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시시각각] 국감장에 선 아이돌

양성희 2024. 10. 21.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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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역시 뉴진스는 뉴스 메이커였다. 이들의 거취 등을 놓고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가 지루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번 국정감사 기간 중 두 번이나 주인공이 됐다. 지난 7일 문체부 국감에서는 K팝 안무에도 저작권 보호가 필요하다는 지적과 함께 뉴진스의 사례가 언급됐다. 뉴진스 안무 일부를 계열사 후배 걸그룹인 아일릿이 따라했다는 의혹이 근거자료로 제시됐다. 관련 질의에 문체부 국장은 “안무 저작권에 대한 종합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답했다. 15일 환노위에는 뉴진스 멤버 하니가 참고인으로 나와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눈물로 호소했다.

「 ‘직장 내 괴롭힘’ 참고인 아이돌 화제
정작 노동계 주요 현안은 외면
아이돌 화제성 노린 정치 행태 빈축

복도에서 만난 아일릿 매니저가 아일릿에게 “(하니를) 무시해”라고 말했고, 회사의 높은 분이 한 번도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으며, 회사가 자신들을 싫어한다는 게 발언의 요지였다. 외국인인 하니는 일부 한국어 소통에 문제를 보였지만 “선후배들이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인간”이라고 당당히 발언했다. 평소의 고함과 삿대질 대신 의원들은 여야 불문하고 “뉴진스와 하니의 용기를 응원한다”고 입을 모았다.

인기 정상의 K팝 아이돌이 국감에 출석한 최초의 장면이니 국내외의 관심이 뜨거웠다. 평소 사회적 이슈에 대해 말을 아끼는 게 K팝 아이돌이라, 미국 빌보드는 “이례적으로 K팝 업계에서 감정적으로 솔직한 순간이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대중의 반응은 엇갈렸다. 팬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아이돌이 현행법상 근로자에 한하는 ‘직장 내 집단 따돌림’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참고인 채택의 적절성부터, 국회의원들이 아이돌의 화제성이라는 잿밥만 노렸다는 비판까지 쏟아졌다. 뉴진스 팬덤 버니즈의 강력한 요청을 받아들여 하니를 참고인으로 부른 안호영(더불어민주당) 환노위원장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하니 국감을 생중계했다. 화면 하단에 하니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띄웠다. 민주당 박홍배 의원은 뉴진스 토끼 캐릭터에 민주당의 상징색인 파란색 점퍼를 입힌 스티커를 노트북에 큼지막이 붙였다. ‘팬 인증샷’ 같았다. 과방위원장인 최민희(민주당) 의원은 하니의 사진을 찍으며 동분서주하다 빈축을 샀다. 모두 국감의 무게에 맞지 않는 행동인 데다 팬심인지, 팬덤을 향한 정치적 구애인지 모호했다. 무엇보다 지난 6월 화재 참사로 23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아리셀 대표는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은 것과 대비됐다(박순관 아리셀 대표는 ‘하니 국감’ 이틀 후인 17일에야 증인으로 채택됐다).
물론 이날 국감의 포인트는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예술인·프리랜서 등 특수형태 근로종사자도 일터에서 괴롭힘이 있다면 보호받아야 한다는 여론의 환기였다. 그러나 이에 제대로 주목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특히 이번 사태는 대주주 간 경영권 분쟁이 구성원 간 대립으로 이어진 와중에 생긴 일이라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통상적인 직장 내 괴롭힘과는 차이가 있다. 방시혁과 민희진 두 리더의 갈등이 없었다면 매니저가 뉴진스를 따돌리는 갑질을 할 수 있을까(매니저는 “무시해” 발언을 부인하고 있다).

데뷔 2년 만에 멤버당 52억원 정산을 받는 수퍼스타 뉴진스조차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니 힘없는 프리랜서들은 오죽할까. 하니가 나서 주니 앞으로 사회가 더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이번 국감의 긍정적 효과라면 이런 것이겠다. 반면에 “무시해”란 말과 사장이 인사를 안 받아준다고 국감장에 선다니 평범한 직장인들의 현실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얘기라 “국감이 장난이냐”는 날 선 반응도 많다.

지난달 국회 토론회에서는 “아이돌 연습생의 무월경, 불면증은 기본이고 28세 때 건강검진을 하니 80세 뼈 나이가 나왔다”는 한 전직 걸그룹 멤버의 증언이 나왔다. 몇 달 전에는 미성년자가 포함된 현직 남자 아이돌 멤버들을 둔기로 폭행한 기획사 대표가 불구속 송치되는 일도 벌어졌다. 진짜 아이돌의 인권과 근로조건에 관심이 있다면, 의원님들은 이런 문제부터 팔을 걷어붙여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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