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루슈디가 보는 전쟁, 트럼프

천지우 2024. 10. 23.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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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단골 후보 중에 살만 루슈디(77)가 있다.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작가가 됐고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는 루슈디는 그의 소설들도 거대하고 흥미롭지만, 그의 삶 자체가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정도로 드라마틱하고 문제적이다.

루슈디는 지금의 세계, 특히 두 개의 전쟁과 미국의 앞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루슈디는 블라디미르 푸틴을 '거짓 이야기로 자국민을 세뇌하려는 독재자'로 규정했는데,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그의 적대감도 이에 못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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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우 국제부장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 중에 살만 루슈디(77)가 있다.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작가가 됐고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는 루슈디는 그의 소설들도 거대하고 흥미롭지만, 그의 삶 자체가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정도로 드라마틱하고 문제적이다. 세계의 갈등과 불화를 자신의 몸과 펜으로, 평생에 걸쳐 구현하고 그것에 맞서 온 개인이라고 할 수 있다.

루슈디는 1988년 출간한 ‘악마의 시’에서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불경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이슬람 시아파 세력으로부터 수십 년간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10년간 영국 경찰의 보호하에 도피 생활을 했고, 다시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2000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후 20년 남짓 자유를 누리던 그는 2022년 8월 강연 도중 레바논계 미국인 청년의 공격을 받아 거의 죽을 뻔했다. 15차례 난도질을 당하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오른쪽 눈을 잃었다.

루슈디가 최근 펴낸 ‘나이프’는 2년 전 피습 사건과 이후 회복 과정을 담은 회고록이다. 제목의 나이프는 그가 찔린 칼을 가리키는 동시에 그가 세상을 베는 칼인 언어를 뜻하기도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일어난 일을 소유하고, 그 사건을 책임지고 내 것으로 만들어 단순한 피해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나는 폭력에 예술로 답하기로 했다.”

루슈디는 1989년 당시 이란 최고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의 살해 명령 이후 33년 동안 ‘20억명(무슬림 전체 인구)의 미움’을 받아 온 끝에 칼을 맞았다. 하지만 증오와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버티는 그의 의지는 범인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악마의 시’를 쓸 때도 그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떻게 전할지만 생각했다는 그는 수많은 적의와 마주하면서도 꼬리를 내리는 글이나 복수심에 사로잡힌 책은 쓰지 않았다. 이번 회고록도 마찬가지다. “예술가로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가는 문학적 경로를 이해하고 내가 선택한 길을 받아들이며 그 길을 계속 나아가는 것뿐이었다.”

루슈디는 지금의 세계, 특히 두 개의 전쟁과 미국의 앞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는 지난 5월 한 인터뷰에서 “가자지구의 무고한 죽음에 대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괴로워해야 한다”면서도 “진보적인 젊은이들이 하마스 같은 파시스트 테러 단체를 지지하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지금 팔레스타인 국가가 세워진다면 하마스가 운영하는 ‘탈레반 같은 국가’ ‘이란의 위성 국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해 루슈디는 러시아의 침공을 비난하며 우크라이나와 연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루슈디는 블라디미르 푸틴을 ‘거짓 이야기로 자국민을 세뇌하려는 독재자’로 규정했는데,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그의 적대감도 이에 못지않다. 아들과 대화 도중 “트럼프가 재선된다면 이 나라에서 사는 것이 불가능해질지도 모르지”라고 말했을 정도다. 또 “빨간 모자를 쓴 사람들이 다시 만들고 싶어하는 ‘위대했던’ 미국이 과연 언제 있었단 말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루슈디는 2022년 5월 국제 작가 모임에서 이같이 연설했다. “우리는 압제자들의 부정직한 서사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독재자, 포퓰리스트, 바보들의 거짓 서사보다 나은 이야기를 함으로써 그런 서사를 뒤엎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푸틴이 김정은의 도움을 받아 전쟁에서 이길지도 모르고, 트럼프가 또다시 민심의 불만을 파고들어 대선에서 이길지도 모르는 지금, 다운되는 마음을 붙잡아주는 말이다.

천지우 국제부장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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