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바나나와 사과는 경쟁 관계?

2024. 10. 23.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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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가지 상품을 사고파는 일정한 장소'다.

하지만 사과 가격이 급등할 때 바나나 판매량이 증가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바나나와 사과는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것은 아닐까? 유럽연합(EU) 법원은 '유나이티드 바나나'(United banana) 사건에서 바나나는 다른 과일과 구별되는 특성이 있어 별도의 상품시장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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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환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장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가지 상품을 사고파는 일정한 장소’다. 흔히 말하는 수산물, 과일 시장이 여기에 속한다. 이번에는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시장을 보자. 먼저 바나나와 사과는 같은 시장에 속할까? 바나나는 일년 내내 구입이 가능하고, 대량 수입돼 가격이 저렴한 편이며, 두꺼운 껍질이 있지만 손으로 벗기기 쉽고, 한 송이씩 마음대로 분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과일과 구별된다.

하지만 사과 가격이 급등할 때 바나나 판매량이 증가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바나나와 사과는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것은 아닐까? 유럽연합(EU) 법원은 ‘유나이티드 바나나’(United banana) 사건에서 바나나는 다른 과일과 구별되는 특성이 있어 별도의 상품시장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편의점에서 파는 마실 거리를 생각해 보자. 생수, 탄산음료, 과일음료, 커피음료, 차, 에너지드링크, 이온음료, 유제품 등 다양하다. 소비자로서는 어떤 종류의 음료를 살지 미리 결정하고 가게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비슷한 음료들의 가격을 비교해 보고 결정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가스가 들어간 탄산수는 생수와 같은 시장에 속할까. 이는 지역, 소비자 기호 및 상품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서유럽에서는 탄산수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상생활 중 많이 소비되므로 생수 시장에 포함된다고 주장해 볼 여지가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탄산수는 카페나 식당을 중심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어 생수라기보다는 기호 음료에 가깝다. 탄산수의 지위는 식문화와도 관련이 있는데 느끼한 버터, 치즈, 고기가 중심인 서양 음식은 탄산과 궁합이 잘 맞는다. 더 나아가 탄산수에 과일향을 넣은 제품은 탄산수에 가까울까 아니면 설탕이 들어간 탄산음료와 같이 묶여야 할까?

이번에는 커피를 떠올려 보자. 편의점에는 봉지 커피믹스부터 저렴한 캔커피, 우유가 함유된 컵커피, 스타벅스 등 고급 캔커피, 커피우유, 기계에서 직접 추출한 에스프레소 커피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물론 소비자 중에는 자신의 기호가 확실해 특정 종류의 커피음료만 구매하고 다른 제품군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보통의 소비자는 다른 제품군이 1+1 할인 행사 중이거나 원래 사려고 했던 제품이 가격이 오르면 다른 제품군으로 방향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

한편 거래계에서는 시장이 독과점화됐다, 시장에서의 지위가 변했다는 표현이 종종 쓰인다. 특히 어떤 플랫폼 사업자는 시장점유율이 90%가 넘는 독점기업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하고, 굴지의 대기업의 시장점유율이 낮아졌다는 뉴스가 전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시장점유율 숫자가 나오려면 그 시장의 범위가 정확하게 정해질 것을 전제로 한다. 즉, 시장의 범위가 넓게 정해지면 해당 기업이나 제품의 점유율은 내려가고, 반대로 시장의 범위가 좁게 설정되면 그 기업이나 제품의 점유율은 올라가게 된다. 하지만 거래계에서 이야기되는 시장, 시장점유율은 공식적, 구체적으로 판정된 것은 아니고 업계나 기관에서 대략적으로 추단한 것이 대부분이다.

같은 시장에 속한다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상품의 기능, 가격, 특징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특정 제품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가 다른 상품으로 이동하는지가 중요하다. 이처럼 경쟁에 관한 시장을 정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고, 보는 시각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이에 비해 독점기업, 시장점유율에 대한 언급은 상대적으로 쉽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의 전제가 되는 ‘시장’을 정하는 것이 만만하지 않은 작업인 만큼 시장에서의 지위에 대한 평가도 신중할 필요는 있다.

박세환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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