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 대신 옛날 과자봉지 잡혔다…'쓰레기 천국' 한강 하구

천권필 2024. 10. 2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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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강화군 더리미포구의 어선에 새우와 각종 쓰레기들이 뒤섞여 있다. 천권필 기자


17일 한강 하구에 있는 강화도 더리미포구. 이곳에서 25년째 새우를 잡아 온 김진남(44)씨는 오전 밀물 때가 되자 물속에 쳐 놓은 그물을 걷었다. 그는 김장철을 앞둔 요즘이 가장 바쁜 때라고 했다.

" 지금은 중하새우가 제철이라 한창 많이 잡혀요. 생새우 상태로 김장에 들어가는데 여기까지 와서 사가는 분들이 많아요. "

인천시 강화군 더리미포구의 어선에서 새우와 쓰레기를 분류하는 모습. 천권필 기자

묵직한 그물에 만선을 기대했지만,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배 위에서 그물을 열자 새우와 함께 각종 쓰레기가 쏟아져 나왔다. 김 씨는 큰 쓰레기를 걷어낸 뒤 배에 설치된 대형 선풍기를 틀었다. 새우와 쓰레기를 분류하기 위해서다. 바람과 채를 이용해 새우를 걸러내자 그물을 가득 채웠던 비닐 쓰레기만 남았다. 지금은 팔지 않는 오래된 과자 봉지도 보였다.


조업보다 쓰레기 분류 더 걸려…올해만 마대 2300개 수거


인천시 강화군 더리미포구에서 바라 본 한강 하구. 천권필 기자
한강 하구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汽水域)이다. 생물 다양성이 뛰어나고 생태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새우젓을 담는 젓새우의 70%가 강화에서 생산된다고 할 정도로 어업 활동도 활발하다.

문제는 강줄기를 따라 이동하다가 그물에 걸리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다. 과거에는 어민들도 쓰레기양이 많지 않아 수작업으로 분류했는데, 점점 그물에 걸리는 양이 많아지면서 조업보다 쓰레기를 골라내는 데 3~4배 시간을 더 써야 했다. 이에 어민들은 배에 선풍기를 설치하거나 천만 원이 넘는 자동 선별 기계까지 샀다.

이렇게 인양된 쓰레기는 강화군에서 수매해 처리한다. 올해 초부터 지난달까지 어민들로부터 수매한 쓰레기양은 마대자루(60ℓ)로 2300개에 달한다. 강화 새우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질까 쉬쉬하던 어민들 사이에서도 요즘에는 한강 쓰레기를 줄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 씨는 “쓰레기가 많을 때는 한 달에 마대자루로 수십 개씩 나오다 보니, 재활용 선별장에서 쓰는 플라스틱 자동 선별 기계를 사서 쓰고 있다”며 “정부에서 강을 따라 떠내려오는 거라도 차단을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눈에 안 보이는 수중 따라 쓰레기 흘러”


인천시 강화군 새우잡이 어선 그물에 걸린 쓰레기들. 심원준 박사 제공
이 많은 쓰레기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심원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박사 연구팀은 한강 하구 쓰레기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그물에 걸린 쓰레기를 조사했다. 그 결과, 플라스틱 포장재가 쓰레기의 95% 이상을 차지했고, 대부분이 비닐류였다.

부피당 플라스틱 쓰레기 개수는 한강 중층이 표층이나 저층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물속에서 많은 양의 비닐 쓰레기가 한강 하구를 따라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특히, 오래된 포장재 비닐이나 마대자루 섬유가 발견된 사실에 주목했다. 이를 토대로 과거 마대자루에 보관된 비닐 쓰레기가 한강 주변에 불법 투기된 뒤 하구나 연안 어딘가에 대규모로 축적돼 있으며, 이 쓰레기 일부가 물살을 따라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연구팀이 분석한 한강 하구 쓰레기. 작은 비닐조각과 오래된 포장재 비닐, 마대자류 섬유 등이 발견됐다. 심원준 박사 제공

심원준 박사는 “많은 비닐 쓰레기가 표층이 아닌 수층을 통해서 움직이고 있다 보니 눈으로 보이지 않아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놓치고 있는 것”이라며 “대규모 쓰레기 불법 투기 및 축적 지역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강 하구가 강과 바다의 경계에 있다 보니 쓰레기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도 있다. 국가 하천의 폐기물은 환경부가 관리하지만, 해양 폐기물은 해양수산부가 맡고 있다.

장정구 기후생명정책연구원 대표는 “해양 쓰레기의 상당 부분은 강을 통해 유입되는 육상쓰레기가 기여하고 있다”며 “한번 바다로 흘러간 쓰레기는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하천에서부터 플라스틱 쓰레기의 유입을 철저하게 막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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