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대학과 돈

2024. 10. 23.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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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필자는 경제학자이자,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 소속학교의 국제교류를 담당하는 국제처장이면서 동시에 미취학 아동을 키우는 부모이다. 한국 교육의 수요자이자 공급자이며, 국내 대학과 해외 대학의 운영 방식을 접할 기회가 많은 교육행정가이다. 이런 복합적 정체성 속에서 최근 소속 대학의 학술교류를 위해 필자가 박사학위를 받았던 예일대학교에 다녀온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 천문학적 투자가 미 대학 경쟁력
초·중등 공교육비는 넘쳐나는데
대학 교육비는 초라한 우리 현실
비합리적 교육교부금제 고쳐야

미국 예일대학교 전경. 중앙포토


올해 7월 예일대의 제24대 총장으로 모리 맥이니스 교수가 임명되었다. 개교 323년만의 첫 여성 총장이다. 맥이니스 총장은 뉴욕주립 스토니브룩대학교 총장 시절 미국대학 역사상 가장 큰 기부금을 유치한 경험이 있다. 2023년 7월 기초연구를 지원하는 사이먼스재단으로부터 5억 달러(한화 7000억원)의 기부를 유치한 것이다. 대학교가 기부받은 2달러당 주 정부가 1달러를 매칭해주는 뉴욕주의 매칭프로그램에 따라 스토니브룩대학교의 발전기금은 단숨에 7.5억 달러(한화 1조원)가 늘어났다. 예일대학교에서도 총장의 주요업무는 대외기금 모금인데, 대학의 경쟁력은 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예일대의 발전기금 규모는 410억 달러(한화 55조원)다. 작년 대학기금의 운용수익으로만 한화 1조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였다. 예일대학교의 올해 예산은 60억 달러(한화 8.2조원)로, 대학지출의 63%는 기금운용수익과 신규 기부금으로 조달된다. 박사과정 학생의 경우 등록금을 전액 면제해주며 첫 2년간은 무상으로, 그 이후는 조교업무를 하면 풍족한 생활비를 받게 된다. 필자도 박사과정 6년 동안 돈 걱정 없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물가수준이 다르고, 환율문제가 있지만 현재 예일대 박사과정 학생이 한 달에 받는 생활비와 필자의 월급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1년 예산이 8조원이 넘고, 수십조원의 기금을 보유한 대학이 미국에 예일대뿐이겠는가. 일례로 올해 노벨상 수상자 11명 가운데 이중국적까지 포함한 미국인은 8명, 모두 미국 대학교수이다. 역대 1012명의 노벨상 수상자 중 400명 이상이 미국인, 절반 이상이 대학교수이다. 미국이 기초학문과 첨단기술에서 글로벌 선두를 유지하고, 미국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중심에는 미국대학과 이를 뒷받침하는 천문학적인 투자가 있다.

교육부가 발표한 'OECD 교육지표 2024'에 따르면 한국 정부의 초·중·고 교육의 경우 1만 5858달러로, OECD 평균(1만 4209달러)보다 11%높다. 김영옥 기자


한국으로 돌아와서 공공과 민간의 교육투자에 대한 통계 두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국회예산처 ‘고등교육 재정지원 분석(2023)’에 따르면 2020년 초·중등교육 1인당 공교육비는 1만5148달러로 OECD 평균의 133.4%나 된다. 반면 우리나라 학생 1인당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 공교육비는 1만2225달러로 OECD 평균의 67.5%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대다수 OECD 국가와 반대로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보다 초·중등교육에 더 많이 투자하고 있다는 점이다. OECD 38개국 중에서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 1인당 교육비가 초·중등교육 1인당 교육비보다 낮은 나라는 한국과 그리스 2개국뿐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국내 초·중·고 교육재정이 주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통해 이루어지며, 교부금은 내국세 총액의 20.79%의 비율에 따라 배분되기 때문이다. 내국세에 연동된 교부금 산정방식은 인구 팽창기인 1972년에 도입되었다. 국내에서 걷히는 세금이 증가하면 학생 수 감소와 관계없이 초중등교육에 대한 재정지원이 자동으로 증가하는 구조다.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교부금이 올해 69조원에서 2028년 89조원으로 30% 증가한다. 같은 기간 초·중·고 학령인구는 525만명에서 456만명으로 13% 감소한다. 이에 따라 초·중·고 학생 1인당 교육교부금은 같은 기간 50% 증가하게 된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 교육부와 통계청은 14일 전국 초·중·고 약 3천개교 학생 약 7만4천명을 대상으로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를 실시한 결과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이 27조1천억원으로, 1년 전보다 4.5%(1조2천억원) 증가했다고 밝혔다. 뉴시스


둘째, 통계청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결과’에 따르면 작년 가계의 사교육비 지출액은 27.1조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학령인구 감소로 초·중·고 학생 수는 전년 대비 1.3% 감소했지만 사교육비 총액은 되레 1조원 넘게 늘어났다. 대다수 사교육비는 대학교 입시경쟁에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군비경쟁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상대방보다 더 지출해야 이길 확률이 올라간다. 사교육비의 상당수가 한국 학생들 간의 등수 경쟁을 위한 비용일 뿐 한국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가계지출이라고 보기 어려울 텐데, 매년 증가하고 있다.

정리해보면 초중고의 학령인구는 급속히 줄어드는데, 이들에 대한 공공과 민간의 투자총량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러다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으로 가는 순간 공공과 민간의 투자는 모두 급감한다.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있고, 주요 대기업들이 위기라는 뉴스가 들려오는 지금 우리가 어느 교육에 더 투자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KDI의 ‘인구축소사회에 적합한 초중고 교육 행정 및 재정 개편방안(2023)’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내국세에 연동되는 초중고 교육재정 총량 산정방식 개편에 대한 전 국민의 관심이 필요하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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