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의 행복한 북카페] 타자의 고통을 상상하는 문학

2024. 10. 22.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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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소설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상상은 타인의 고통에 관한 것이다. 화성을 배경으로 삼거나 지구 절반이 사라지는 세계를 떠올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러나 다른 이의 고통에 관한 상상은 내가 경험한 고통의 기억을 통해서만 유추하고 확장된다. ‘이만큼 아팠을까?’ 하는 마음으로 넘기는 책들. 위대한 문학은 항상 타자의 고통을 상상한다.

내가 처음으로 읽은 노벨문학상 작품은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었다. 첫 장에 부엔디아 가문의 복잡한 족보가 펼쳐졌고, ‘많은 세월이 지난 뒤, 총살형 집행 대원들 앞에 선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아버지에 이끌려 얼음 구경을 갔던 먼 옛날 오후를 떠올려야 했다’라는 문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책은 내게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첫인상이기도 하다.

김지윤 기자

그 후 좋아하던 작가가 노벨상을 타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앨리스 먼로와 가즈오 이시구로가 그렇다. 오랜 팬이었기 때문에 일개 독자로서 그 영광에 기여하기라도 한 듯 엄청나게 기쁘고 뿌듯했다.

좋아하던 작가가 노벨상을 타는 일이 또 생겼다. 2주가 지났어도 실감 나지 않을 만큼 놀랍다. 문학판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듯 노벨상도 좋지만, 그 작가가 한강이어서 좋다. 한국문학을 처음 접할 독자들이 ‘죽음이 그 소년의 눈을 지나갔다’나 ‘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형제 같아’라는 문장을 읽을 것을 상상하니 좋다.

대학교 때 나는 허수경의 시집과 한강의 소설에 빠진 축축한 문학청년이었다. 읽을 때 사무치고 표지만 봐도 아린, 그런 문학에 미쳐있었다. 통증에 극도로 민감한 상상력이 젊음을 만날 때 불에 덴 상처처럼 남는 책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한강의 단편 ‘여수의 사랑’이다. 자흔이라는 이름을 ‘난자된 흔적’이라고 풀이하는 주인공의 지독함에 숨이 막혔다. 한강 소설을 읽으며 숨죽이다 보면 어느새 넓고 탁 트인, 거대하고 보편적인 비애의 세계가 나온다. 우리는 그 세계를 모국어로 읽을 수 있다.

김성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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