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뒤끝이 나쁘다
베이징 시내에서 100㎞ 정도 떨어진 허베이성 랑팡시에서 한 대형 아파트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취재를 마친 뒤 국도를 타고 복귀하던 길이었다. 허허벌판 위로 15층짜리 아파트 9개 동이 우뚝 솟아있었다. 맨 꼭대기엔 머리카락처럼 제멋대로 휘어진 철근들이 보였다. 회색빛 뼈대만 있는 건물은 하늘에 더 가까이 닿지 못한 채 성장을 멈췄다. 40만㎡ 규모로 조성된 단지엔 잡초만 무성했다. 개방형 정문 자리에 대신 설치된 철문은 굳게 걸어 잠겼다. 자물쇠 위엔 누렇게 녹이 내려앉았다. 한참이나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듯 했다.
이른바 ‘란웨이러우(爛尾樓·짓다 만 아파트)’다. ‘뒤끝이 나쁘다’는 란웨이에 건물을 뜻하는 러우를 더한 단어다. 이곳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엔 또 다른 란웨이러우가 있었다. 고급 빌라가 될 예정이던 3층짜리 건물엔 건축자재만 가득했다. 사방을 둘러싼 가림막 앞으론 건축 쓰레기가 작은 동산을 이뤘다. 인근 주민은 “이 주변엔 ‘란웨이러우’가 여러 곳 있다”며 “벌써 몇 년째 똑같은 상태로 방치돼 있다”고 말했다.
40년간 차근차근 쌓여온 중국 부동산 시장의 거품은 2021년 꺼지기 시작했다.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회사 헝다가 채무불이행 상태가 되면서다. 중국 성장의 견인차는 바퀴가 고장 난 채 가뜩이나 동력을 잃은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현재 베이징 같은 1선 도시 곳곳에서도 짓다 만 고층 빌딩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경제 중심지에서 멀어질수록 더 많은 ‘란웨이러우’가 흉물로 남아있다. 월스트리스저널에 따르면 중국 전체 빈 주택은 9000만 채 이상이다.
경제성장률 목표 ‘5% 안팎’을 달성해야 하는 중국 당국은 연이어 부양책을 꺼내 들었다. 올해 3분기 국내총생산(GDP) 발표를 하루 앞둔 17일엔 부동산 대책도 내놨다. 부동산 부문은 건설 등 인접 산업과 함께 중국 GDP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침체한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해 우량 부동산 대출 공급을 연말까지 4조 위안(약 766조원)으로 늘리고 빈민촌 등 노후 주택 100만 호를 개조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지난달 말 대규모 경기 부양책 발표 뒤 최대 명절인 국경절 연휴를 거치면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주택 매수가 증가하는 등 부동산 시장이 꿈틀거리고 있다. 부동산이 살아나면 웅크린 중국 경제에도 날개를 달아줄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눈앞으로 ‘란웨이러우’ 옆 주민의 표정이 스친다. 그는 “모두 외지인의 것”이라며 “(아파트 완공이) 나랑 무슨 상관인가”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도성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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