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문화] “역사는 인류 경험의 광산… 금광도 은광도 될 수 있지요”

맹경환 2024. 10. 21.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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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 역사 전문 출판 외길 ‘근 30년’… 푸른역사 박혜숙 대표를 만나다
박혜숙 푸른역사 대표가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푸른역사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웅 기자


요즘 경복궁 왼편에 자리 잡은 서울 종로구 서촌이 핫하다. 청와대 개방 이후 관광객과 시민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이 사는 곳이라 더욱 유명해졌다. 역사전문 출판사인 푸른역사는 서촌 골목길 한옥에 자리 잡고 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2주 전인 지난달 26일 만난 박혜숙(63) 대표는 “근처에 사는 한강 작가가 쓰레기봉투를 들고 다니는 것을 보기도 했다”면서 “노벨문학상을 언젠가 타지 않을까 싶다”고 했었다. 이렇게 빨리 받을지는 그때는 몰랐다. 이제 서촌 하면 한강을 모두 떠올리겠지만 박 대표에게는 서촌이 푸른역사고 푸른역사가 서촌이다. 푸른역사는 박 대표를 포함한 편집자 3명, 디자이너 2명, 마케팅 담당자 1명 등 6명으로 구성된 ‘미니 출판사’다. 하지만 출판계에서는 무시 못 할 파워를 자랑한다.

역사라는 한 우물만 파왔고, 박 대표 말처럼 “책 만드는 일은 성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1996년 푸른역사를 세우고 30년이 안 됐지만 벌써 500종 이상의 책을 만들었다. 지금도 매년 20~30권의 책을 출판하고 있다. 역사와 책은 그의 인생이다. 그 뿌리는 고향 제주도로 거슬러 내려간다.

제주도는 언제나 맨 위

제주도에 산다는 걸 자각한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바닷가 학교에서 매일 수평선을 바라봤다. 그때는 눈앞에 보이는 저 바다를 건너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사방이 막힌 이곳을 탈출하지 않으면 숨 막힐 것 같았다”고 했다. 탈출구는 서울로 대학 진학이었다. 아버지도 응원했다. 그는 79년 숙명여대 사학과에 진학하면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사실 사학과는 중학교 때 이미 정했다. 어려서 어머니가 늘 챙겨주시던 ‘새소년’류 어린이 잡지를 끼고 살았다. 하굣길 만화방에 들르는 것도 일상이었다. 중학교 때는 수업은 뒷전이고 늘 한국과 전 세계의 ‘인물 사전’을 탐독했다. “대단한 이야기꾼이었다”는 당시 국사 선생님의 영향을 결정적으로 받았다. 박 대표는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지금도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역사를 공부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사람에 대해 쉽게 판단 안 하고 길고 오래 보는 편”이라고 말했다.

대학에 와서야 제주 4·3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할아버지가 그때 돌아가셨고, 다른 가족들도 엄청난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우리 형제 세대가 겪은 현대사만으로도 충분히 한국 현대사를 구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지금은 제주인들이 겪은 역사적 경험의 세계사적인 맥락을 늘 염두에 두게 된다”고 말했다. 그에게 지금 제주는 “세상의 맨 위가”가 되어 있다. 박 대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고’라는 이름의 작은 전시관을 제주도에 짓고 있다. 푸른 역사에서 출간된 모든 책을 한 권씩 전시하는 ‘푸른역사의 역사’를 담은 곳이다. 그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인생이 담긴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책을 만드는 일은 성스럽다

유신 말기와 군사 정권 아래서 대학 시절을 보냈다. 제대로 전공 공부할 상황이 아니었다. 아쉬움에 대학원에 진학했다. 학적은 숙대에 뒀지만 평상시 흠모하던, 당시 국민대에 몸담았던 역사학자 조동걸 교수의 지도로 석사를 마쳤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제주간호전문대학(현 한라대학)에 교양 한국사 강사를 잠깐 했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맞지 않았다. 1년도 안 돼 다시 서울로 올라와 2년여 백수로 지내며 고민했다. 집에서 가까운 서점을 오가며 책만 읽었다.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는 “책을 읽는 일보다 책을 만드는 일은 더 성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평생 종사할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로써는 늦은 나이인 31세에 갖게 된 첫 직장은 종합출판사였다. 출판부터 마케팅까지 전반적으로 배워보자는 마음에 선택했다. 편집에는 애송이였지만 93년 대전엑스포 공식보고서 편찬사업을 총괄하는 기회도 얻었다. 2년 가까이 특근과 야근을 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는 “어떤 일도 가능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출판 시장 논리를 좇을 수밖에 없는 회사라 적성에는 맞지 않았다. 6년을 근무하며 관리 이사로 책임자가 되었을 96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갈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언젠가 나도 여기에 전시할 책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귀국하자마자 사표를 냈다. 지인의 소개로 푸른숲과 연결됐고, 공동으로 운영하는 자회사 푸른역사를 출범하게 된다. “망해도 좋으니 내가 좋아하는 주제로 맘껏 책을 내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했다.

푸른역사의 박혜숙

'미쳐야 미친다'를 쓴 한문학자 정민이 푸른역사를 전각한 것. 푸른역사 제공

푸른숲과 인연을 맺은 지 3년이 지나 24권의 책을 만들고 2000년 독립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자리를 잡은 뒤 쌓아놨던 기획들이 책으로 쏟아져 나왔다. 푸른역사를 시작하면서 내건 깃발은 ‘역사서의 대중화’였다. 상아탑에 갇힌 역사학자의 연구 성과물을 일반 대중과 공유하자는 것이었다. 늘 책을 만들 때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글쓰기와 메시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미쳐야 미친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 등 히트작들은 푸른역사의 이름을 독자들에게 새겨넣었다. 그때가 전성기였지만 위기라고 생각했다. 박 대표는 “출판시장의 논리에 따라갈 수밖에 없어서 기계처럼 책을 만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가라앉자”를 되뇌며 인왕산을 즐겨 찾던 박 대표에게 서촌이 눈에 들어왔다. ‘영원한 안식처’ 서촌에 다시 푸른역사의 간판을 달았다. 서촌 이전 후 2011년에는 독자와 역사가가 만나는 공간 ‘푸른역사 아카데미’를 만들어 10여년 운영하고 최근에는 출판에만 전념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서촌에 자리 잡은 푸른역사. 푸른역사 제공


박 대표는 “베스트셀러 한두 권 내고 망해버린 출판사도 많았다. 시장 논리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면서 “학술적 기반을 늘려보자고 생각해서 학술서를 대폭 늘렸다”고 말했다. 대중서 작업을 위해서는 생산기지라고 할 수 있는 역사학자들의 학문적 성과가 토대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게 ‘금요일엔 역사책’ 시리즈다. 한국역사연구회와 함께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로 시작해 최근 ‘소현세자는 말이 없다’까지 꾸준히 발간하고 있다.

늘 “박혜숙의 푸른역사가 되면 안 되고 푸른역사의 박혜숙이 돼야 한다”고 말하는 박 대표는 몇 년 전부터 대표 자리에서 물러날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시스템을 만들지 못하고, 제 개인의 책임으로 버텨왔다”고 말했다. 출판시장의 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이 사라져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역사는 광산이다

박 대표가 더더욱 공을 들여 만들고 있다는 '금요일엔 역사책' 시리즈. 푸른역사 제공

박 대표는 대표이기 이전에 편집자다. 일 년 내내 원고를 붙들고 산다. 기획력도 중요하지만, 책의 완성도를 무엇보다 중시한다. 지금도 푸른역사에서 나오는 책들의 교열, 교정은 10번까지 진행된다. 대부분 가제본 상태의 종이책으로 최종 점검을 마친다. 그는 “원고를 받아 읽는 순간에 완성된 책의 모습을 상상하면 항상 설렌다”면서 “그 설렘이 오늘 저를 만든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수많은 책을 만들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책으로 서양사학자 이영석의 ‘나의 공부는 여기서 멈추지만’과 칼럼니스트 김서령의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를 꼽았다. 두 책 모두 유작이다. 박 대표는 “두 분이 돌아가신 다음에 저자 없이 혼자서 작업을 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거의 평생을 역사에 묻혀 살아온 그에게 역사란 무엇일까. 그는 요즘 그런 질문을 자주 듣는다면서 항상 이렇게 답한다고 한다. “역사는 인류의 총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광산과 다름없다. 어떻게 캐느냐에 따라 그것이 금광도 될 수 있고 은광도 될 수 있다.” 역사를 공부하고 역사를 책으로 만들면서 역사로부터 지혜도 얻었다. 그는 “모든 일을 바라볼 때 역사적 맥락이 있음을 전제로 사고하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시간적 개념을 달리 생각한다”면서 “가령 한 사람의 삶을 평가해도 온전히 그의 일부만 보는 게 아니라 총체적인 것을 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일선에서 물러나는 시한을 5년 정도로 보고 있다. 물러난 뒤에도 편집자로서 책 만드는 일은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제주도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고’ 근처일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원고 더미 앞에 앉아 있지 않을까요. 금요일엔 역사책 시리즈가 될 것 같아요.”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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