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영부인의 종횡무진

전웅빈 2024. 10. 21. 00:39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근 소집한 백악관 국무회의에 퍼스트레이디 질 여사가 등장했다.

게스트로 온 질 여사는 여성건강 연구를 위한 백악관 이니셔티브를 소개하고, 자금 지원 필요성을 역설했다.

핵심 참모들이 바이든 대통령 재선 포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끙끙 앓았던 건 질 여사에 주눅 들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돌았다.

질 여사가 단순히 대통령의 배우자로서가 아니라 리더십을 발휘하는 중요 인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웅빈 정치부 차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근 소집한 백악관 국무회의에 퍼스트레이디 질 여사가 등장했다. 게스트로 온 질 여사는 여성건강 연구를 위한 백악관 이니셔티브를 소개하고, 자금 지원 필요성을 역설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등 국무위원들이 배석해 질 여사 연설을 경청하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질 여사가 회의를 주재한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나왔다. 이 이벤트에는 여성도 안정적으로 국정운영을 주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원하려는 목적이 숨어 있었다. 물론 보수 일각에서 비판도 나왔지만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국정농단’을 언급하는 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질 여사는 오래전부터 퍼스트레이디로서 종횡무진 활약해 왔다. 지난여름 파리올림픽 개막식에서 미국 대표단을 이끌었고, 지난 1일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신임 멕시코 대통령 취임식 때 미국 사절단 수장을 맡았다. 백악관 내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 역시 잘 알려져 있다. 핵심 참모들이 바이든 대통령 재선 포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끙끙 앓았던 건 질 여사에 주눅 들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돌았다. 질 여사가 단순히 대통령의 배우자로서가 아니라 리더십을 발휘하는 중요 인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질 여사의 거침없는 활약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로부터 ‘대외활동 전면 중단’ 요구를 받은 김건희 여사를 오버랩한다. ‘미국은 되고, 한국은 안 되는’ 차이가 제도 때문은 아니다. 미국 역시 영부인의 헌법적 지위는 규정돼 있지 않다. 연방법 제3편 105조 ‘대통령을 위한 지원 및 서비스’ 조항에 “배우자가 대통령 의무와 책임을 수행할 때 대통령에게 승인된 지원을 배우자에게도 제공할 수 있다”는 언급이 있는 정도다. 이 규정은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대통령의 자금 집행 투명성을 높이려는 목적이 컸다. 대통령이 돈을 쓸 때 근거를 명확히 하려는 것이었고, 이때 영부인도 지원받을 수 있음을 공식화한 것뿐이다.

미국에선 영부인들이 공공선을 위한 품위 있는 활동으로 자신의 역할과 지위의 정당성을 부여받아 왔다고 본다. 조지 W 부시 박물관 아카이브에 올라온 ‘퍼스트레이디의 역할’ 자료에 이에 대한 역사가 담겨 있다. 자료는 “영부인은 전통적으로 백악관 안주인 역할을 했지만, 이는 시대에 따라 진화하며 공식화됐다”고 설명한다. 건국 초기에는 백악관 살림을 도맡는 정도였는데 이후 영부인 스스로가 역할과 지위를 확장했고, 국민의 공감을 받아 관습법적 기준으로 확립됐다는 의미다. 윌리엄 태프트 전 대통령의 부인 헬렌 여사가 열악한 공장 노동 환경에 노출된 여성과 어린이 현실을 직접 조사하고, 건강안전법 통과를 주도한 게 대표적이다. 여성도 최저임금을 적용받도록 한 엘리너 루스벨트, 고속도로 미화법안을 통과시킨 레이디 버드 존슨, 학교 도서관 확충 사업을 편 로라 부시, 아동 비만 퇴치 운동에 나선 미셸 오바마 등의 활약이 영부인 역할의 지평을 넓혔다.

김 여사를 둘러싼 논란의 본질은 여기서 출발한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되고, 품위와 위신을 깎아내리는 사적 대화가 공개된 순간 한국의 퍼스트레이디는 공적 지위와 역할 경계를 스스로 축소했다. 지난달 뉴욕 맨해튼에선 전 세계 14명의 영부인이 모여 효과적인 업무 수행 방식을 논의하고 영부인 간의 협력을 논의하는 ‘글로벌 퍼스트레이디 아카데미’가 열렸다. 반면 한국 국회에선 영부인의 법적 지위를 규정해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나온다.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왔는지 되돌아볼 지점이다.

전웅빈 정치부 차장 imu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