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상 세례와 철제 난간… 믿는 이들의 자취를 찾아서 [우성규 기자의 걷기 묵상]

우성규 2024. 10. 19.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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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걷기 묵상, 행선지는 인천 강화다.

수도권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김포골드라인 구래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강화도 북쪽 강화대교를 건너자마자 내린다.

역사기념관에선 강화도의 감리교와 성공회의 첫 선교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섬에 발을 디딜 수 없던 G H 존스 선교사는 1893년 배를 타고 강화도 북편 해안으로 찾아와 이승환의 어머니에게 달빛 가득한 밤 선상에서 첫 세례를 나누면서 강화도 감리교 역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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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과 성공회강화성당
보리수 그늘 아래 위치한 성공회강화성당 모습. 1900년 건립됐고 외관은 한옥 교회, 내부는 로마 바실리카 양식으로 건축됐다.


10월의 걷기 묵상, 행선지는 인천 강화다. 수도권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김포골드라인 구래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강화도 북쪽 강화대교를 건너자마자 내린다. 붉은 십자가가 새겨진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이 나타난다. 강화 기독교 순례길의 출발점이자 종점인 곳이다.

역사기념관에선 강화도의 감리교와 성공회의 첫 선교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강화 시루미 마을 출신인 이승환은 인천으로 나가 내리교회에 출석하며 믿음을 갖게 된다. 주막을 하던 그는 성경대로 살고자 이를 처분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믿음 생활을 이어간다. 대몽항쟁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을 통해 외국인에 대한 반감이 심했던 강화 주민들은 처음엔 서양 선교사들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섬에 발을 디딜 수 없던 G H 존스 선교사는 1893년 배를 타고 강화도 북편 해안으로 찾아와 이승환의 어머니에게 달빛 가득한 밤 선상에서 첫 세례를 나누면서 강화도 감리교 역사를 시작한다. 이후엔 우리가 아는 것처럼 박능일 권신일 주선일 종순일 황양일 윤정일 등 강화 감리교인들의 집단 개종 역사가 일어난다.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한 형제란 뜻으로 한일(一)자를 돌림자로 썼다.

성공회 역시 1893년 강화 갑곶이에서 당시 조선 해군인 수사양성학당 옆에 ‘성 니콜라스 회당’을 설립하며 지역 고아 5명을 돌보며 선교를 시작한다. 니콜라스는 중세 선원들의 수호성인이며 해양 제국이던 영국에서 추앙받던 성인이었다. 성공회는 강화가 ‘조선의 아이오나’가 되길 바랐다. 아이오나는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 서해안의 섬으로 4세기 수도원 설립 이후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선교의 거점이 된 곳이다.


성공회의 선교 정신은 강화 읍내의 ‘성공회강화성당’에서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눈물의 섬 강화이야기’(대한기독교서회)를 저술한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은퇴교수는 1900년 설립된 강화성당에 대해 “절 같은 성전 건물”이라고 불렀다. 가파른 계단으로 오르는 외삼문이 사찰의 일주문처럼 서 있고 성전을 바라보고 우측엔 마크 트롤로프 선교사가 인도에서 구해와 심은 보리수가 심겨 있다. 각 나라의 지역 문화 전통을 존중하면서 선교했던 성공회의 선교 정신을 반영한다.

강화성당 안에는 사도 바울과 베드로의 동상이 있다. 율법학자였던 바울은 지식인이었다가 개종한 강화도 유림 출신 기독교인들을 상징하고, 어부였던 베드로는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으며 농사일로 생계를 이어온 평민 성도들을 대표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성경을 봉독하는 책상에는 ‘주지언어 족전지등(主之言語 足前之燈)’이 새겨져 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구절이 떠오른다.

성당 외삼문 밖 가파른 계단에 세워진 철제 난간에 눈길이 간다. 이는 2010년 한일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일본성공회 성도들이 강화성당에 봉헌한 것이다. 1943년 대동아전쟁 말기 전쟁물자 공출을 위해 계단의 철제 난간과 종을 강제로 공출한 일제의 악행을 듣고 이를 반성하며 대신 보내온 것이다. 대한성공회는 “지난 과거의 과오를 참회하고 평화를 향한 교회의 영원한 사명을 역사 속에서 실천한 일본성공회의 용기에 감사와 연대의 뜻을 표한다”고 새겨 관람객들에게 안내하고 있다.

성당에서 나와 빈터만 남은 고려궁지,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연무대 옛터 등을 돌아보며 수난의 역사를 생각한다. 어느새 인스타그램 맛집이 된 조양방직에서 한 컷을 남기고 시장하면 수라전통육개장에서 국밥을 한술 뜬다. 일전에 기자와 함께 이곳을 둘러본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장은 맛집들을 소개하며 삼락(三樂)구락부 얘기를 들려줬다. 걷기 여행, 미식 기행, 독서 토론이 그가 꼽은 인생의 삼락이다.

강화=글·사진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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