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질문'과 '도전 정신'... '마왕' 신해철이 여전히 그립다

2024. 10. 2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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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으로 불리며 음악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가수 신해철(1968~2014).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고(故) 신해철이 우리 곁을 떠난 2014년 10월 27일도 오늘처럼 찬 바람이 불었다. K팝의 절정, 숏폼과 AI(인공지능) 시대에 당도했지만 아직도 그의 노래는 가을 바람처럼 시리도록 신선하다. 신해철의 노래는 왜 흘러가거나 나이 들지 않는 것인가.
‘육교 위의 네모난 상자 속’('날아라 병아리',1994)이었다. 내가 신해철의 음악을 처음 만난 곳은. 사각형 교실에 웅크려 내 꿈의 무게와 성적표의 숫자를 저울질하던 시절이었다.

무한궤도 ‘그대에게’의 숨 가쁘게 내달리는 도입부와 매력적인 멜로디, 드라마틱한 전개는 주류 가요에서도 찾기 힘든 ‘신선한 친숙함’이었다. 조용필을 비롯한 1988년 대학가요제 심사위원들과 시청자 모두를 환희로 녹다운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곡의 작사·작곡· 편곡·노래를 맡은 리더가 바로 신해철이었다.

가수 신해철의 초창기 시절 모습. 사진 중앙포토


신해철을 논하려면 적어도 100곡이 필요하다. 솔로 음반은 물론이고 그가 이끈 그룹 무한궤도·넥스트·비트겐슈타인의 앨범들, 윤상과 함께 한 ‘노땐스’라든가 사운드트랙 앨범 ‘세기말’ ‘정글스토리’도 들여다봐야 하며, 제작에 참여한 ‘전람회’·‘에메랄드 캐슬’에도 신해철이 묻어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신승훈, 015B, 윤상 등 신세대 최고 기수들을 총지휘해 만든 ‘내일은 늦으리’ 앨범과 타이틀곡 ‘더 늦기 전에’(신해철 작사·작곡)까지, 그의 디스코그래피와 장르는 방대하다.

이 방대함을 꿰는 신해철의 인장은 ‘질문’이다. ‘아무런 말 없이 어디로 가는가/함께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넥스트 ‘도시인’,1992), ‘끝없이 줄지어 걷는 무표정한 인간들 속에/나도 일부일 수밖에 없는가?’(넥스트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껍질의 파괴’,1994) 등. 밤의 정경을 분위기 있게 묘사한 ‘재즈 카페’(1991)마저 서릿발을 닮은 물음표의 연쇄다. ‘어느 틈에 우리를 둘러싼/우리에게서 오지 않은 것들/우리는 어떤 의미를/입고 먹고 마시는가?’

고도 성장을 일구는 가운데 우리 사회가 간과한 모순, 서구식 라이프스타일과 한국인의 정체성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은 신해철 평생의 화두였다. ‘상투 틀던 머리 위에 무스를/머리에서 발끝까지 상표를/변하는 건 세상인가 사람인가?’(넥스트 ‘Komerican Blues’,1995)와 같은 의문은 전자음악 프로젝트 ‘모노크롬’(1999)에서 결국 육화했다. 테크노, 트립합 장르에 국악을 병치함으로써 상투 튼 머리에 무스를 바르듯 음악적 실험을 감행한 것이다. 테크노·펑크 록·매드체스터·프로그레시브 메탈·재즈 등 다 장르를 거침없이 꿰뚫은 도전 정신은 신해철 음악의 또 다른 인장이다.

보컬 신해철도 극단을 오갔다. 넥스트 2집 ‘The Return of N.EX.T PART I: The Being’(1994)에서 초고음 메탈 보컬로 화했던 신해철은 유작이 된 마지막 앨범 ‘REBOOT MYSELF Part.1’(2014)에선 자신의 목소리를 수백 번 겹쳐 1인 아카펠라 곡 ‘A.D.D.A’를 만들며 체중을 늘려 초저음을 내기도 했다. 위 밴드 수술(훗날 사망 원인이 됐던)로 고통스레 감량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오직 음악을 위해 증량을 감행한 것이다.

가수 신해철의 초창기 시절 모습. 사진 중앙포토


신해철 음악엔 한국 가요계의 고질병인 표절 시비도 따라붙지 않았다. 되레 영국의 전설적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가 그의 곡 ‘Machine Messiah’를 무단 사용했다는 논란이 일었을 뿐이다. 김세황·김동혁·민영치 등 그와 함께 작업했던 이들의 말에 따르면 신해철은 '음악적 돈키호테'다. 하고픈 음악의 청사진이 뚜렷했고, 강철의 의지와 실행력은 주변의 베테랑 음악인들도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넥스트의 명반 ‘Lazenca- A Space Rock Opera’(1997)를 만들 때, 신해철은 최고의 역작을 구상했다. 멤버와 지인들에게 세계 최고의 녹음 스튜디오와 오케스트라를 물은 뒤 제작자를 설득했고, 결국 런던 메트로폴리스 스튜디오에서 현지 연주자들과 관현악 녹음을 진행한 일화는 유명하다.

철학적 의문과 전위적 실험 만이 신해철 음악의 전부는 아니었다. 미학과 온기가 신해철의 성을 아름다운 노래로 휘감았기에 대중은 그의 이름을 어두운 고딕의 성채가 아닌 친절한 기사의 정원처럼 기억한다. 그는 평범한 러브송에도 사회적 메시지를 입혔다.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넥스트,1995)는 눈물 어린 발라드이자, 동성동본의 사랑과 결혼에 무슨 문제가 있냐고 따지는 저항가다. ‘Here, I Stand for You’(넥스트,1997)에서 ‘나’는 사랑하는 ‘너’를 위해 뭐든 하겠다는 닳아빠진 구애 대신 이렇게 다짐한다. ‘세상과 싸워나가며/너의 자릴 마련하겠어.’

안온한 빛의 길을 경계하며, 어둠 속 끝없이 이어지는 물음표를 실타래처럼 가슴 속에 품고 간 소년. ‘타협과 길들여짐에 대한 약속을 통행세로 내고’('세계의 문',1995) 지나온 유년의 끝에서 나는 신해철을 만났고, 지나쳐온 세계의 문이 떠오를 때마다 또 다시 신해철을 만날 것이다.

신해철(왼쪽에서 둘째) 주축으로 1991년 결성된 밴드 넥스트. 사진 중앙포토


요즘처럼 날이 차가워질 때면, 어린 날의 내가 떠오른다. 텅 빈 학교 농구코트에 선 아이의 귀에는 구식 이어폰이 걸쳐 있고, 낮은 미성이 학교 종처럼 울려 퍼진다. ‘눈을 감으면/태양의 저편에서/들려오는 멜로디/내게 속삭이지/이제 그만 일어나/어른이 될 시간이야/너 자신을 시험해 봐/길을 떠나야 해’(넥스트 ‘해에게서 소년에게’,1997)
마왕으로 불렸지만 끊임없이 한계와 싸웠던 철인(鐵人), 고독한 철인(哲人)이었던 한 사람이 10년 전 돌아갔다. 철벽같은 안개의 성, 바로 자신에게로 영원히.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 연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18년간 신문기자로 일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국립국악원 운영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한국힙합어워즈 선정위원을 지냈다.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을 공동 기획·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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