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 종업원이 "국회의원이면 다냐"라고 외치자 벌어진 일 [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이길상 2024. 10. 19.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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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다사다난했던 1986년, 그해의 커피

[이길상 기자]

맛으로 비유하자면 1986년은 모두에게 참으로 매운 한 해였다. 그해에 출시되어 지금까지 인기를 끌고 있는 매운 라면의 효시, 농심 신라면처럼 말이다.

1986년 1월 28일 전 세계인들이 TV로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 73초 후에 눈앞에서 폭발해 승무원 7명이 전원 사망하였다. 자본주의 진영의 리더 미국의 명예가 함께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그런데 불과 3개월이 지난 4월 26일, 이번에는 당시 소련(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 현재의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면서 다량의 방사능이 유출되는 재앙이 벌어졌다. 지금까지도 재앙의 여파가 사그라지지 않은,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고였다. 이 사고는 당시 소련의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로 하여금 개방(글라스노스트)과 개혁(페레스트로이카)의 길로 나아가게 만들었고, 이는 결국 소련의 붕괴와 냉전의 종식을 가져왔다.

국내에선 1985년 2.12 총선에서 거둔 야당의 승리를 바탕으로 1986년에 접어들면서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3월 28일 고려대학교 교수 28명의 시국선언에 이어 전국의 대학교수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국선언에 하나둘 동참하였다. 교육자들도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 교사 운동의 출발점이 된 교육자들의 교육민주화선언이 이해 5월 10일에 이루어졌다. 전국의 교사 546명이 참여하였다.

이런 움직임에 대한 전두환 정권의 강경 진압으로 많은 사건과 비극이 이어졌다. 6월 5일에는 부천경찰서의 한 경찰관이 여대생을 조사하며 성적으로 추행한, 이른바 부천서 성고문사건이 벌어졌다. 아시안게임이 끝난 직후인 10월 28일에는 건국대학교에 모인 2천여 명의 대학생들이 '애국 운동 탄압하는 살인 정권 타도'를 외치며 4일간 점거 농성을 벌였다. 경찰은 헬기까지 동원하여 이들을 강제로 해산시켰다. 무려 1525명이 검거되고 1288명이 구속되는 비극이었다.

경찰력이 대학 캠퍼스에 동원된 사이에 치안은 흔들렸다. 부녀자들의 밤거리를 불안하게 만든, 이른바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처음 발생한 것도 이해 9월 19일, 아시안게임 개막 전날 밤이었다. 문제는 이런 사건과 사고가 전두환 정권이 야심 차게 준비한 86아시안게임이 있던 해, 88서울올림픽을 2년 앞둔 해에 벌어졌다는 것이다.

커피 가격의 인상, 다방의 퇴폐화
 다방(자료사진)
ⓒ 연합뉴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1986년은 달갑지 않은 소식이 넘치던 해였다. 1985년에 있었던 장기 가뭄으로 인해 1986년도 브라질의 커피 생산량이 예년보다 55% 정도 감소할 것이라는 우울한 소식이 전해졌다. 1975년 냉해로 인한 수확 감소에 이은 두 번째 재해였다.

소비 시장의 반응은 빠르게 나타났다. 국제 커피 원두 가격은 브라질산이 1985년 11월 톤당 2800달러에서 1986년 1월 10일 무려 7231달러로 2.6배 급등하였다. 콜롬비아산과 인도네시아산도 비슷한 비율로 상승하였다. 가격 조절을 시도하던 국제커피기구(ICO)의 기능은 마비되었고, 커피 원두는 품귀 현상을 보였다.

커피 원두 가격 상승에 대한 대처는 나라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미국인들은 커피 소비를 줄이는 선택을 하였다. 미국 시민 1인당 커피 소비량이 최고에 이르렀던 1962년에 1일 3.1잔을 마시던 미국인들은 1985년에 1.8잔으로 줄였고, 이런 소비 축소는 1986년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역사상 미국인의 커피 소비량 최하 수준을 기록한 것이 1986년이었다.

일 년에 2만 톤가량의 커피를 수입하여 소비하던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반응들이 나타났다. 가장 먼저 커피 공급업체들은 가격 인상을 선택하였다. 연초부터 커피류의 판매 가격 인상 뉴스가 전해졌다. 동서식품은 1986년 1월 14일 주요 제품의 가격을 9% 인상한 데 이어, 2월 17일에는 인스턴트커피류 가격을 30%, 그리고 10월 28일에는 원두커피 출고 가격을 20% 인상하였다.

당시 볶은 커피를 동서식품은 배전두커피, MJC는 원두커피라고 불렀다. 기업 MJC는 사라지고 이 기업이 사용하던 원두커피라는 이름만 남았다. RTD(Ready to Drink·즉석음용) 음료 등 신제품의 개발과 이에 대한 대대적 광고도 대형 기업들이 선택한 전략이었다. 동서식품이 새로 개발한 캔커피 '맥스웰카페오래'와 '맥스웰커피'를 내놓으며 선택한 구호는 '세계는 하나, 커피도 하나'였다. ㈜한국커피는 '이제 우리도 정통 레귤라 원두커피를 마실 때'를 내세웠다. ㈜MJC는 설탕을 넣지 않은 커피믹스 '그린믹스'를 개발하여 시민들의 건강염려증을 파고드는 전략을 선택하였다.

일반 원두를 고급 원두로 속여서 폭리를 취하던 원두 공급업체가 적발되기도 하였다. 전국에 58개 가맹점에 원두를 공급하던 '난다랑체인본부' 대표가 구속되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커피 한 잔 가격을 일반 다방의 두 배 정도 받던 가맹점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다.

퇴폐화는 커피 재료 가격의 상승으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다방의 선택이었다. 일부 다방은 커피 대신 야한 동영상을 팔았다. 주로 심야 시간을 이용하였다. 많은 다방은 커피 대신 서비스를 팔았다. 이른바 티켓다방이 절정을 이루던 시절이었다. 다방에서 일정한 시간에 해당하는 티켓을 끊으면, 웨이트리스가 커피를 들고 찾아가서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풍습이었다. 농촌 총각의 결혼이 어려워지던 시절이었다. 간혹 사랑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았으나, 문제는 공공연한 매춘(성매매)이었다.

"○○면 다냐"와 "다냐면 다냐"가 부딪치던 시절
 임권택 <티켓> 포스터
ⓒ 주식회사지미필림
영화배우 김지미가 영화사 지미필름을 설립해서 첫 작품으로 임권택감독의 <티켓>을 제작한 것이 1986년이었다. 포스터에 쓰여 있듯이 '항구의 다섯 여자, 그 점액질보다 끈끈한 사랑과 생존 기록!!'을 다룬 본격 리얼리즘 시네마였다. 이 영화는 8월 23일 개봉되자마자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서울특별시 다방동업조합은 이 영화가 다방 여종업원들의 명예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들어 상영 중단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다방 마담 김지미가 애인을 버린 종업원의 남자 친구를 발로 짓밟아 바닷속에 처박는 장면이 나오면 여성 관객들은 기립 박수를 보내 공감을 표현했다.

영화 <티켓>이 보여주었듯이 1986년은 여성의 권리나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등장하여 관심을 끌었던 해였다. 배창호감독의 <황진이>, 홍파감독의 <몸전체로 사랑을'>등이 대표적이다. 현실 사회에서 벌어진 성고문 사건 등도 여성들의 인권 문제에 대한 공감 확대에 기여한 것은 물론이다. 1960~70년대에 유행하던 호스티스를 내세운 에로 영화에서 피동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던 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삶의 주체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시절에 갑자기 "다냐면 다냐" 논쟁이 일었다. 다방에서 커피를 앞에 두고 위압적인 태도를 보인 국회의원에게 한 종업원이 "국회의원이면 다냐"고 소리치며 대들었고, 국회의원은 여자 종업원의 따귀를 때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진상을 추적한 어느 주간신문이 '국회의원이면 다냐면 다냐'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썼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조선일보>, 1986년 8월 24일).

이 사건이 다시 언론에 등장한 것은 재소자에 대한 가혹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대구교도소를 방문한 국회의원들의 무례한 행동에 분개한 교도관들이 "국회의원이면 다냐"라고 소리친 사건 때문이었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권력자와 시민 사이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어른과 청소년 사이에, 그리고 교사와 학생 사이에도 "○○면 다냐"와 "다냐면 다냐"가 부딪치던 시절이었다.

국제 커피 가격의 상승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커피 가격 상승을 지켜보며 출하를 늦추고 있던 많은 커피 생산국들이 이해 가을부터 커피를 시장에 쏟아내기 시작하면서 커피 거래 가격이 급락하기 시작하였다. 마침 10월부터 커피 수확을 시작하는 남반구의 많은 나라들의 작황이 좋다는 소식까지 합해지면서 국제커피기구는 이제 커피 가격 폭락 대책을 세워야 할 지경이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언론을 앞세워 연일 커피유해론을 보도하고, 모든 다방에 대해 국산차 의무 판매를 강요했지만 커피 소비가 줄지는 않았다. 줄어드는 것은 커피 맛뿐이었다. YWCA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시민들 다수는 다방에서 선호하는 음료로 여전히 커피를 선택했다.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의 저자, 교육학교수)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이길상(2021). 커피세계사+한국가배사. 푸른역사. 이길상(2023).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 역사비평사. <동아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매일경제> 1986년 기사 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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