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김정은이 숨긴 러 파병, 軍이 확성기로 北주민에 알렸다

이유정, 정영교, 왕준열 2024. 10. 2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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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지역에서 대규모 병력 투입돼 작업 중인 북한군. 연합뉴스

북한 당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지상군 파병 사실을 정작 주민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있는 가운데 국군심리전단이 이를 대북 확성기 방송으로 북측에 알렸다. 이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비롯한 현대전의 핵심 수단으로 떠오른 인지전 혹은 심리전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북한 주민들은 물론 군사분계선(MDL) 일대의 북한 장병들에게 심리적 동요를 불러 일으키는 효과를 노린다는 점에서다.

21일 군 당국에 따르면 대북 심리 방송인 ‘자유의 소리’는 이날 오전 뉴스의 두 번째 소식으로 “지난 17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북한군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다며 북한군의 파병설을 공식화했다”는 현지 매체 보도를 전달했다.

자유의 소리는 “이달 초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전선에서 북한군 여섯 명이 공습으로 숨졌으며 러시아군이 북한 병력으로 구성된 3000명 규모의 특별 대대를 편성 중”이란 소식을 우크라이나 매체 발로 알렸다. 또 “현지 매체들은 18명의 집단 탈영병까지 발생했다는 구체적인 내용을 잇따라 보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유의 소리는 이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북쪽 우수리스크 지역의 한 군 기지에 다수의 북한인이 도착했다는 영국 BBC 방송의 현지 취재도 전달했다.

이어 한·미 정보 당국도 이와 관련해 “지난 6월 김정은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평양 정상회담에서 상호 군사 원조 조항을 복원하는 조약을 맺은 이후 러시아에 대한 북한의 군사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상황”을 확인했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러시아와 북한 간에 빈번하게 많은 인원과 물자가 열차로 오간 것”을 포착했다고 덧붙였다. 양국 정보 당국이 “북한에서 러시아로 이동한 북한군 인원에 대규모 전투병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이를 확인 중"이라면서다.

이날 방송은 북·러 간 물밑 군사 거래를 북한 주민과 최전방의 장병들에게 직접 노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북·러는 북한의 러시아에 대한 포탄 지원과 대규모 지상군 파병 사실을 공식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노동신문 등 대내 매체를 통해 이를 주민들에게 제대로 알린 적이 없다. 올해 6월 북·러 평양 정상회담 결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했다는 사실과 두 지도자 간 친분이 두터워졌다는 점만 대대적으로 부각했을 뿐이다. 이에 군이 직접적 대북 정보 유입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국가정보원이 포착한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북한군의 모습. 국정원은 18일 북한군 추정 인물 사진을 자체 AI 안면인식 기술에 적용한 결과, 지난해 8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술미사일 생산공장을 방문했을 당시 김정은을 수행한 북한군 미사일 기술자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사진 국정원


특히 대북 방송의 '1차 청중'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파병 대상이 될 수 있는 북한 장병들이라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 대부분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최전방 일대에서 방벽 건설 등 ‘요새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이 실제 전장에 자신들이 투입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거나 지속적으로 북한군의 사망·집단 탈영 소식 등을 접하면 심리적으로 공포감을 느끼거나 크게 흔들릴 수 있다.

다만 자유의 소리는 지난 18일 국가정보원의 공식 발표를 인용하진 않았다. 사실상 기밀에 해당하는 내용을 북한 주민에까지 상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수 있다. 동시에 한국의 국정원이 상황에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오히려 반감이나 의심을 살 수 있는 측면도 있다.

국정원은 앞서 "북한이 지난 8일부터 러시아 파병을 위한 특수부대 병력 이동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러시아 태평양함대 소속 상륙함 4척 및 호위함 3척이 해당 기간 북한의 청진·함흥·무수단 인근 지역에서 특수부대원 1500여명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1차 이송 완료했다"며 위성 사진 등 구체적인 '물증'까지 공개했다.

국정원은 북한군이 '폭풍군단'으로 불리는 최정예 특수작전부대인 11군단 소속 4개 여단(1만여명 규모) 병력을 파병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평남 덕천시에 주둔 중인 폭풍군단은 예하에 총 10개 여단(저격여단 3개, 경보병여단 4개, 항공육전여단 3개로 구성)을 두고 있으며 수도권 및 후방 침투 임무 등을 수행하는 특수전 부대다.

정영교·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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