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로 만든 가죽? 입생로랑·발망 ‘열광’ [화제의 기업]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suhoz@mk.co.kr) 2024. 10. 18.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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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앤디

베트남 호찌민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자동차로 약 한 시간 남짓 달렸을까. 제조 공장이 몰려 있는 롱탄(Long Thanh)산업단지가 나온다. 전 세계로 수출하는 베트남 현지 공장 집결지다. 그 사이에 ‘DK비나’라는 간판이 보인다. 한국 상장사 디케이앤디(DK&D)의 베트남 공장이다.

박종헌 디케이앤디 베트남법인장의 안내에 따라 안전모와 조끼를 입고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100여명이 근무한다는데 실내는 반도체 공장을 연상시킬 정도로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다. 다만 대화가 어려울 정도로 내부는 시끄럽고 바닥은 지진이 난 듯 덜덜거렸다. 합성피혁(편의상 인조가죽)에 들어가는 원단(부직포)을 제조하는 자동화 공정이 24시간 쉴 새 없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 공장에서 제작하는 부직포는 마스크 필터, 저가 티슈 등에 들어가는 일반 소재와는 차원이 다르다. 재생용지 티슈 등을 떠올려보면 잘 찢어지고 내구성도 약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반면 자동차용 시트, 음악을 듣는 헤드셋 등에 쓰이는 인조가죽용 부직포는 장기간 써도 형태를 유지해야 하고 인체에도 무해해야 한다. 이런 고급 부직포를 생산하는 곳이 바로 디케이비나 공장이다.

고부가가치 원단 생산을 위해서는 친환경 섬유를 최대한 얇고 균일하게 종이처럼 뽑아내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첨단 자동화 기계를 도입해, 오돌토돌한 섬유 면을 골고루 두드려 펴주는 기술, 일명 ‘니들펀치’ 공정을 적용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종전 일반 부직포 생산 공정에는 화학물질을 써야 했다. 디케이앤디는 순수 물만 활용해 만드는 친환경 공법을 적용했다. ‘친환경’ 타이틀이 달린 덕분에 전 세계 다양한 분야의 대기업 주문이 쇄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종헌 법인장은 “발망, 슈프림 같은 세계 명품 패션 업체, 소니와 같은 글로벌 전자기기 회사 등에서 먼저 친환경 공정의 합성피혁 제품을 만들어내면 더 좋은 가격에 납품받겠다고 제안해서 베트남 공장을 운영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최근에는 테슬라, 현대차기아, 혼다와 같은 글로벌 자동차 회사 납품도 본격화하면서 오히려 공급이 달리는 상황이다. 여세를 몰아 올해 초 디케이앤디는 650만달러(약 85억원)를 들여 전 공정을 친환경 라인으로 재편·확장하는 공사도 진행 중이다. 참고로 지난해 디케이앤디의 매출액은 897억원, 영업이익은 약 81억원이다. 이런 규모의 회사가 한 해 영업이익만큼을 베트남 공장에 쏟아붓는다는 건 사실 쉽지 않은 의사 결정이다.

최민석 디케이앤디 대표는 “글로벌 시장 트렌드가 친환경으로 가는 만큼 선제적인 투자를 통해 잠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소개했다.

베트남 소재 디케이앤디 친환경 합성피혁용 부직포 공장. 월 140만m를 생산, 내년엔 나이키 신발 등 연간 2억켤레에 쓰일 물량을 쏟아낼 수 있게 됐다.
디케이앤디 어떤 회사?

최민석 대표가 2000년 창업

디케이앤디는 최민석 대표가 2000년에 창업했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그는 사회생활을 합성피혁 회사(두림테크) 소재개발부에서 시작했다. 천연가죽을 대체할 수 있는 인조가죽은 분명 매력적이었다. 동물 학대 이슈에서 자유로운 데다 본인의 화학 지식을 무궁무진하게 응용해볼 수 있어서였다. 마침 천연가죽 역시 다양한 논란에 휩싸였다. 부패를 막으려고 다량의 화학물질을 쓰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인체 유해물질이 나오는 등 다양한 단점이 부각됐다. 최 대표는 이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사업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얼마간의 직장 생활을 접고 독립(동광화성 창업), 오늘에 이른다.

최 대표가 창업 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개발한 것은 친환경 합성피혁이다. 공정 과정에서 최대한 친환경 화학물질을 쓰고 원단(부직포)부터 최종 제품까지 다국적 기업 환경 기준에 부합하도록 공정을 바꿨다. 그 덕에 유럽섬유환경인증인 오코텍스(OEKO-TEX) 최고 등급인 1등급을 취득할 수 있었다.

이후 나이키 등 글로벌 유명 신발 브랜드에 디케이앤디 제품이 들어가면서 회사는 유명세를 탔다. 굴지의 브랜드에 납품할 정도 기술력이면 여타 산업군에서도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터. 특히 환경보호 차원에서 ‘천연가죽 제품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글로벌 명품 기업이 디케이앤디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입생로랑, 발망, 슈프림 등의 핸드백, 가죽 원단을 디케이앤디가 만들게 된 계기다. 여기에 더해 닥터드레(애플) 등 유명 헤드셋 제품에도 이 회사 제품이 쓰이면서 납품처는 IT업계 쪽으로도 빠르게 확산됐다.

박종헌 법인장은 “코로나19 때 친환경, ESG 경영이 더욱 주목받으면서 한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가 2027년부터 유기용제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합성피혁 제품을 사용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대규모 친환경 공정 투자의 기폭제가 됐다”며 “아예 신제품 디자인·제품 기획 단계부터 베트남으로 찾아와 공동 개발을 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도 십여 곳”이라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디케이앤디가 대나무 소재로 개발한 비건레더.
실적도 쑥쑥

비건·리사이클레더 각광

이런 노력 덕에 회사 실적은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2021년 매출액 753억원, 영업이익 27억원 수준이던 실적은 지난해 매출액 897억원, 영업이익률 10%대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준석 한양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와 내년 친환경 공정 증설을 통해 친환경 원단 매출이 극대화되면 2025년경 매출액 1200억원, 영업이익 200억원대 강소 기업으로 자리 잡을 공산이 높다”고 전망했다.

증권가에서는 차세대 성장동력에도 주목하는 분위기다. 특히 디케이앤디가 해외 명품 업체와 공동 개발 중인 ‘비건 레더’ 기술이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다.

비건레더는 식물에서 추출한 원료를 친환경 기법을 적용, 인조가죽 제품으로 만드는 차세대 기술이다.

최민석 대표는 “현재 개발된 대나무 기반 식물성 레더의 경우 해외 명품 업체 입생로랑, 발망 등에 샘플을 납품한 상황으로 추후 주문을 기다리는 중”이라며 “비건레더뿐 아니라 사용하고 남은 가죽을 다시 제조해 만든 ‘리사이클레더’ 역시 소니(Sony), 보스(Boss) 등 글로벌 전자 회사 헤드셋용으로 납품하는 등 친환경 레더를 만들기 위해 여러 회사와 협업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방위 산업 분야 진출도 눈길 끈다. 글로벌 방산 업체 역시 ESG 트렌드에 따라 친환경 합성피혁 제품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디케이앤디는 이런 수요에 맞춰 친환경 우의 등을 글로벌 기업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회사 관계자는 “해당 우의는 제품이 망가져도 재가공하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차세대 합성피혁으로 글로벌 수요가 폭발하면서 2025년 예상 매출액은 최소 80억원, 영업이익률 10% 이상의 효자 사업부로 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디케이앤디도 약점은 있다. 관련 시장에 선진국 제조 업체가 언제든 대규모 자본을 들여 진출할 여지가 있는 데다 저가 시장에는 후발 중진국 제조 업체가 도전, 출혈 경쟁에 노출될 소지도 크다. 글로벌 경기 위축으로 예전과 같지 않은 명품 시장 성장세도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명품 외에 IT 등 다양한 분야를 적극 공략하는 배경이다.

최민석 대표는 “종전 패션 외에 IT, 자동차, 방산, 침구 등 일상생활 속 다양한 친환경 제품을 선보이는 첨단 소부장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베트남 =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0호 (2024.10.16~2024.10.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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