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수 칼럼] 5.18 → 노태우 비자금 → 1조3808억원
자손 대대로 호의호식 하지 못하도록 불법자금 환수해야
역사와 정의 바로 세우도록 대법원이 올바른 판단하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최근 차녀 결혼식 혼주석에 나란히 앉았다. 둘 사이에는 결혼식 내내 대화가 없었다고 한다. 이혼한데다 재산 분할 문제로 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서울고법은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의 위자료 1억원, 재산분할 665억원과 큰 차이가 있다. 이에 불복한 최 회장이 상고를 제기해 대법원 판단이 남아 있다.
핵심 쟁점은 ‘노태우 비자금’이다. 노 관장은 재판 과정에서 아버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최종현 선대회장 시절 SK(당시 선경그룹)로 유입돼 태평양증권 인수와 SK 주식 매입 등에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어머니 김옥숙 여사의 ‘선경 300억원’ 메모,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이 찍힌 사진 등을 증거로 제출했고 이는 고법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이 돈이 지금의 SK로 성장하는 종잣돈이 된데다 노 전 대통령 덕분에 SK가 성장했기 때문에 SK 주식 등 최 회장 재산이 분할 대상이라는 얘기다.
반면, 최 회장은 그룹 내 기록을 아무리 뒤져봐도 300억원이 들어온 흔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300억원은 SK가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돈’이 아니라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노후자금으로 ‘줄 돈’이라는 것이다.
비자금은 불법자금이다. 범죄수익을 개인 재산처럼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런데 300억원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이 돈이 불려져 노 관장에게 상속까지 되는 것을 전제로 고법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누구인가.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두 사람 중심의 신군부는 5·18민주화운동을 진압했다. 5·18을 주제로 한 소설 ‘소년이 온다’를 집필한 한강은 세 문장을 쓰고 한 시간을 울었다고 했다. 사실 이 책은 도무지 울지 않고는 읽기 어렵다. 주인공인 15세 소년 동호는 진압군에 의해 친구가 죽는 것을 목격한 뒤 전남도청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가 숨진 실제 인물 문재학군이고, 많은 고증과 증언을 거쳐 쓰였다.
“그의 형은 계속해서 말했다. 동생이 운이 좋았다고, 총을 맞고 바로 숨이 끊어졌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고, 이상하게 열기 띤 눈으로 내 동의를 구했다. 동생과 나란히 도청에서 총을 맞았으며 동생과 나란히 묻힌 고등학생 하나는 바로 안 죽고 살아 있다가 확인사살을 당했던 모양이라고, 이장하면서 보니 이마 중앙에 구멍이 뚫리고 두개골 뒤쪽은 텅 비어 있었다고 말했다. 머리가 하얗게 센 그 학생의 아버지가 입을 막고 소리 없이 울었다고 말했다.”
5·18은 특정 지역이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가슴 아픈 우리 역사다. 최 회장과 노 관장 이혼의 귀책사유는 최 회장에게 있고 재판부 지적대로 ‘혼인의 순결과 일부일처제를 무시한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일각에서는 노 관장이 이혼을 안 해주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딴살림을 차렸다는 주장이 있지만 결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군사 쿠데타와 5·18의 책임이 있는 노 전 대통령 가족과 후손들이 1조3808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받아 대대로 호의호식하며 살아도 되는걸까.
이 돈에는 5·18 희생자들의 피가 묻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사 쿠데타→5·18→대통령 취임→정경유착→비자금 조성→자녀 상속 등 일련의 흐름이 어두운 역사성을 갖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인 1995년 박계동 의원이 5000억원 비자금 내역을 공개하자 할 수 없이 이를 인정했다. 실제 비자금 규모가 더 많고 숨겨놓은 돈이 적지 않을 것이란 얘기도 있다. 5·18기념재단은 최근 대검찰청에 김옥숙 여사, 아들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장, 노 관장을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최 회장은 이혼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동시에 군사 쿠데타와 불법 비자금에 뿌리를 두고 있는 1조3808억원이 노 전 대통령 일가와 후손들 손에 쥐어지는 것도 정의와 거리가 있다. 이는 친일파의 재산이 친일파 후손들에게 돌아가는 것과 같다. 친일파 재산 환수가 현행법상 어렵더라도 계속 시도하는 것처럼 노태우 비자금을 환수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2심 판단 논리에 대해 대법원이 심사숙고 하기 바란다.
신종수 편집인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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