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노벨문학상의 낙수효과를 기다리며

2024. 10. 23.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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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규 소설가·목사

축하 박수 유의미한 가치로
발전하려면… 책 읽기와 글
쓰기에 지속적 관심 가져야

최근 한국 문학 지평을 뒤흔든 기쁘고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채식주의자’를 쓴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그렇다. 2016년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부커상 수상 때만 해도 한국 작가가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하다는 놀라움과 자족적 선 긋기가 팽배했는데,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한국 문학, 이른바 K콘텐츠의 힘과 위상이 전혀 다른 차원을 맞이했다는 평가를 듣기에 충분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 상황에 박수를 보내고 기뻐하는 것은 전혀 부끄럽거나 어색한 일이 아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분명 한국 문학의 쾌거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아시아 문학, 그중에도 젠더 불균형으로 발생한 숱한 문제의식을 채굴하는 측면에서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란 의미도 남다르다. 아시아, 여성 등의 주제가 더는 변방이 아닌 세계적 주제의 중심으로 들어왔다는 점에서 문화사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노벨상이 과연 상금이 많아 세계가 주목하는 걸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노벨평화상의 경우 현존하는 지구촌의 위협, 위기를 공생, 공영의 방향으로 전환하는 비전을 제시했으며 다른 기초분야 수상자 배출 역시 인류 공영의 가치 기여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특히 노벨문학상의 경우는 의미가 남다르다. 유럽 사회가 문화 권력을 점유한다는 부정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노벨문학상이 해마다 전 세계 실존 작가의 가장 치열한 시대의식을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하기 어렵다. 또한 문학은 한 시대가 쌓아 올린 문화 콘텐츠의 축적 결과로 봐야 하며, 그 과정에 수많은 다양한 작품이 발표되고 독자의 자발적 수요가 뒤따라야만 가능하다는 걸 노벨문학상이 증명해주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출판시장은 노벨문학상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계승하려는 의지를 쉽게 보이지 않는 듯하다. 물론 수상 초창기여서 한강 작가에 관한 관심과 그에 파생되는 한강 작가의 책 소비에만 집중하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이상의 관심이나 다양한 책 소비로 확장되는 징후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타난다는 점이다. 몇몇 대형 출판사,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에 쏠리는 매출 효과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문화 사각지대를 밝히려는 공공성을 지닌 지역·독립 서점들의 매출 증진으로 유의미하게 연결되진 않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삭감되기 시작한 문화예술 관련 지원예산의 차가운 현실은 또 어떠한가. 올해에만 번역뿐 아니라 국민도서문화 확산 예산에서 약 60억원, 출판사업 지원예산에서 약 45억원 등이 삭감되는 안타까운 결과가 계속되고 있다.

노벨문학상을 통한 낙수효과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 자체가 부적절할지도 모른다. 낙수효과란 대기업이나 고소득층 등 선도 부문이 성장할 경우 그 성과가 연관 부문으로까지 확산함으로써 경제 전체가 성장한다는 경제용어인데, 이를 노벨문학상 효과와 직접 비교하는 게 어울릴지 의문이다. 하지만 한 국가를 대표하는 문학적 성취가 문학계 전반의 활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 측면에서 조심스럽게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건 어떨까 싶다. 경제적 효능으로서 낙수효과를 말하지 않더라도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 문학의 저변 확장을 기대하는 낙수효과에 주목하고, 더 나아가 의지를 갖고 문화 인프라 확산 필요에 눈 뜨는 건 필요해 보인다.

노벨문학상의 한국인 수상을 축하하는 박수 소리는 앞으로도 계속돼야만 한다. 하지만 그 박수가 유의미한 가치 확산으로 발전하려면 반드시 선행돼야 할, 혹은 곱씹어야 할 가치가 있는데, 바로 책 읽기와 책 쓰기에 관한 지속적인 관심이 그것이다.

술도 마시지 않고, 카페인 때문에 커피도 끊고, 오직 걷기만이 유일한 쉼과 사색이라는 한강 작가가 밝힌 말처럼 꾸준히 생각하는 글 읽기, 글쓰기의 참된 힘을 긍정하는 첫걸음이 시작되길 바란다. 그것이 노벨문학상으로 인한 낙수효과의 참된 가치다.

주원규 소설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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