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약품 품절 사태,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AK라디오]

이동혁 2024. 10.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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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의료계에 비상이 걸렸다. 서울시의사회가 지난 14일, 갈수록 심각해지는 필수 의약품 품절 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항암제, 독감 치료제, 해열 진통제 등 국민 건강에 필수적인 의약품들의 공급 부족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서울시의사회의 성명에 따르면, 현재 품절 상태에 있는 약품들 중에는 여러 암 치료에 두루 사용되는 보편적인 항암 주사제인 '플루오로우라실'을 비롯해 독감 치료제 '페라미플루'와 '타미플루', 해열 진통제 '타이레놀', 각종 기침약과 가래약, 일부 항생제, 소화 의약품 등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겨울철을 앞두고 감기와 독감 등 계절성 질병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필수 의약품의 품절은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국가 필수 의약품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창안한 개념으로, 국민 보건을 위해 국내에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할 의약품을 말한다. 한국 정부는 이를 한국 실정에 맞게 원용해 지정하고 유지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450종류의 의약품이 필수 의약품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는 매년 조금씩 변동된다. 필수 의약품은 제품명이 아닌 약품의 종류나 성분명으로 지정된다. 예를 들어, '타이레놀'이라는 특정 제품명이 아니라 '해열 진통을 위한 아세트아미노펜 정제'와 같은 방식으로 지정된다. 이는 특정 회사의 제품이 아닌, 해당 성분이나 효능을 가진 모든 약품을 포괄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중요한 필수 의약품들의 품절 사태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서울시의사회는 그 원인으로 약값 문제를 지목했다. 성명에 따르면, "필수 의약품 약값이 제약회사의 생산원가를 보전할 수 없을 정도로 낮게 책정되어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제약회사들이 생산을 중단하거나 축소하면서 품귀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서울시의사회는 정부의 약가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건강보험에서 최소한 물가 상승률 정도는 매년 약값을 인상시켜줘야 하는데, 오히려 약값을 인하하고 있어 점점 필수 의약품을 생산하는 환경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의료계의 주장만은 아니다. 실제로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유지를 위해 약가 상승을 최대한 억제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특히 오래된 복제약의 경우 매년 약값이 낮아지는 추세다. 이는 환자의 부담을 줄이고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화하기 위한 조치지만,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생산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약값에 이어 최근 건강기능식품·한방약 가격도 상승폭이 커지면서 보건 물가지수가 12년여 만에 최대 폭으로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서울의 한 약국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이러한 상황은 제약회사의 경영 판단에도 영향을 미친다. 환자 입장에서는 필요한 약이 생산되지 않아 큰 문제가 되지만,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면서까지 약을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제약회사의 실적과 주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단순히 약값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렵다. 건강보험 재정과 환자 부담, 제약산업의 발전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약가 인상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퇴장방지의약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필수 의약품 중에서도 특히 중요하면서도 수익성이 낮아 생산 중단 위험이 높은 약품을 지정해 일정 수준의 마진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현재 약 600개 품목이 퇴장방지의약품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들 약품은 제약회사가 임의로 생산을 중단할 수 없고 정부와의 협의를 거쳐야만 철수가 가능하다.

퇴장방지의약품으로 지정된 약품에 대해서는 정부가 일정 정도의 마진을 보장해주며, 의사들이 이러한 약품을 처방할 경우 소액의 '사용 장려금'을 지급하는 등의 방식으로 공급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필수 의약품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품절 사태가 발생하고 있어 추가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원료의약품 수급 문제도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많은 원료의약품이 중국, 인도 등 해외에서 수입되고 있어 국제 정세나 환율 변동에 따라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산 원료의약품 개발 및 생산 확대, 의약품 유통 체계 개선, 약가 정책의 탄력적 운용 등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필수 의약품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정부와 제약업계, 의료계가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이번 품절 사태를 계기로 의약품 공급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단순히 약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를 넘어,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회적 이슈라는 것이다. 따라서 향후 의약품 정책 수립 시 안정적 공급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필수 의약품 품절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필수 의약품이라는 개념을 만든 것도 전 세계적으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적인 협력과 정보 교환을 통해 글로벌 차원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또한, 필수 의약품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서는 제약산업의 발전도 중요한 요소다. 국내 제약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하여 새로운 약품을 개발하고 생산 기술을 향상시키는 것이 장기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의 지원과 민간의 투자가 균형있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더불어 의약품 생산 및 공급 체계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현재 어떤 약품이 얼마나 생산되고 있으며, 어떤 경로로 유통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품절 위험이 있는 약품을 사전에 파악하고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민들의 의약품 사용에 대한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불필요한 약품 사용을 줄이고, 필요한 약품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의약품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국민 건강 증진과 의료비 절감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필수 의약품 품절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의 약가 정책 운용의 묘와 제약업체와의 원활한 협의, 그리고 효율적인 생산-유통-수입 관리 체계 구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꼭 필요한 의약품을 구하지 못해 환자들이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국민 건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필수 의약품, 그 안정적 공급을 위한 사회 각계각층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정부, 제약업계, 의료계, 그리고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국민 건강 보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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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혁 바이오중기벤처부장 d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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