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오! 한강”

2024. 10. 18.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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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학에 내리친 벼락 같은 축복이자,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온 한 개인의 일상이 빚어낸 '눈부신 문장'이다.

연작소설집 '채식주의자' 속 주인공 영혜가 폭력적인 현실에서 벗어나 자연과 하나 되길 갈망했던 것처럼 한강은 소설 속에서 사회적 억압을 넘어서는 인간의 내면을 그려냈다.

한강의 소설 속에서 영혜가 나무가 되고자 했던 갈망은, 감람나무가 왕이 되는 것을 거절하고 자기만의 소명을 따르는 모습과 어떤 면에서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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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원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학에 내리친 벼락 같은 축복이자,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온 한 개인의 일상이 빚어낸 ‘눈부신 문장’이다. 연작소설집 ‘채식주의자’ 속 주인공 영혜가 폭력적인 현실에서 벗어나 자연과 하나 되길 갈망했던 것처럼 한강은 소설 속에서 사회적 억압을 넘어서는 인간의 내면을 그려냈다. 그녀의 작품이 보여준 순수한 갈망은 작금의 삶에 깊은 울림을 준다. “나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야. 나무가 될 거야.” 영혜가 사회적 잣대를 거부하고 나무가 되고자 한 것은 자신만의 생을 깨닫고 이를 따르고자 하는 본능적인 갈망을 상징한다.

한강이 문학 속에서 그려낸 순수한 자아의 갈망은 성경 속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의 선택과 맞닿아 있다. 구약 사사기의 요담 우화에서 나무들이 왕이 되기를 거절하며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선언한 것처럼, 한강의 문학적 여정 역시 사회적 통념을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 아니던가!

지금 대한민국에는 억압과 폭력으로 자기 뜻을 강요하는 가시나무들로 가득하다. 육식이 상징하는 가시나무는 자신을 왕처럼 떠받들지 않으면 불로 삼키겠다고 협박하기 일쑤다. 억압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사회적 폭력이 난무한다. 우린 지금, 이러한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가시나무가 아닌 채식이 상징하는 감람나무, 포도나무, 무화과나무처럼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에 충실하면서 타자를 돌보는 존재에 목말라한다.

덴마크의 철학자 쇠얀 키르케고어는 마태복음의 백합화 비유로 인간의 불안과 염려를 성찰한다. “들의 백합화를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백합은 스스로를 꾸미지 않으며, 타자와 비교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 존재에 충실할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고, 더 높은 위치에 서고자 한다. 이 땅의 리더들 역시 감람나무로 자처하지만, 그 속은 실상 가시나무처럼 남을 해치려는 심보만 꽉 차 있는 건 아닌지 성찰해볼 일이다.

백합은 자신이 백합인 것으로 충분했다. 이는 더 높은 자리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그저 자기 존재가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충분하다는 깨달음에서 온 것이다. 키르케고어는 백합이 인간에게 “사람인 것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사람은 사람이라는 그 자체가 이미 넉넉한 영광이며, 세상의 어떤 영화도 그 앞에서는 의미를 잃는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 진리를 잊는다. 자신이 딛고 있는 대지의 무거운 깊이를 망각한 채 그저 가시나무처럼 뻗으려고만 한다. 아서라. 백합의 교훈을 새기자. 감람나무는 그 자체로 기름을 짜내어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했다. 그러니 감람나무이고 싶다면 그저 본연의 길을 깨닫고 거기에만 끝까지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한강의 소설 속에서 영혜가 나무가 되고자 했던 갈망은, 감람나무가 왕이 되는 것을 거절하고 자기만의 소명을 따르는 모습과 어떤 면에서 닮아 있다. “그녀는 두 팔을 위로 뻗고 나무처럼 서 있었다. 마치 뿌리를 내리려는 것처럼.” 영혜는 사회적 기대나 규범에서 벗어나 자연과 일체가 되고자 했다. 그녀의 염원은 억압된 현실에서 자신의 순수한 본성을 되찾으려는 몸부림이다. 이처럼 우리에게도 나만의 감람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일까? 나만의 무화과, 그건 무얼까? 나만의 포도주, 그건 정말 무엇일까?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름이 따로 있다는데. 나에게만 주신 꽃이 따로 있고, 너에게만 주신 열매가 따로 있다는데. 누군가와 경쟁하며 앞서라고 주신 것도 아니고, 사람들 위로 올라가 우쭐대라고 주신 것도 아니라는데. 이웃을 돌보라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진정 행복해지라고 맡겨주신 나무 한 그루가 있다는데….

송용원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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