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보어 아웃과 번 아웃 사이에서

2024. 10. 22.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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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먹고살 만한 충분한 돈이 주어진다면, 그래도 일을 할 것인가.’

사실 보편적 인간으로서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기에 결론적으로 당신은 일을 할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혹자는 ‘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임금노동으로만 한정 짓곤 하나, 사실 누구나 기본적 삶의 유지를 위한 일을 항상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또한 아브라함 매슬로(1908~1970)의 욕구단계설로도 주장되는 바, 인간은 짐승과 달리 생리와 안전의 욕구가 채워진다해도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존경을 넘어 자아실현의 욕구를 지향하는데 이는 오직 일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때문에 아무리 섭생이 충족되고 쉼이 고팠을지라도 인간이라면 무언가라도 일을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잘못된 두 관점이 있다. 우선 일을 부정적으로 보는 관점으로 인류 역사 태반을 지배한 관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우리 주변에도 버젓한 증거가 있다. ‘워라밸(work life balance)’이라는 신조어다. 이는 이미 일과 삶을 제로섬 관계로 견준다. 이상하다. 일과 쉼이 제로섬 관계인 건 사실이지만, 일과 삶은 아니다. 즉 워라밸에는 이미 일을 내 삶의 대적자로 보는 관점이 깃들어 있다.

할 수밖에 없고, 일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을 부정적으로 보면 어찌 될까. 끌려가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되다 보니 신경 쓰는 것은 열심히 일하는 게 아닌, 더 열심히 일하는 척이다. 노예들의 노동에 가깝다. 또한 이들의 삶은 상대적으로 너무 짧다. 그의 삶은 고작 통상적 노동이 멈춰 있는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밤까지 국한되기 때문에 결국 지루함에 갇혀버린 상태인 ‘보어 아웃(Bore-out)’에 빠진다.

개인적으로 많은 이들이 호소하는 ‘번 아웃(Burn-out)’은 사실 보어 아웃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과거에 비해 확연히 노동시간은 줄고 여가는 늘었지만 노동을 통해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다는 희망은 점점 사라져가고, 반대로 SNS를 통해 누군가의 편집된 여가, 혹은 단기간에 불로소득으로 성공한 삶만을 너무 자주 마주하다 보니 자신의 노동이 불합리해 보이고 무가치해 보여 보어 아웃에 빠진 건 아닐까.

또 다른 잘못된 관점은 소위 일을 통해 구원을 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즉 일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얻으려는 관점이다. 워커홀릭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생산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불안하고 가치 없는 존재로 느껴지기에 좀처럼 쉬지 못한다. 그들에게 일은 마치 밥 먹는 것과 같은데 어찌 쉴까. 그러다 보니 번 아웃이 찾아온다.

그러나 이는 소수의 워커홀릭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모든 현대인이 자유롭지 않다. 왜 다들 그토록 높은 보수와 지위를 보장하는 직업과 자리에 연연해할까. 자기에게 맞는 게 아니라 사회에서 있어 보이는 직업을 다들 추종하려 하고, 그걸 얻으면 성공이고 얻지 못하면 자신을 실패자로 판단하며 살아가는 이들. 그렇다면 자기도 모르게 이미 일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것이며 일을 구원의 통로, 즉 우상으로 보고 있는 중이라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이 두 관점 어딘가에 머물며 보어 아웃과 번 아웃 사이를 왕래한다. 그런데 성경은 전혀 다른 관점을 주장한다. 바로 ‘소명’의 관점이다. 소명은 우주 만물을 넘어 한 개인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지금도 이미 여기에서 일하신다는 확고부동한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쉬지 않고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깨어진 세상을 회복하시려 일하시는데, 그 일을 우리와 함께하길 원하시고 우리의 삶을 주관하신다는 믿음이 이후의 소명을 만들어간다. 때문에 특정한 직업, 직장, 직무를 통해 소명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 부르심을 따라 하나님 앞에 서려는 자의 일이 소명이 되어간다고 볼 수 있다. 부디 당신이 자신의 소명을 되찾고 보어 아웃과 번 아웃 사이를 탈출해 일터에서의 시간이 가치 있게 부활하길 바란다.

손성찬 목사(이음숲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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