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지배권 경쟁’에 대한 당국 개입 신중해야

2024. 10. 21.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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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

고려아연 vs 영풍·MBK 등
비우호적 M&A의 지분 경쟁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 농후

그러나 기업가치 향상과
경영 효율성 제고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어

자본시장 발전 위해서는
더 많은 지배권 경쟁사례 필요

고려아연을 둘러싼 현 경영진과 영풍·MBK 연합 간 지배권 경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영풍 측은 주당 83만원의 공개매수로 지분 5.34%를 추가 확보해 의결권 있는 지분의 과반수에 육박하는 지분을 확보했으며 경영진 측은 주당 89만원으로 자사주 공개매수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영풍 측은 경영권을 지키고자 회사의 이익잉여금으로 자사주를 공개매수하는 것이 위법이라며 법원에 가처분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이런 와중에 고려아연 경영진은 MBK가 공개매수 성공을 위해 장내매도로 시세를 낮춘 시세조종 혐의가 있다며 금융 당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공개매수와 장내매수가 동원된 지분 경쟁은 지난해 2월 하이브와 카카오 간 SM엔터테인먼트 지배권 경쟁에서도 벌어진 적이 있다. 하이브가 SM엔터테인먼트 인수를 위해 12만원에 공개매수를 시도했는데 카카오 측의 장내매수로 인해 SM엔터테인먼트 주가가 높아지는 바람에 공개매수가 실패로 돌아갔다. 검찰은 카카오 측이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경쟁 상대인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엔터테인먼트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가보다 높게 고정하려 시세를 조종했다고 판단,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을 비롯한 카카오 경영진을 구속 기소했다. 최근 열린 형사재판에서 카카오 측은 시장에서의 장내매수는 일반적으로 공개매수 대항을 위한 합법적 수단이라고 인식했다며 무죄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우호적인 인수·합병(M&A)에서는 지분 경쟁이 불가피하고 그 과정에서 공개매수나 장내매수가 이뤄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해당 기업의 주가에 영향을 준다. 어떤 재화이든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변화하므로 매도가 많으면 주가가 내려가고, 매수가 많으면 주가가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의도를 갖고 공개매수나 현실매매를 한다고 해서 이를 곧바로 시세조종으로 볼 경우 지분 경쟁 자체를 봉쇄하는 그런 부작용이 발생한다.

우리 법은 통정매매나 허수주문, 허위공시 등을 수반하지 않는 현실거래에 의한 시세조종도 처벌하고 있는데 판례상 현실거래에 의한 시세조종의 객관적 범죄 요건인 시세변동매매에 대해서는 시세가 실제로 변동하지 않더라도 그 가능성만 있어도 된다 하고, 주관적 범죄 요건인 매매유인 목적에 대해서는 목적이 아닌 미필적 고의만 있어도 되고, 부차적이어도 된다고 해 일견 그 인정 범위가 매우 넓다.

이러한 판례의 태도를 근거로 비우호적 M&A에 있어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지분 경쟁에 대해 사정 당국이 과도하게 개입할 경우 시장 거래자는 언제든 현실거래 시세조종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릅써야 하므로 시장에서의 지배권 경쟁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영진의 동의 없이 추진되는 지배권 인수 시도를 적대적 M&A라거나 경영권 분쟁이라며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 왔다.

하지만 비우호적 M&A는 시너지를 통한 기업 가치 향상과 경영 효율성 제고를 낳을 수 있고 인수 가능성 자체가 현 경영진에 대한 견제로 작용할 수 있어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종래 경영진의 동의를 받지 못한 M&A는 경영권을 강탈하는 적대적 행위로 간주돼 비난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이러한 인식이 점차 변화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는 것이 일본 경제산업성이 2023년 8월 발표한 ‘기업 매수에 관한 행동지침’이다.

이 지침은 기업의 체질 강화와 경제의 효율성, 생산성, 성장성 향상을 위해 M&A 활성화가 중요하다는 전제하에 기업 인수에 있어 존중받아야 할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기업 가치와 주주 공동 이익 확보를 위해 복수의 매수 제안 중 높은 주가를 제안한 기업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 회사의 경영 지배권을 누구에게 줄지는 소액주주를 포함한 주주의 합리적인 의사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며 셋째, 주주의 판단을 위한 유익한 정보가 적절하고 적극적으로 공개돼야 하며, 기업 매수 과정의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것이다.

비우호적 M&A를 적대시하지 않는 전 세계적인 추세에 비춰볼 때 지배권 경쟁에 대한 사정 당국의 개입은 경쟁 자체를 저해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 자본시장의 발전과 이를 통한 경제 활성화를 위해 아직 우리에게는 더 많은 지배권 경쟁 사례가 필요하다.

김주영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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