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 뒤, 이제 번역의 문제를 고민합니다
[윤후남 기자]
▲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17일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타워에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고있다. |
ⓒ 사진공동취재단 |
영국에서 번역학 석박사를 공부했고, 지난 수년간 번역가로서 활동해온 필자로서는 번역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웨이벌리>, <중세의 신화>, <아라비안 나이트>, <피터 래빗 시리즈 전집> 등 많은 책을 번역했다).
▲ 번역에 대한 논쟁. 사전(자료사진) |
ⓒ shutter_speed_ on Unsplash |
오역을 지적하고 수정하는 일은 정당한 일이지만, 번역에 대한 논쟁이 번역결과물에 대한 정당한 비평보다는 직역이냐 의역이냐의 문제에 천착했다는 점이 유감스럽다.
한국 문단에서 이러한 직역과 의역의 논쟁은 1920년대로 거슬러올라간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실패하자 한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정치적 투쟁의 대안으로서 문화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난다. 문화적·경제적 실력양성을 통해 미래의 독립을 위한 기반을 닦기 위한 운동이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해외문학파를 중심으로 번역운동 또한 펼쳐진다. 대부분 일본에서 유학을 마치고 들어온 이들은, 그동안의 일본어 중역에서 탈피하여 외국 문학을 직접 번역하여 해외문학을 이식하고자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이러한 번역 과정에서 양주동, 김억, 김진섭, 정인섭 등을 중심으로 의역과 직역 논쟁이 펼쳐진다. '직역'을 주장한 측은 창작은 모방에서 시작되므로 외국문학을 그대로 직역하여, 우리가 배워야 할 교과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척박한 문학적 토양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주장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비옥해진 문학적 풍토를 가지게 된 지금에도, 여전히 그러한 논쟁은 변함이 없다. 한때 서양의 역사에서 그랬듯이 아직도 번역가를 원작에 매어 있는 노예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서양의 역사에서는 그러한 담론은 사라진지 오래다.
이제 서양에서는, 번역가는 제2의 창작자이며 번역은 제2의 창작물이라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는 번역은 문명의 보다 더 발전된 단계이며, 어떤 번역은 보다 더 발전된 단계의 글쓰기를 보여준다고 했다.
그는 동일한 작품에 대해 서로 모순적인 번역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라고 설명한다.
▲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의 기고문에 실린 맨부커상 심사 기준. 영어 버전 만을 심사한다고 한다. (LA Review of Books,2018. 1. 11일자 화면갈무리.) |
ⓒ LA Review of Books |
또 상금을 번역가에게도 지급하는 것 역시, 창작자로서의 번역가의 공로를 인정하는 취지라 하겠다.
의역을 할 것인지 직역을 할 것인지는 번역가의 몫이다. 그리고 번역은 번역가의 해석이다. 번역가마다 작품을 번역할 때 중점을 두는 것이 다르다.
▲ 데보라 스미스의 기고문 (LA Review of Books,2018. 1. 11일자.) |
ⓒ LA Review of Books |
필자 또한 그렇다. 지난 수년 동안 번역을 해오면서, 가끔은 의역을 하는 것이 더 나은 번역이라는 판단이 드는 시점에서도 혹시 오역이라고 몰매를 맞을까 봐 자기검열을 하곤 했다. 이는 의역마저 오역으로 지적을 받곤 하는 한국적 풍토에서 필자만이 겪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 한강과 데보라 스미스의 <채식주의자> 번역에 대한 이야기(가디언 2016. 5. 21일자 화면갈무리) |
ⓒ 가디언 |
더군다나 책 <채식주의자>의 경우에는, 원작자인 한강 작가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나온 결과물이다. 그러니 번역이 원작과 너무 멀어졌다는 비난은 억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 한국문학만큼 번역에 대한 인식도 성장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단순한 직역과 의역의 논쟁에서 벗어나, 이제는 번역가를 창작자로 대하는 풍토에서 번역에 대한 더 풍성한 논쟁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 집수리 현장의 팽팽한 긴장감 피하는 법
- "끝내자 윤건희, 용산방송 거부" 울먹인 KBS 직원들
- 이름을 빼앗긴 오리지널 맥주, 이게 다 버드와이저 때문
- "지금도 날 궂으면 찌릿찌릿, 근데 송전선로 또 설치?"
- 국정원 "북한군 러시아에 파병... 우크라 전쟁 참전 개시"
- 대기업 사표 내고, 영암의 '등대지기'가 되다
- 삼성, LG 꺾고 광주로 간다…KIA와 31년 만에 한국시리즈
- 화물 노동자들 "안전운임제 쟁취 위해, 이제 반격 투쟁"
- '북한 우크라전 참전'에 여야 한 목소리 "강력 규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