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학 목사의 우보천리] 세상이 기다리는 기독교

2024. 10. 2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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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폐막한 제4차 로잔서울대회에서도 그랬지만 지금 세계 기독교는 교파를 뛰어넘어 초대교회에 관한 관심이 폭증하고 있다. 이유는 이렇다. 서양사에서 근세에 들어와 지난 300년간 세상은 일관되게 세속화의 길을 걸어왔다. 계몽주의로부터 시작해 근대·산업화를 거쳐 21세기에는 인터넷 혁명과 지식정보사회, 인공지능(AI) 시대라는 얼굴을 갖고 세속화는 지속하고 있다. 세상은 하나님 없는 세계를 향해 거침없이 달리고 있다. 교회는 이러한 세속화의 거대한 흐름에 크게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을 취해 왔다.

첫째는 저항주의다. 세속화의 흐름을 악한 흐름으로 규정하고 될 수 있는 한 저항하며 신앙의 근본 가치를 지켜 내려고 한 시도다. 그러다 보니 교회는 세속화를 주도하는 세상에 대해 혐오하거나 적대하게 되고 배타적이고 공격적이게 됐다.

둘째는 순응주의이다. 세속화를 역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선(善)으로 인식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흐름이다. 이 흐름에선 세속화를 권위적 봉건주의로부터의 해방과 계몽으로 인식한다. 그렇기에 기독교는 이 흐름에서 나온 정의와 평화, 인권 등 인류 보편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부여안고 이를 추구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전자가 근본주의 성향이라면 후자는 자유주의 성향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이 두 흐름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저항주의는 교회와 세상을 분리하는 이원론에 빠져 세상과 건강한 소통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지형을 확장하는 데 실패했다. 순응주의는 기독교의 보편가치인 사랑과 자유, 평화를 인류의 보편가치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기독교 자신의 고유한 맛과 기질, 즉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실상은 종교로 포장된 ‘좋은 사람’ 만드는 정도로 기독교 가치를 평가절하시켜 버렸다. 기독교가 생명이 아니라 도덕 종교가 돼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거대한 세속화의 흐름에 투항하지도 않고 비판·창조적 수용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지형을 확장해 가는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교회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할 것인가. 세상을 완전히 거부하거나 배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동화되지도 않는 선에서 교회가 자기의 고유함을 지키고 동시에 세상에 영향을 주고 변화를 가져오며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길이 과연 가능한가.

그 길이 바로 초대교회의 길이다. 미국 스캇 솔즈 목사가 펴낸 ‘세상이 기다리는 기독교’에서 저자는 세속화의 심장인 뉴욕 출신인데 미국에서 저항주의 기독교의 온상이라 할 수 있는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목회하면서 중요한 통찰을 얻었다고 했다. 기독교는 급속한 세속화 흐름에서 잊히거나 거부당하고 있지 않는단 사실이다. 세상은 사실 기독교이건 무엇이건 자신을 구원해 줄 그 무엇을 여전히 찾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기독교가 그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하면서 자신들만 진리를 가진 것 마냥 교만하고 무례해 세상이 교회를 외면하게 만들고 있었단 것이다. 지역사회를 통해 솔즈 목사는 세상은 오늘도 교회의 진리를 듣기 원한다는 걸 확인한다.

그런데 세상이 듣기 원하는 진리는 공격적이지 않고 친절하며 자기중심적이기보다 섬기려 하고 호전적이기보다 평화롭고 배타적이기보다 포용적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본래의 기독교요 세상은 이 본래의 기독교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솔즈 목사는 이런 교회가 바로 초대교회요 본래의 교회라고 봤다. 옳은 통찰이다.

초대교회 무대인 로마제국은 오늘날과 같은 다원적 사회였다. 로마제국의 정치적 울타리 안에서 다양한 종교가 허용되고 민족의 고유한 문화가치가 존중받았다. 기독교는 이 다원적 사회 속에 스며들어 성공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며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했다. 기독교가 자기 정체성과 확신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해서 복음을 전파하되 그 복음은 세상에 대해 무례하거나 공격적이지 않고 오히려 친절하고 포용적이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세상이 신실하게 진리를 따라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고 양심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오히려 매력을 느껴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고 교회의 진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것이 그때도 오늘도 세상이 기다리는 기독교 모습이다.

이상학 새문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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