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예쁜데 천원…배고픈 아이들 위한 식당 [아살세]

신은정 2024. 10. 23.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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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 정류장교회와 석식당
7년간 위기 청소년 위해 차려낸 천원 밥상
최현석 목사 “편의점 끼니 대신 따뜻한 밥 전하고파”
최현석 목사가 운영하는 '천원밥상' 석식당에는 수많은 돕는 손길들로 운영된다. 지난 9월엔 지역의 한 식당이 석식당의 취지에 공감해 아이들에게 계란김밥과 새우튀김 메밀소바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최현석 목사 제공

밥을 지어준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원초적 방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를 생각하고 재료를 사고 다듬으며, 그것을 요리해 만든 결과물로 상대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선물하기 때문이죠.

요즘 많은 아이가 편의점이나 인스턴트 음식으로 배를 채웁니다. 학원을 가야 하는 바쁜 일정 탓도 있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의 많은 아이가 챙겨줄 마땅한 어른이 없어 굶거나 온기 없는 음식을 먹으며 하루를 버팁니다. 강원도 원주의 한 주택가 상가 2층의 ‘석식당’은 그런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선물하고 싶어 생긴 곳입니다. 이 주인장은 다름 아닌 교회 목사님입니다. 최현석(34) 목사는 가족과 교회 성도, 그리고 주변 지인의 도움으로 매주 수요일 ‘천원 밥상’을 지어냅니다. 아이들은 1000원을 내고 먹지만, 보통 식당에서 1만원을 더 내도 괜찮을 만한 메뉴입니다. 예쁘게 담아내는 ‘플레이팅’에도 매우 신경을 씁니다. 아이들에게 공짜밥이 아닌 대접받는 느낌을 받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석식당에서 아이들에게 준비한 천원짜리 밥상. 따뜻한 밥 한끼에는 많은 이들의 정성과 수고가 녹아있다. 최현석 목사 제공

아이들 허기와 마음 채우다
지난 16일 기자가 찾은 석식당의 첫 손님은 고등학교 2학생인 성훈이(이하 청소년 가명)와 광현이였습니다. 영업 시작이 얼마 안 된 오후 5시5분에 출입문을 열고 들어와 인사하고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최 목사와 이은희(40) 사모가 아이들이 오기 전 윤기 나게 닦은 곳이었습니다. 최 목사의 처제이자 석식당 셰프인 이은혜(37)씨와 음식을 준비하던 이 사모는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주문을 받았습니다. 이날 메뉴는 함박스테이크, 김치볶음밥. 두 가지 중 단연 인기 많았던 것은 한우와 양파 등을 다져 만든 함박 스테이크였습니다. 석식당의 설립 취지에 감동한 한 식당 사장님께서 레시피를 알려주셨다고 했습니다. 주문한 메뉴를 기다리던 성훈이는 “요즘 이 노래가 좋아졌다”며 식당 스피커에 휴대전화를 연결해 흘러나오는 음악을 따라 불렀습니다.

5시까지 텅 빈 석식당(위)은 30분이 채 되지 않아 배고픈 아이들로 가득찼다(아래). 원주=신은정 기자

15분이 채 되지 않아 또래 여러 명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고, 전체 테이블의 절반을 채웠습니다. 주문한 음식이 서너 개쯤 나올 무렵 초등학생 5학년생 10명이 우르르 식당으로 들어왔습니다. 최 목사는 “최근 ‘단골 리스트’에 올라온 아이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중 한 아이는 “여기서 저녁을 먹고 근처 공원에서 또 놀다가 집에 갈 거예요”라고 기자에게 말해주었습니다.

거리를 배회하던 아이들이 이 식당을 어떻게 알고 단골이 되었을까요. 최 목사는 “아웃리치(외부로 나가 봉사하는 기독교 용어)를 통해서”라고 멋쩍게 웃었습니다. 석식당 근처에는 큰 공원이 있는데, 그곳에서 늦은 시간까지 노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배고프면 우리 식당에 밥 먹으러 와라”는 식으로 홍보를 해온 덕이라고 했습니다. 이날 첫 손님인 성훈이는 “처음엔 장기가 털리는 줄 알고 걱정했는데 계속 와서 보니 목사님이 착하시더라”고 실없이 농담했습니다.

석식당에는 학교 밖 가정 밖 등 위기의 청소년들이 많이 찾아온다. 어느 겨울 석식당에 밥을 먹으러 온 청소년 무리들. 최현석 목사 제공

이날 석식당에는 20명이 찾아와 밥을 먹고 갔습니다. 요즘 식당처럼 인스타그램을 통해 예약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말없이 온다고 밥을 먹을 수 없는 건 아닙니다. 예상보다 많은 아이가 오면 급하게 다른 메뉴를 만들어냅니다. 보통의 부모가 그러는 것처럼 말입니다.

석식당의 주인장 최현석 목사가 식당을 이용하려는 아이들과 나눈 대화창. 최현석 목사 제공

밥값 1000원은 나가는 문에 놓인 돈 통에 넣어도 되고 계좌이체를 해도 됩니다. 하지만 안 낸다고 뭐라는 이는 없습니다.

석식당 입구에 놓인 돈 통. 아이들이 낸 천원짜리 몇장이 놓여있다. 원주=신은정 기자

방황하던 과거… 밥 한 끼 힘 알기에
최 목사는 목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20대 전도사 시절부터 위기 청소년에 마음이 더 쓰였습니다. 자신도 아파봤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져 집에 채권자들이 수시로 찾아왔던 불안한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그는 술과 담배에 손을 대기도 했습니다. 최 목사는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나빠서가 아니라 아파서 방황했던 거 같다”고 회상했습니다.

지난 16일 강원도 원주 석식당에서 기자와 만난 최현석 목사님. 원주=신은정 기자

유일하게 신앙생활을 하던 어머니가 데려간 보육원 봉사도 식당목회를 하게 된 계기를 마련해줬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김치 볶음이 가장 맛있는 반찬이라고 말하더라고요. 집안 형편이 늘 어려웠지만 부모님께서는 주변에서 돈을 꿔서라도 늘 저희를 배불리 먹이셨거든요. 그때 밥상에서 느꼈던 온기와 사랑이 방황했던 제가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돌아올 수도록 했기에 저 역시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정성 가득한 밥을 꼭 해주고 싶었어요.”

이날 석식당에서 봉사한 김성은(27)씨도 “밥 한 끼에 사랑을 담아 나누는 일이라 마음이 덩달아 따뜻해진다”고 했습니다.

석식당의 주인장인 최현석 목사와 아내인 이은희 사모, 석식당 셰프인 이은혜씨(오른쪽부터). 원주=신은정 기자
3곳 지역 식당이 석식당에 오는 아이들에게 정기적으로 밥상을 차려준다. 식당 '소로 여행자의 집'의 박은혜 사장님이 차려준 음식들. 최현석 목사 제공

식당 테이블 옆 흰색 커튼을 열면 그가 2017년 4월에 개척한 ‘정류장교회’가 있습니다. 식당의 3분의 1 정도의 공간입니다. 그는 처음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사주거나 교회로 초대해 냉동식품을 데워주고, 주먹밥 같은 것을 해주었습니다. ‘건강하고 따뜻한 밥’을 해주고 싶었지만, 요리에 젬병인 최 목사 부부가 해줄 수 있는 것엔 한계가 있었습니다. 집밥이 그리웠던 아이들은 김치찌개에 계란말이, 진미채 같은 ‘엄마 밥’을 먹고 싶어했습니다. 간호사로 일하다 육아하며 쉬던 최 목사의 처제가 식당을 돕기로 했고, 2022년 4월 영업 신고까지 내면서 진짜 식당을 운영하게 됐습니다.

최현석 목사가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사주던 모습. 최현석 목사 제공

교회 성도님들을 포함해 수많은 돕는 손길들이 있습니다. 특히 석식당 취지에 공감한 한 식당 사장님이 갑자기 생긴 수익 일부를 기부하고 싶다고 했고, 그 덕에 교회를 식당으로 리모델링하고 운영하는데 큰 보탬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역의 유명 식당 등 여러 사장님이 1년에 몇 차례씩 재료를 싸 와 특별한 코스 요리를 만들어 주시거나, 만들어진 요리를 보내주시기도 한답니다.

3곳 지역 식당이 석식당에 오는 아이들에게 정기적으로 밥상을 차려준다. 황골보리밥 유혜선 사장님이 차려준 음식들. 최현석 목사 제공
3곳 지역 식당이 석식당에 오는 아이들에게 정기적으로 밥상을 차려준다. 프로스트 최현석 사장님과 이준혁 매니저님이 차려준 음식들. 최현석 목사 제공

함께 온기 나눈 100명의 아이들
지금까지 석식당에서 다녀간 아이들은 1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이른바 ‘단골’이 대부분이고요. 청소년기를 지났거나, 다른 일을 찾아 지역을 떠난 아이들도 많다고 합니다. 최 목사는 석식당을 찾은 아이들에게 일자리를 주선해주거나 자립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데 실질적 도움을 주려고도 노력합니다. 교회와 석식당에서 만나는 이들 중 중 보호 종료 아동이나 취약 계층 가정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했고, 병원비나 식료품 등을 지원하기도 했답니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관련 기관을 연결해 주기도 하고요.

최현석 목사가 석식당 단골 손님들인 청소년들과 양떼캠프라는 이름으로 올 여름 워터파크에 놀러 간 모습. 최현석 목사 제공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 중 한 명은 집에서 수개월을 함께 지내기도 했던 15살이던 수연입니다. 석식당에 나온 다른 아이의 소개로 알게 됐고, 안면을 튼 지 두 달 만에 수연이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돼 가정위탁보호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수연이는 우리 집을 하숙집처럼 여겼어요. 한번은 몰래 집을 나가고 술을 먹고 전화를 걸어와 ‘목사님, 못된 짓만 골라 하는데 저 싫으시죠? 그냥 포기하세요’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더라고요. 보호 기간이 끝나고 수연이가 지인의 집으로 떠난 날, 우리 부부는 수연이를 끌어안고 말없이 펑펑 울었어요. 저는 수연이를 포기한 것 같아 괴롭고 부끄러웠는데, 아이가 나중에 ‘태어나서 이런 사랑을 처음 받아봤다’면서 고마웠던 마음을 전해줬어요. 어버이날이나 결혼기념일에 ‘엄마·아빠’라고 부르며 ‘말썽만 부려서 죄송하다’고 편지를 써주기도 해요. 모질고 힘든 세월을 자신의 방식대로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는 수연이가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석식당이 만둣국을 팔아 번 수익으로 석식당 출신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지난 2월 장학금을 선물하는 장면. 최현석 목사 제공

자신에게 도움만 받던 아이가 첫 월급을 받아 밥을 사줬던 것도 최 목사에겐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호석이는 중학교 때까지 보육원에서 자라다가 부친이 키우겠다고 데려 나왔지만, 자취방에 홀로 남겨진 아이였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생이던 호석이는 학교에 가지 않았고, 아이가 지내던 집은 금세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아지트로 전락했습니다. 최 목사는 돈이 생기면 술을 마시거나 배달 음식으로 배를 채우던 호석이를 석식당으로 불러내 따뜻한 밥을 먹였습니다. 아버지가 호석이 명의로 빚을 내는 등 문제를 일으키면 그가 대신해 도움을 주기도 했고요. 최 목사는 “그런 아이가 돈을 벌었다면서 밥을 꼭 사주고 싶다고 연락해왔고 기특하고 예뻐서 가슴이 벅찼던 기억이 있다”며 “함께 먹었던 제육볶음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정류장교회 성도들이 석식당을 찾은 아이들과 지난해 크리스마스 무렵 가진 모임 모습. 최현석 목사 제공

누군가는 ‘그깟 밥 한 끼가 방황하는 아이들을 달라지게 할 수 있느냐’고 의문을 품습니다. 최 목사는 “수연이 호석이 말고도 석식당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밥을 지어주는 일을 하면서 가슴 속에 품은 유일한 마음은 ‘기대하지 않고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초조해지고, 포기하고 싶고, 상대가 미워지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최 목사는 “아이들에게 일자리를 소개해 주었지만 가지 않아 난처하고 곤란한 적이 많았다”며 “그럴 때마다 ‘내가 만약 진짜 부모였다면 여기서 그냥 포기할까’라는 생각을 할까 싶다. 아이들의 인생이 한순간에 바뀌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괜찮다. 아이들 팔에 있던 자해 상처가 아물고 폭행이나 사기 등 범죄에 더이상 휘말리지 않는 것이 이 청소년 사역의 진짜 열매가 아닐까 싶다”고 강조했습니다.

더 좋은 어른들 많아졌으면…
위기 청소년을 돌보는 일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최 목사 역시 한때 공황장애 증상을 보일 정도로 지쳤을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다 보니 10대 관련 범죄 뉴스만 봐도 식은땀이 나고, 사건 피해자가 될 거 같은 망상에 시달렸다고 해요. 전화가 걸려오면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 아이들 전화번호를 차단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최 목사는 “아직도 완벽히 극복한 것이 아니지만, 성경의 나오는 사역자들 대부분은 모두 목숨 걸고 일하지 않는가”라면서 “나 역시 용기를 내며 한 걸음씩 걸어 나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석식당의 든든한 후원자인 정류장교회 성도들이 최근 주일 예배를 드리는 모습. 최현석 목사 제공

위기 청소년을 10년 정도 만나며 교회나 기관 등에 아쉬웠던 점들은 없었을까요. 최 목사는 “아직 우리 사회에선 아이들이 사고를 치면 보호관찰을 하거나 위탁보호조치를 내리는 등 사후처리에 좀 더 초점이 맞춰진 것 같다”며 “아이들이 범죄에 노출되기 전, 더 좋은 어른들이 아이들의 아픔을 미리 감지하고, 현실에 최선을 다하고 적응해 나갈 수 있도록 예방 차원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기성 교회 제도 안에서 모든 이들을 품기 힘들 수 있다”며 “아이들을 교회로 먼저 데리고 온다는 생각보다는 건전한 게임방 등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좋은 공간에 스며들 수 있도록 사역의 지경을 넓혀주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최 목사는 이날 이른 저녁밥을 먹고 떠나는 성훈이와 광현이를 1층까지 배웅했습니다. 등을 툭툭 치며 “위험하게 살지 마라”고 잔소리합니다. 그러면서 “무슨 일 생기면 꼭 전화해라”고 부탁도 합니다. 세상으로부터 따뜻한 눈길을 받아본 지 오래된 아이들에게 포근한 눈길을 담아서 말입니다.

지난 16일 석식당을 찾은 초등학생 무리를 배웅하는 최현석 목사. 원주=신은정 기자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원주=신은정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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