒤에 계속 앉아 있는 거예요. 대충 마치고 얼른 나왔어요.”

댓돌에는 흙탕을 잔뜩 묻혀서 뒤축을 꺾어 신은 구두가 한 짝은 엎어지고, 한 짝은 젖혀진 채 놓여 있었다. 속으로 ‘그 남자 참 단정치 못하다’ 생각했다. 다음 날 또 같은 신발이 보였다. 화들짝 놀라 돌아 나왔다.

“사흘째 서당에 안 가니까 할배(훈장님)가 ‘자네는 왜 말도 없이 안 오나’라며 찾아오신 거예요. 손님이 있어서 안 되겠다 하니 ‘내가 아는 사람인데 방학이라서 온 거다. 걔는 나쁜 애가 아니다. 마침 논어를 하겠다고 하는데, 자네도 논어를 하고 있잖아. 같이 하지 뭐’라고 하시는데,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남자를 피해 밤으로 공부 시간을 옮겼다. 그런데 두 번째 밤, “산적 같은 남자”가 툭 튀어나와선 따라왔다. 그다음 날에도. 박필순은 서당 근처에도 못 가고 집으로 돌아갔다.
" 젊은 처녀를 밤에 오라카면 어짭니까? " 이문열은 훈장에게 항의했다고 한다. 처녀가 걱정돼 에스코트하려다 ‘산적’ 취급을 받은 게다. 그렇게 쫓아오는 남자, 피하는 여자의 밀고 당기기가 이어졌다.

“집성촌으로 된 시골 동네에서 연애는 있을 수 없는, 아주 볼썽사나운 일이었거든요. 나는 부모님을 실망시킬 수 없다고 그랬죠. 이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문제이지 뭘 그렇게 따지고 계산하냐’고, 이해가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투기만 하다가 굉장히 화를 내고 헤어졌죠.”

Q : 사귀긴 하신 건가요?
A : 그게 사귀는 거예요.

Q : 그냥 그렇게 쫓아오고 난 안 된다 하는 게?
A : 네. 저는 두 마디밖에 못 했어요. ‘싫어요’ ‘안 돼요’. 오죽하면 ‘얼음보다도 더 차갑고 냉정하다,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못됐나’ 하더라고요. 근데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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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은 첫눈에 반했다 “마캉 다” 좋았던 못된 여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2327


단식투쟁으로 구애한 도상봉


숭삼화실의 도상봉(왼쪽)과 나상윤. 사진 도윤희
우리나라 1세대 서양화가인 도상봉(1902~1977) 역시 이문열처럼 방학 때 고향(함경남도 흥원)에 갔다가 운명의 여인을 만난다. '장발장'을 공연하던 그는 객석 맨 앞의 나상윤(1904-2011)에게 첫눈에 반한다. 자유 연애가 금기시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나상윤은 단식으로 초췌해진 도상봉을 보고는 마음을 돌렸다.

둘은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다. 평생의 반려가 될 아내와 행복하기 위해서는 예술에 대한 이해와 대화가 있어야 한다고 본 도상봉은 나상윤에게도 서양화를 배우게 한다. 어딘가 우수에 찬 도상봉과 달리 나상윤은 강인한 낙천가였다. 그녀의 감각적인 화면과 붓터치는 그러나 오래 가지 못했다.

▶백자와 누드의 ‘파격적 만남’…도상봉·나상윤 사랑이 이랬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1569


목숨을 건 사랑, 가난이 갈라놓은 가족


이중섭은 1939년 도쿄 문화학원에서 한 해 후배인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1921∼2022)를 만난다. 도쿄에서, 또 원산으로 돌아간 뒤에도 꾸준히 직접 그린 엽서를 보내며 마사코에게 구애했다.
이중섭이 1943년 7월 마사코에게 보낸 엽서화.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제2차 세계대전 말, 공습이 이어지던 도쿄에 전보 한 통이 도착한다. ‘마사코와 결혼을 서두름. 자세한 것은 편지로 보내. 편지 줘.’ 긴박한 프러포즈였다. 1945년, 마사코는 포화 속 대한해협을 건너 부산·경성을 거쳐 원산까지 간다. 목숨을 건 결혼이었다.

전쟁통 가족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결혼 7년 만에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아내에게 “우리 네 가족의 장래를 위해 목돈을 마련키 위한 제작에 여념이 없소”라 편지를 쓴 이중섭은 1955년 미도파 화랑 전시에 승부를 걸었다. 작품은 꽤 팔렸지만 수금이 안 됐다. 그 좌절이 이듬해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먼저 간 남편 70년 그리워하다…사랑꾼 이중섭 ‘구애 엽서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0144

■ 더, 스토리 - 백년의 사랑

김수영 시인 아내 김현경 여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수영(1921~1968) 시인의 아내 김현경(97) 여사도 같이 산 시간의 몇 배나 긴 시간을, 떠난 그를 그리워하며 홀로 지내고 있다. 그들의 사랑은 여러모로 문제적이며 전위적이고, 강렬했다.

김현경의 첫사랑은 이화여대 재학시절 만난 배인철 시인이다. 1947년, 데이트 도중 세 발의 총성이 울린다. 머리에 총을 맞은 배인철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배인철은 남로당이었다. 우익의 테러라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경찰은 치정으로 몰고 갔다. 김현경 주변에서 함께 문학 하던 남자들이 죄다 경찰서에 끌려가 문초를 당했다. 김수영도 그중 하나였다.

① “탕탕탕!” 첫사랑은 즉사했다…98세 김수영 아내의 회고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4622

모두가 김현경을 피했다. 그때 김수영이 가장 먼저 찾아와 "문학 하자"고 말한다. 문학이 사랑이자 구원이었던 두 사람은 관습을 뛰어넘어 동거하고, 결혼한다. 그러나 임신한 아내를 둔 채 김수영은 북에 의용군으로 끌려간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가까스로 탈출하지만, 서울에 발을 딛자마자 포로로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한다. 포로수용소의 포로들은 친공과 반공으로 나뉘어 바깥보다 더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다. 언제 차례가 올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김수영은 생니를 뽑으며 버틴다.

② 속옷 벗고 한강 뛰어든 여대생…김수영 “아방가르드한 여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6141

2년 3개월간의 포로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마침내 풀려난 김수영은 일자리를 찾아 피란 수도 부산으로 내려간다. 뒤따라간 김현경 역시 일자리를 청탁하러 김수영의 친구 이종구를 찾아갔다가 그 집에 머물게 된다. 6개월 뒤 김수영 시인이 찾아오지만, 김현경은 “먼저 가세요”라며 돌려보낸다. 이종구 몰래 빠져나온 김현경은 1955년 봄, 마침내 김수영에게 만나자는 엽서를 쓴다. 약속장소에 나온 김수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날부로 김현경과 부부의 연을 다시 이어간다.

③ ‘너는 억만 개의 모욕이다’…절친과 동거한 아내에 쓴 시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7754

잊고 있던 감정이 솟구친 건 의외의 시간과 공간에서였다. 이탈리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길(La Strada)'을 보고 한껏 감동에 젖어 나오던 길, 김수영은 거리에서 아내를 때린다. 그 에피소드가 반영된 시가 '죄와 벌'이다. 김수영이 절친과 동거한 아내에게 단 한마디도 추궁하지 않았듯, 김현경 역시 그날의 사건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④ ‘아내 패고 버린 우산 아깝다’…시인 스스로 고백한 죄와 벌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9490

정리=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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