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러·북 軍밀착, 단계별 조치 취하겠다"…러 행동 따라 대응 시사

유지혜, 이유정 2024. 10. 2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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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전화 통화를 하는 모습.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대해 “러·북의 무모한 군사적 밀착이 규범 기반 국제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며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는 이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러·북 군사협력의 진전에 따른 단계별 조치를 적극 취해 나가겠다”고 말해 즉각 대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등에 나서기보다는 러시아의 기술 이전 등 관련 동향에 따라 대응 수위를 높여가겠다고 시사했다.

윤 대통령은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의 통화에서 “(러·북 협력에 대응하는)과정에서 나토 및 나토 회원국들과 실질적 대응 조치를 함께 모색해나가길 바란다”며 이처럼 말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이에 뤼터 사무총장은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나토가 러·북 군사협력에 대응하기 위해 대한민국과 적극적으로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뤼터 사무총장은 보다 상세한 정보 공유를 위해 한국이 나토에 대표단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고, 윤 대통령은 대표단을 신속하게 파견하겠다고 화답했다.

북한군 파병에 대해 윤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힌 건 처음이다. 지난 18일 윤 대통령 주재로 열린 긴급 안보회의 뒤 대통령실은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지만, 주어는 윤 대통령이 아닌 ‘참석자들’이었다.

윤 대통령이 이날 ‘단계적 조치’를 언급한 것과 관련,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군 파병으로 안보 상황이 훨씬 엄중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에는 러시아가 반대급부로 무엇을 제공하는지를 봐야지 북한이 제공하는 것을 기준으로 우리가 움직일 수는 없다”며 “우리의 행동은 러시아의 행동에 따라 정해진다는 게 윤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염두에 둔 ‘행동의 기준’은 러시아가 북한에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북핵 위협 고도화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을 이전하는 것이라고 한다. 윤 대통령과 뤼터 총장이 “러시아의 민감 기술 이전 가능성” 등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겠다고 한 것도 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북한이 파병군에 ICBM 관련 기술자를 포함시켰을 가능성을 들어 관련 기술 이전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북한이 아직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는 ICBM 재진입, 후추진체, 다탄두 기술 등이다. 화성-17·18 등 ICBM 시험발사를 담당한 적이 있는 미사일총국 붉은기중대 인원이 이미 러시아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와 관련, 국정원은 “여러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미사일총국은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 등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도 작전·운용하고 있을 수 있어 해당 인원이 이미 러시아에 수출된 SRBM 후속조치 등과 관련된 작업을 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텔레그램 채널 파라팩스가 18일 공개한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훈련 중인 북한군 모습. 사진 텔레그램 캡처

러시아도 우리 정부가 북한군 파병 사실을 밝힌 뒤 처음으로 북·러 협력에 대한 입장을 내놨다. 러시아 타스 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북한은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자 파트너로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으며 이는 우리의 주권적 권리”라고 밝혔다. “이번 협력이 제3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도 우려할 필요가 없으며, 계속 발전시킬 것”이라면서다. 북·러 간 불법적 협력을 합법으로 주장하며, 한국 안보에 위협을 끼치지 않는다는 기존의 궤변을 반복했다.

정부는 우리 쪽 대응 조치에 대해서는 모호성을 유지한 채 군사기술이나 장비 이전에 대한 감시와 추적을 강화하는 등 러시아의 실제 행동을 주시하는 전술을 유지할 전망이다. ‘상대방이 해선 안 될 일은 명확히 규정하되, 선을 넘을 경우 우리 측의 대응은 모호하게 규정한다’는 억제의 원칙에 따르고 있는 셈이다.

실제 정부는 북한군이 러시아에 파병됐다는 증거를 대량으로 공개한 뒤엔 “모든 수단”을 언급한 공식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모든 수단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석은 언론과 전문가 등에 맡긴 채다.

김홍균 외교부 1차관은 이날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불러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등 불법적인 군사 협력을 가장 강력한 언어로 규탄”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김 차관은 “우리 핵심 안보이익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와 공동으로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해 나갈 것임을 엄중히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양측이 팽팽히 대치하며 고착화하자 포병의 역할이 커졌다. 로이터=연합뉴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이날 오후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 대사를 접견해 “북한의 러시아 파병 등 러·북 간 군사협력 심화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특히 북한의 파병과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국제사회와 공조해 나갈 것”을 분명히 했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이는 우리 국정원의 증거 공개를 기점으로 한층 적극적으로 국제 여론전에 나선 우크라이나의 접근법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연일 관련 영상과 자료를 공개한 데 이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영상 연설에서 “우리 파트너 국가들이 이 문제와 관련해 정상적이고 정직하며 강력한 대응에 나설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런 입장엔 ‘우크라이나전 이후의 한·러 관계’에 대한 고민이 깔렸다. 러시아가 이미 한국의 살상무기 지원을 양국 관계의 ‘레드라인’으로 규정한 가운데 이를 넘는 건 대러 정책 자체의 전면적인 전환을 뜻하기 때문이다. 외교가에서는 냉전 종식 뒤 1990년대 이뤄진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 이후 옛 공산권을 대상으로 한 가장 큰 외교적 결정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 주한 러시아 대사관은 지노비예프 대사가 김홍균 차관과 만나 “러시아와 북한 간의 협력은 국제법의 틀 내에서 이뤄지며, 대한민국의 안보 이익에 반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SNS를 통해 밝혔다.

주재 대사가 초치 뒤 공식적으로 반박 입장을 내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러시아가 적반하장식의 오만한 태도를 보인 셈이지만, ‘국제법의 틀’을 언급한 건 한국이 설정한 선을 의식은 하고 있다는 뜻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김홍균 외교부 1차관이 21일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한 것과 관련해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러시아대사를 초치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사진은 김홍균 외교부 제1차관과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대사. 연합뉴스


살상무기를 지원하는 순간 그나마 한국이 갖고 있던 협상력이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러시아로서는 극단적 조치도 참을 이유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북·러가 더 밀착하며 폭주할 빌미를 제공할 우려마저 있다. 한국과 러시아 간 다리가 완전히 끊어진다면 우크라이나전 이후 한반도에 신냉전 구도가 형성될 경우 북·러가 더욱 공고히 진영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다만 러시아의 행동에 따라 무기 지원 선택지는 언제든 가동될 수 있다고 한다. 국내 전문가들은 155㎜포탄이나 천궁-II와 같은 대공 방어 무기를 순차 지원하는 방식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155㎜포탄은 개전 초반부터 우크라이나와 미측이 한국에 지속적으로 지원 요청을 해왔던 항목이다.

우크라이나는 패트리엇 등 한국이 보유한 대공 무기 지원을 공개적으로 요청해왔는데, 한국이 개발한 천궁-II 지대공 요격미사일도 '지원 리스트'에 올라갈 수 있다. 특히 한국 정부 입장에선 '살상 무기'가 아닌 방어용 무기를 지원한다는 논리를 세울 수 있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총력전에선 방어용 요격 무기와 공격용 무기가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목소리도 군 안팎에 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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